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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르도농부 Jun 28. 2022

2월 보르도, 630개의 이력서

 보르도로 돌아온 지도 벌써 한 달이 되어갔다. 그동안 보르도에서 두 군데의 에어비엔비를 돌아다녔다. 지난 여행에서부터 장기전에 돌입하며 집 전체를 빌리기보단 방 하나만을 빌려 주방과 같은 공간은 함께 쓰는 곳을 다니며 퇴직금을 한 푼이라도 아끼기 위해 고군분투했다. 처음에는 모르는 이들의 집에서 생활을 한다는 것이 퍽이나 불편했지만 이제는 꽤나 익숙해졌다. 작은 집을 혼자서 썼을 때는 세탁기가 없다던가 주방이 매우 작아 뭘 해 먹기도 어렵고 가끔은 냉장고도 호텔 냉장고를 가져다 놨는지 너무 작아 와인 두세 병 넣으면 꽉 차버릴 때도 있었다. 아무래도 여러 방을 가진 큰 집으로 들어가면 이러한 불편함이 해소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영어를 1도 못하는 호스트들이 대부분이었기에 강제로 매일 듣기 평가를 하게 됐고 그리 많지 않은 동양인 손님이 반가운지 자신들의 문화를 알려주려고 노력하는 모습 덕분에 즐거운 경험도 많이 했다. 예를 들어 바로 전에 이용한 에어비엔비의 호스트는 마르세유[1] 출신 할아버지로 간단히 저녁을 때우러 주방에 갔는데 파스티스[2] 한 병을 눈앞에 슥 보여주더니 이 술에 대해 들어본 적 있냐고 물어봤다. 라벨은 어딘가 익숙한데 처음 들어본 이름이라고 말하자 마르세유 전통의 특산주라며 한 잔 권했다. 코에 가져다 대니 무언가 찌르는 듯한 향이 진동해 고개를 돌려버렸다. 그런 나를 보며 껄껄거리며 아니스라는 향신료로 만든 술이라며 물이랑 희석해서 먹곤 한다고 알려주었다. 물에 희석해 먹어봤지만 여전히 내 스타일은 아니었다.


 이렇게 호의로 자신의 문화를 경험시켜주는 호스트도 있었던 반면에 어떤 호스트는 자신의 문화만을 고집하며 내게 힘든 시간을 주기도 했다. 지금 지내는 곳의 할머니가 딱 그런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어느 날엔가 한식을 먹고 싶어 제팬 마켓에서 종갓집 김치를 사 온 적이 있었다. 한번 뜯으면 온 냉장고에 냄새가 진동을 할 테니 김치볶음밥에 돼지김치까지 야무지게 해먹어야지 하고 하루를 뒀는데 그날 저녁 숙소로 돌아오자마자 인상을 팍 쓴 할머니가 기분 나쁜 손가락질로 이리로 와보라 더니 냉장고를 열고 "이게 뭔데 내 냉장고를 쓰레기 냄새로 가득 채우는 거니? 당장 없애버리렴. 그리고 두번다시 내 냉장고에 넣지 말렴! 알아듣겠니? 넣.지.말.라.고!"라며 큰 죄를 진 것 마냥 호통을 치기도 했다. 사실 지금 지내는 곳은 호스트만 빼면 너무 좋은 곳이었다. 물론 보르도 아주 남쪽에 베글르(Bègle)라는 동네에 위치해있어 시내에서 숙소까지 가려면 1시간이 걸리긴 했지만 방도 넓고 집도 넓고 주방도 넓고 문제의 그 냉장고도 컸다. 할아버지는 오히려 별로 신경을 안 쓴다는 듯 거실에서 DVD[3]를 보고 있을 때 내가 주방으로 내려와 냉장고를 뒤적거리기라도 하면 와서 같이 보자고 권하기도 했다. 유독 할머니가 나를 못 잡아먹어 안달이었다. 하루는 시내에 나갔다 들어오니 또 그 기분 나쁜 손가락질로 나를 불러 세우더니 "2층 화장실, 네가 썼니?"라고 몰아붙였다. 듣고 보니 누군가 물을 안 끄고 나갔고 절대 용납할 수 없다며 엄포를 두는 것이었다. 그날 아침 나는 일찍 시내로 나가봐야 해서 얼른 욕실을 사용했고 나오면서 하필이면 같은 층에 방을 빌린 프랑스인이 욕실로 들어오는 것을 보고 집을 나섰다. 그저 동양인은 싫은 것인지 내가 아니라는 사실이 밝혀졌음에도 "그래도 앞으로 두 번 다시 그러지 말아라!" 하고 호통을 잊지 않았다. 그리고 밤마다 라디에이터를 꺼버려서 새벽에 추위 때문에 깨 켜지지도 않는 라디에이터를 붙잡고 한참을 씨름하다가 욕을 삼키며 잠에 든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야박한 인심에 고통받고 있었지만 사실 다른 상황들때문에 성격 괴팍한 할머니는 큰 문제도 아닌 듯이 느껴졌다. 한 달이 다 되도록 취업 준비에 박차를 가하고 있었다. 앙제 여행에서 첫 발을 뗀 만큼 앞만 보고 달려야 했다. 정말 신기한 건 그렇게 오래 이력서를 붙잡고 있어도 고쳐야할 부분은 계속 나온다는 점이다. 어찌 됐든 내가 가진 최대한의 장점을 다 보여주는 것만이 취업에 성공할 수 있는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와인 기자이자 한국에 인맥이 있고 포도밭이든 양조장이든 일을 하면서 내 시간을 쪼개 마케팅까지 같이 해주겠다는 거창한 이력서를 완성했다. 그걸론 부족해 보여 닥치는 대로 이름을 알리기 위한 일들을 했다. 인스타그램 계정을 새로 만들고 워드프레스 홈페이지를 만들어 링크 클릭 한 번에 볼 수 있는 이력서를 만들어두고 지난 앙제 여행 때 산 와인 잡지에 실린 "샴페인 자크쏭과 자크 셀로스, 어떻게 다른가?"[4]라는 기사를 번역하여 올리기도 했다. 생전 써본 적도 없는 링크드인 계정을 만들었다. 문제는 이런저런 활동을 많이 했지만 성과는 없다는 것이었다. '그래, 아직 이력서를 안 돌려서 그래'라고 자위하며 완성한 이력서를 돌릴 와이너리들의 이메일 주소를 긁어모으기 시작했다.


 수집하는 일이 생각보다 오래 걸렸다. 사실 이력서는 어느 정도 완성한 상태였지만 이 집에 오고 일주일째 주소 작업을 하는 중이었다. 물론 그전에 꼭 가고 싶다고 생각했던 샴페인 협회와 앙주-소뮈르 와인 협회에는 메일과 함께 우편[5]도 두 번이나 보냈지만 답이 없었다. 우선은 보르도에 있는 와이너리에 집중하기로 했으니 그랑 크뤼 클라쎄[6] 등급을 받은 메독 지역의 모든 와이너리들, 90여 곳이 대상이었다. 안되겠지라고 생각하면서도 '못 먹어도 고'라는 심정으로 1등급 5대 샤또(샤또 라뚜르, 샤또 라피트 로칠드, 샤또 마고, 샤또 무똥 로칠드, 샤또 오-브리옹)도 포함시켰다. 그 뒤 부르고뉴의 100개 도멘, 루아르 지방의 50개 와이너리, 가장 많았던 샴페인의 360곳, 마지막으로 쥐라와 사부아[7]라는 아주 작은 지방의 30개 와이너리 메일 주소를 확보했다. 모으다 보니 630여 개가 되었고 이제 보내기만 하면 됐다. 보낸다고 바로 문제가 해결될 것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두 달 가까이 헛발질하며 계란으로 바위 치기 하던 일의 결말을 보게 될 참이었다. 어느 정도 준비가 됐다고 생각된 날 오전 일찍 시내에 나가 오후까지 평화롭게 거닐고 오랜만에 외식도 하며 마음을 다잡았다. 로또를 사고 일주일 동안 온갖 망상에 빠지는 것처럼 취업이 된 후의 변화를 기분 좋게 상상하며 불안감을 해소하고 있었다. 해가 질 때 즈음 숙소로 돌아와 결연한 마음으로 책상에 자리 잡고 맥북을 꺼내들었다. 마지막으로 체크를 한 뒤 미리 준비한 이메일 내용으로 그동안 모은 이메일 주소에 뿌려대기 시작했다.


"봉주르 마담, 므씨유. 제 이름은 오동환이라고 합니다. 세례명인 다니엘로 불러도 됩니다. 먼저 제 소개를 하자면 한국 와인 시장에서 6년 넘게 일했고 특히 와인 수입사와 와인샵에서 일한 경력이 오래되었습니다. 또한 저는 와인21닷컴이라는 와인 미디어에 글을 쓰고 있는 기자입니다. 지금 저는 프랑스에 와서 포도밭과 양조 일을 구하고 있습니다. 1년간 워킹홀리데이 비자로 왔기 때문에 저를 고용하는데 어떠한 문제점도 없을 겁니다. 저를 뽑아야 하는 이유는 다음 4가지입니다. 첫째로, 저는 근면 성실하므로 포도밭과 양조장에서 일을 잘 해낼 수 있습니다. 둘째로, 수입사 마케터로 활동한 만큼 소셜미디어 관리를 할 수 있습니다. 셋째로, 매달 당신의 와이너리에서의 이야기를 기사로 써 한국 내에서 마케팅 효과를 누릴 수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한국에 수출을 하고 있거나 할 계획이라면 판매를 늘리는 데 도움을 보탤 수 있습니다. 포도밭과 양조장에서의 경험을 정말 쌓고 싶고 이를 위해 많은 걸 희생할 준비가 되었습니다. 저를 고용하신다면 곧 좋은 선택이었음을 깨닫게 되실 겁니다. 당신의 답변을 기다리겠습니다. 마담, 므씨유, 제 진심을 받아주시길 간절히 기원합니다. 다니엘 드림."




 밤 9시가 넘어가는 시간에 보르도 시내 한구석에 자리 잡은 '르 쁘띠 박'이라는 이름의 작은 와인바에는 시내 한가운데 있는 와인바 보다는 한가해 혼자 시간을 보내러 오기에 아주 적합했다. 며칠 만에 바깥 나들이었다. 내 앞에서는 흰머리의 나이가 조금 있는 소믈리에가 내가 방금 주문한 보졸레[8] 와인의 전설, '막셀 라삐에르, 모르공' 와인을 따고 있었다. 내 잔에 따르게 전, 본인의 작은 잔에 조금 따라 향을 맡고 잔을 휘휘 돌리고 다시 향을 맡아본다. 그러더니 잔을 잡고 목을 빠르게 뒤로 한껏 젖혀 입에 그 작은 양의 와인을 털어 넣고[9] 입에 바람을 집어넣어 '호로록' 소리를 내더니 이내 소믈리에의 목젖을 지나 꿀꺽하는 소리와 함께 와인이 넘어갔다. "손님, 이 와인은 디캔팅[10]을 하는 것이 더 좋을 것 같습니다만"이라는 그의 말에 알겠다는 표시로 고개를 가볍게 끄덕여 보였다. 대화할 기분이 아니라는 것을 손님을 대해온 그 많은 경력으로 단번에 캐치했는지 디캔팅을 하고 와인을 따라주는 순간까지도 불필요한 말은 일절 붙이지 않았다. 덕분에 나는 마음의 심연에 다시금 집중할 수 있었다. 며칠 전, 이메일을 보낸 바로 다음날부터 답장이 오기 시작했다. 예상했겠지만 긍정적인 답변은 없었다.


'친애하는 다니엘에게. 먼저 우리 와이너리에 지원해 주어서 감사의 인사를 전합니다. 안타깝게도 현재 우리의 모든 팀은 차있는 상태라서 당신을 채용할 수 없습니다. 혹시나 인원 결손이 발생한다면 연락을 드리겠습니다.'


'다니엘에게. 우리는 현재 채용을 진행하고 있지 않습니다. 그럼.'


'메일이 차단됨 champ.andre.robert@free.fr(으)로 보낸 메일이 차단되었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아래 기술 세부정보를 참조하세요.'


'안녕하세요. 보내주신 이력서는 잘 받았습니다. 아주 흥미로운 지원 내용입니다. 당신이 꼭 일자리를 찾기를 기원합니다. 우리는 현재 채용을 진행하고 있지 않습니다. 건승을 빕니다.'


'다니엘에게, 당신의 지원에 감사드립니다만 현재 우리 와이너리는 당신이 원하는 자리를 제안할 수 없습니다. 좋은 기회로 꼭 포도재배 일을 구하기를 바랍니다.'


 무슨 자신감이었을까. 사실 이렇게까지 거절 메일을 많이 받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이력서를 쓰면서 얼마나 많은 흥분에 사로잡혔었나. 나도 나를 뽑고 싶다고 김칫국을 들이마신 것에 대한 결과는 처참했다. 630개 중에 답장은 100개 정도, 그중에 60%는 메일 주소가 잘못되었다는 자동 발송 메일이었고 나머지는 전부 채용할 수 없다는 답변이었다. 이제서야 프랑스에 오래 살았던 지인이 해준 충고가, 최대한 많이 알아보고 해결한 뒤에 프랑스로 오라는 말이 뼛속 깊이 와닿았다. 이쯤 나의 자존감은 바닥도 모자라 지하를 뚫고 곤두박질치고 있었다. 집을 구해보려는 시도는 번번이 실패했고 주변에 도움도 쉽게 요청하지 못했다. 일자리라도 먼저 만들어보겠다며 이력서를 다듬어서 수백 개 와이너리에 보내봤지만 프랑스어가 모국어도 아니고 프랑스인도 아니며 양조 관련한 학위도 없는 먼 곳에서 온 검은 머리의 동양인을 원하는 곳은 한곳도 없었다. 이런 느낌이 얼마 만인가. 그래, 처음 대학 졸업할 때가 되어 이력서를 썼을 때도 이런 좌절감을 느꼈었다. 당시의 나는 어린 마음에 그저 와인을 피하고 싶었다. 닥치는 대로 쓴 이력서는 줄줄이 떨어졌고 면접에 가도 결국엔 불합격이라는 메시지를 받아오며 자존감은 바닥을 쳤었다. 하지만 지금은 일자리를 못 구하는 데다가 지낼 수 있는 집마저 없는, 돈 떨어지면 바로 노숙행이었다. 돈은 갈수록 떨어지고 계속 이곳저곳 에어비엔비를 옮겨 다녀야 했고 야심 차게 준비했던 취업 프로젝트는 이대로 침몰하고 있는 듯 보였다.


 정신을 차렸을 때는 시끄러운 음악소리 속에서 디캔터에 남은 마지막 와인을 잔에 따르고 입에 털어 넣고 있었다. 말 한마디 하지 않고 홀로 한 병을 다 비우니 취기가 금세 머리끝까지 돌았다. "메르씨 므씨유" 한 마디를 남기고 터덜터덜 나와 트람 막차를 타고 숙소로 돌아왔다. 이미 자정을 넘긴 시간에 모든 불은 꺼져있었고 순백색의 고양이 한 마리만 눈을 밝히고 나를 맞아주었다. 잠에 들기 전, 이메일을 다시 확인했지만 기분을 달랠만한 제목의 답장은 오지 않았다. 추운 날, 여주인이 꺼버린 난방에 얼음골처럼 차가워진 다락방에서 숨죽여 흐느끼는 소리만 방안을 가득 메워갔다.


[1] 남프랑스의 항구 도시

[2] 마르세유에서 처음 만들어진 것으로 알려진 지역 특산 허브 리큐르로 아니스가 주 재료이기에 아니스 풍미가 강하게 느껴진다. 보통 아페리티프로 많이 즐기며 물에 희석하여 먹는 것이 일반적이다.

[3] 프랑스는 아직까지도 DVD로 영화를 보는 것이 일상적이며 이때 묵었던 숙소에서는 DVD만 200장 이상 갖고 있을 정도로 영화 팬이었다.

[4] 둘 모두 유명한 샴페인 하우스의 이름이다.

[5] 프랑스는 가끔 놀라운 시스템을 지니고 있는데 우편의 중요성이 상당하다. 특히 은행 계좌를 닫을 때, 통신사를 해약할 때 편지를 써서 보내야 처리된다.

[6] 보르도 와인의 등급 체계로 1855년 제정되었고 현재까지도 이어진다. 이 등급에 속한 와이너리들은 아주 뛰어난 와인을 만들어낸다.

[7] 전부 와인 명산지로 보르도는 프랑스 남서부에 위치해있으며 까베르네 소비뇽과 메를로 품종을 주로 하여 힘이 강한 레드 와인으로 유명하다. 부르고뉴는 프랑스 중동부에 위치해있고 피노 누아 품종으로 아주 섬세한 고급 레드 와인을 만들어낸다. 루아르는 프랑스 북서부에 위치해있으며 소비뇽 블랑과 슈낭 블랑으로 만든 화이트 와인이 유명하다. 샴페인은 프랑스 북동부에 위치해있고 기포가 있는 스파클링 와인의 왕이라고 불리는 지역이다. 쥐라와 사부아는 부르고뉴와 인접해있는 지역으로 최근 각광받고 있는 와인 생산지다.

[8] 부르고뉴 아래에 위치한 와인 생산지로 피노 누아의 동생이라고 불리는 갸메(Gamay) 품종으로 만드는 레드 와인이 유명하다. 특히 보졸레 누보라는 저렴한 와인이 잘 알려져 있지만 그 외에도 10크뤼라고 불리는 품질 좋은 와인들이 있다.

[9] 와인바마다 다르지만 소믈리에가 먼저 테이스팅을 한 뒤 최적의 상태로 서비스를 하기도 한다.

[10] 디캔터라는 용기에 병에 있는 와인을 옮기는 작업으로 원래 목적은 불순물로부터 깨끗한 와인을 걸러내는 것이지만 그 과정에서 산소와 접촉하며 와인이 부드러워지는 효과를 나타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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