방랑과 방황의 차이
#1.
'인생책'이란 무엇일까. 단순히 재밌는 수준을 넘어서 인생에서 중요한 결정을 하는 데 영향을 끼칠 정도로 의미 있는 책이겠지. <그리스인 조르바>는 '인생책'으로 불리며 많은 사람들의 삶을 바꿔온 것 같다.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북튜버'도 이 책을 다루었는데, 그 영상에서 재밌게도 우리나라에서 특히 이 책을 인생책으로 꼽는 사람이 많다는 얘기가 나온다. 이 책의 주제인 '자유'를 우리나라 사람들이 크게 갈망해서 그렇다고 한다. 약간의 궁금증과, 책 두께에 대한 두려움을 안고서 서점을 찾았다. 구매한 책은 '문학과 지성사'에서 낸 책인데, 표지가 이쁘기도 했고, 유재원 번역가님이 그리스어 원전을 번역했다고 해서 조금 더 끌렸다. 책을 읽어야겠다고 생각하고 구매까지 이른 게 생각보다 빨랐는데, 그 다음주에 이 책으로 독서모임까지 참여하기 위해 읽는 것도 금방 읽어버렸다.
#2.
처음 조르바를 접했을 때 '짐승'같다고 느꼈다. 윤리적으로 보나 사회적으로 보나 무언가 비뚤어진 사람으로 보이는 조르바는 기행을 멈추지 않는다.
"... 인생의 표피층을 다 초월해서 삶의 본질에 다다른 이 원시인을 자랑스러워해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270p)
하지만, 책을 읽어 나갈수록 조르바는 누구보다 '인간'으로 다가왔다. 소멜리나 과부가 당할 때나 오르탕스 부인이 죽을 때 가장 슬퍼하던 건 조르바였다. 조르바는 감정에 충실했던 것 뿐이고, 본인을 자랑스러워 했던 것이다. 나에게 문학작품이 매력적인 건 '솔직함' 때문이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숨겨왔던 생각이나 감정들을 문학작품에선 고스란히 만날 수 있다. 이를 직접적으로 보여주는 게 조르바였고, 나는 이 원시인에게 매력을 넘어 끝내 존경을 느꼈다.
#3.
"일방성의 무의미함, 방랑과 방황의 차이"... 넬 - <한계>
백예린의 리메이크 곡 <한계>를 무척 좋아한다. 처음엔 유니크한 음색에 끌렸지만, 들을수록 가사에 빠져들었다. 노래의 클라이맥스 부분에서 '방랑'과 '방황'의 차이라는 말이 나온다. 전체적으로 연인 관계에서의 생각 차이에 대한 한계를 말하는 노래에서 이런 가사라니, 조금은 뜬금없게 느껴졌다. 하지만, 그렇기에 더욱 곱씹게 되고 기억에 오래 남았다. <그리스인 조르바>를 읽으며 또 이 노래를 들었는데, 문득 방랑과 방황의 차이는 '자유'에서 오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자유롭게 거니는 방랑, 억압된 채 헤매는 방황. 그런 의미에서 세상을 향해 열려있는 조르바는 방랑을 하고, 본인의 생각에 갇혀 있는 화자는 방황을 한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조르바보단 수위가 약하지만, 나도 인생에서 한 번 방랑을 한 적이 있다. 취업이 확정된 후, 바르셀로나로 날아가 맥주 한 캔 까고 바다를 거닐었었다. 근심걱정 없는 시기와 장소가 만나 그런 소중한 기억을 남겨주었다. 다음 방랑은 언제, 그리고 어디서 하게 될까?
#4.
독서모임을 통해 영화판도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아직 보진 못했지만, 다들 재밌었다고 해서 흥미가 생겼다. 원작 소설과 영화 중에서 항상 소설을 선호하는 편이다. 원작자의 표현하고자 하는 바를 재창작자가 완전히 표현할 수 없기 때문이기도 하고, 무엇보다도 소설이 주는 상상력의 재미를 영화에선 느낄 수 없기 때문이다. 이번 작품에서는 조르바라는 인물이 더욱 궁금해져서 영화에서 어떻게 표현됐을지 궁금하긴 하다. 사진으로 봤을 때 생각보다 잘 표현한 것 같긴 하다. 흑백 영화라는 것도 매력적이고... 나중에 한 번 봐야겠다!
#5.
책을 읽고 난 지금, <그리스인 조르바>를 '인생책'이라고 느끼기엔 아직 버겁다고 느껴진다. 읽는다고 읽었지만 온전히 이해하기 힘든 부분도 많았다. 특히 끊임없이 등장하는 부처와 불교철학들은... 여러 번 더 읽는다고, 해석을 본다고 이해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그렇지만 한 가지 확실한 건 조르바라는 인물이 나에게 매력적이었다는 것, 그리고 나는 방황보다 방랑을 하고 싶다는 것이다. 인생 곳곳에서 '자유'가 얼마나 중요한 가치인지 볼 수 있게 된다. 자유로운 방랑가 조르바, 다시 봐도 참 멋있긴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