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06.16
그 사이 많은 일이 있었다. 한 달 하고도 13일이 지나서야 글을 쓰고 있다.
오랫동안 글을 못 쓴 이유는 많겠지만 내 마음이 정리가 되지 않아서이다.
이제야 마음이 정리가 되어(어떤 마음이었는지 무엇이 정리가 되었는지 구체적으로 표현할 수는 없지만. 나도 사실 정확히 알지 못한다.) 글을 쓴다.
2022년 5월 4일. 샘플이 도착했다.
스티커를 직접 제작해 본 것은 처음이라 신기하고 낯설었다.
'컴퓨터 모니터로만 보던 것이 이렇게 나오는구나.' 내가 걱정했던 것보다 깔끔하고 괜찮게 느껴졌다.
조금 자신감이 붙는다. '나 괜찮게 했네.' 마음속으로 나에게 안도의 말을 전했다.
창고살롱의 로고 스티커는 두 가지 디자인으로 무광과 유광을 옵션으로 주었고 레퍼런서의 말들 스티커는 투명 스티커지만 배경을 하얀색으로 깔고 가느냐, 안 깔고 가는냐, 무광, 유광 이렇게 네 가지 옵션으로 제작하였다.
여기저기 테스트로 붙여 보았지만 혼자만 보고 판단하려니 아쉬웠다. 나는 시작부터 쭉 보아왔던 이미지라 다른 누군가의 이야기가 듣고 싶었다. 그래서 RBG 멤버인 랄라님과 은애(굿키드)님께 보내드리기로 했다. 골고루 반으로 나누어 두 분께 보내고 피드백을 기다렸다.
로고 스티커는 무광이 좋고, 테두리가 있는 것보다 없는 게 낫다는 의견. 레퍼런서 말들 스티커는 무광이 좋다는 의견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기뻤던 것은 두 분 다 너무 만족해하셨다는 것이었다. 디자인을 하면서 느꼈던 외로움과 두려움이 사르르 녹는 순간이었다. 그리고 함께 함에 감사했다.
(실제로 모여서 함께 이야기하지 못해 정말이지 너무너무 아쉬웠다.)
옵션 선택은 완료하였고 이제 수량에 맞게 주문만 하면 되었다. 최종적으로 받은 피드백으로 레이아웃을 조금씩 수정하고 주문 완료를 누르려고 할 때 내 눈에 거슬리는 것이 보였다. 'final_'이라고 붙인 이름이 무색하게 다시 수정을 해야 했다. (그 후로도 몇 번의 수정을 더 해야 했다.)
미묘해서 잘 안보일 수도 있지만 샘플과 많이(?) 다르다.
아직도 내 눈에 거슬리는 것들이 보여서 아쉽기도 하지만 걱정했던 것보다는 보람 있고 만족스러운 결과로 나왔다. 예리한 눈으로 피드백을 준 RBG 멤버들 덕분에 발전할 수 있었고 마지막까지 '조금만 더'를 외친 내 덕분에 조금 더 다듬어진 것 같아 기분이 좋다. (이래서 혼자서는 할 수 없다는 것을 다시금 깨닫는다.)
주문 버튼을 눌렀다. 마음이 후련했다. 내가 짊어지고 있던 짐들이 스르르 녹아버리는 기분이었다. 과정이 즐거웠지만 잘해야 한다는 부담감과 150장, 250장을 책임져야 한다는 생각에 긴장이 많이 되었던 것이 사실이다. 결과물을 직접 확인하기 전까지는 지금의 후련함과 뿌듯함을 마음껏 즐기기로 했다.
로고 스티커가 도착한 날은 아이와 친정에 가 있을 때였다. 남편에게 간단하게라도 불량 체크를 부탁했고 사진을 찍어 보내달라고 했다. 직접 확인하지 못하는 것에 조바심은 났지만 디자인을 나보다 잘한다고 생각하는 남편이 괜찮게 나왔다고 말해주니 안심이 되었다. (귀찮아서가 아니라, 진심이었겠지? 남편.)
다음날 집에 오니, 레퍼런서 말들 스티커도 도착해 있었다. 직접 내 눈으로 확인하고 나니 안심이 되었다. 이만하면 되었다. 그제야 스티커에 대한 모든 부담감을 놓을 수 있었다.
이제 남은 작업은 레퍼런서들에게 배송하는 것. 필요한 수량을 주문받았으나 생각보다 반응이 크게 오지 않았다. 그동안 고생한 마음에 아쉬웠지만 우선 마무리에 집중하기로 했다.
창고살롱지기 혜영님의 제안으로 고마워서그래(최고의 맛을 가진 수제 그래놀라)의 두란님과 콜라보를 하게 되었다. 스티커와 함께 고마워서그래 그래놀라를 함께 보내기로 한 것이다. 두란님의 그래놀라 덕분에 선물이 더욱 풍성해졌다. 기분 좋은 협업이다. 이런 기회로 택배 작업을 고마워서그래가 있는 천안에 가서 하기로 했다.(택배관련 물품을 마음껏 지원해주신다는 두란님을 말리는라 모두들 진땀을 뺐다.) 굳이 천안까지 라는 생각을 안 한 건 아니지만, 이번 기회로 고마워서그래도 방문하고 두란님도 직접 만날 수 있다니 기대가 되었다.
창고살롱 3.5기 슬랙이 닫히기 전에 택배 보내는 것을 도와줄 지원자를 모집했고 혜선님과 성애님이 지원해주셔서 함께 하게 되었다.
두란님과 택배 작업 관련하여 회의하면서 메시지 카드 이야기가 나왔다. 처음엔 손으로 레퍼런서 말들을 써서 보내자는 이야기가 나왔지만 악필인 나 같은 사람도 있으니 그건 무리일 것 같아서 라벨지에 인쇄하여 붙이자는 의견이 나오게 된 것이다. (두란님이 고마워서그래 단체 주문의 경우 그렇게 하신다고 노하우를 공유해주셨다.)
이렇게 보내질 것이 하나 더 늘었다.
6월 1일 지방선거가 있는 휴일.
베트남에 계셔서 아쉽게도 참여 못하시는 혜영님(식비를 지원해주신. 감사합니다!)을 제외한 RBG멤버와 혜선님, 성애님, 창고살롱 객원지기 민지님을 천안에서 만났다.
두란님은 천안역으로 온 은애님과 혜선님. 고속버스를 타고 온 성애님. 천안아산역으로 온 나와 랄라님을 순차적으로 마중 나오셨다.(민지 님은 시간이 달라서, 두란님 남편분이 모시러 갔다.) 한 차에 모두 타고 고마워서그래로 향하는데, 옹기종기 모여 앉은 우리의 모습이 시골 아낙들이 품앗이하러 가는 것 같아 웃음이 나왔다.
고마워서그래에 도착해서 작업장과 아이들의 놀이공간을 보며 나중엔 아이도 함께 오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따뜻한 공간이었다. 도착하자마자, 두란님은 우리를 대접하기 위해 바삐 움직이셨고 다른 분들도 시킨 것도 없는대 자신들이 알아서 할 일들을 찾아서 하기 시작했다. 두란님을 도와 식사를 준비하는 사람, 라벨지 작업하는 사람, 스티커와 메시지 카드에 대해 이야기 나누는 사람 등. 우리는 각자, 하지만 함께 그 시간을 누리고 있었다. 정성스럽게 준비된 비건 카레(내가 먹어본 카레 중에 제일 맛났던)와 콩국수, 냉모밀, 그리고 성애님이 가져오신 디저트에 좋은 사람들까지 완벽한 식사였다. 짧은 식사와 이야기를 끝내고 본격적인 택배 작업에 들어갔다. 스티커를 하나씩 분류하고 메시지 카드에 라벨지를 붙이고, 그래놀라를 포장하고 속지를 싸고 넣고 테이프를 붙이기까지. 정말 일사천리로 진행이 되었다. 너무 행복했던 것은 모두가 즐거운 마음으로 함께 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택배 포장이라는 단순한 작업을 위해 휴일에 천안까지 시간을 내어 와 준 혜선님, 성애님, 민지님, RBG멤버들, 그리고 많은 신경을 썼을 두란님께 이 기회를 빌어 감사 인사를 전한다.
저번 글에서는 혼자 작업하는 기분이 들어 외롭다고 썼다. 하지만 이번 글에선 함께 해서 즐거웠다는 말을 꼭 전하고 싶다. 나 혼자였다면 끝까지 해내지 못했을 것을 모두가 함께 였기에 가능했다는 것을 안다. 그래서 더 소중한 시간이었고 잊을 수 없는 순간이었다고 기록하고 싶다.
택배가 발송되고, 하나, 둘 반응이 SNS로 공유되기 시작했다.
하나하나 올려주신 사진과 글들을 보면서 감사한 마음과 보람을 느꼈다.
메시지 카드를 넣으면서 받는 분에게 지금 꼭 필요한 메시지가 가기를 빌었는데 몇몇에게서 그런 글을 보아서 더 행복한 순간이었다.
작은 용기에서 시작된 프로젝트.
반응이 적다고 실망했던 나의 마음을 비웃기라도 하듯 레퍼런서들의 힘 있는 말들이 조금씩 퍼져 나가고 있다.(혜영님 덕에 베트남에도!!) 다음으로 계획했던 노트 굿즈는 잠시 접고, 레퍼런서들의 말들을 좀 더 힘 있게 전달하고자 방법을 고민하고 있다. (은애님은 개인 사정으로 함께 하지 못하게 됐지만, 시작을 함께 한 소중한 인연은 쉽게 끊기지 않을 것이다.)
메시지들을 정리하고 스티커로 만든 것은 RBG멤버들이지만 이 메시지들이 만들어지기까지, 레퍼런서들이 겪었던 그 시간들과 경험, 깨달음이 없었다면 가능했을까?
그래서 이 모든 과정은 우리 모두가 해낸 것이라고 말하고 싶다. 당신의 서사가 있어서 가능했다고.
지금도 자신의 자리에서 묵묵히 할 일을 하며 하루하루 열심히 살아가고 있을 당신에게 이 고마움을 전한다.(너무 거창한 말이지만 달리 이 마음을 표현할 수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