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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류병우 Jan 20. 2019

1. 히말라야에 꽂히다

내 마음속의 찌꺼기를 말끔히 날려 버릴 곳..

얼마 전 마누라로부터 매우 불쾌한 말을 들었다. 당연히 마누라로부터 진심 어린 사과를 받아야 마땅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마누라는 진지하게 사과하지 않았다. 카톡으로 간단하게 미안하다는 문자를 보내왔을 뿐.. 생각해 보면 30년을 함께 살면서 마누라가 자기 잘못을 인정한 기억이 없다. 물론 집사람이 잘못하는 일이 거의 없기는 하다. 하지만, 이번만큼은 너무나 명백하게 자기가 실수한 일이기 때문에, 진심으로 정중하게 사과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생각할수록 괘씸하다.


얼굴을 마주치고 싶지 않은 마누라와 한집에 사는 게 너무 불편했다. 거의 보름 동안은 마누라가 보기 싫어서 피해 다녔다. 이런 마누라와 계속 혼인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의미가 있을까 싶었다. 가출도 생각해 봤다. 하지만 사실 한집에 살면서도, 40대 중반 무렵이던가, 내가 코를 심하게 골아서 마누라의 숙면을 방해하기 시작한 이후로 우리는 각방을 쓴 지 오래다. 실질적인 별거 중이므로 가출은 실익도 별로 없다. 결국 얼굴을 마주치지 않고 산다는 것은 너무 불편해서, 피하는 일은 포기했다. 아무튼 한 달 동안은 정말 한마디도 안 했다.


아마도 완전히 오만 정이 다 떨어졌나 보다. 어쩌면 정을 떼어야 하는 상황이 다가오고 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2011년 갑상선에서 암이 발견되어 부분 절제 수술을 했다. 수술한 지 6년이 지난 작년 연말 초음파 검사에서 재발의 조짐이 보인다는 판정을 받고, 12월 초에 조직 검사가 예약되어 있었다. 검사실의 담당의사가 조직 채취를 하는데 꽤나 애를 먹는 것 같았다. 절제하지 않은 오른쪽에서 조직을 채취하면서 주삿바늘을 두 번, 세 번 욱여넣는다.


‘그렇구나, 갑상선을 제거한 왼쪽에서는 갑상선암이 림프로 전이되어 위험신호를 보이고 있고, 남겨 놓은 오른쪽에서는 성장하고 있는 악성 결절이 있나 보다.’ 가족과 이별할 시간이 다가왔기 때문에 때마침 마누라와의 정을 떼어야 하게 되었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주 깨끗합니다. 이제 졸업하셨으니, 2년쯤 후에 보시죠.”


2주 후 담당의사로부터 들은 검사 결과이다. 나의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흥, 이것도 아니네.’ 요즘 마누라는 속이 불편해서 동네 내과에서 큰 병원에서 내시경 검사를 해 보라는 권유를 받아서 2주 후에는 마누라가 서울대병원에서 위내시경, 대장내시경 검사를 받는다. 그렇다면 내가 아니고 마누라가?


작은누나가 다니는 대전의 학림사에 새로 대웅전을 지으면서 불상을 세우는데, 불상에 금강경을 필사하여 복장한다면서 나에게 금강경을 필사하라고 한글로 된 금강경을 보내왔다. 마누라가 머릿속을 어지럽히고 있던 터라 뭔가 집중할 일이 필요해서 금강경을 필사했다. 한글로 번역해 놓은 금강경은 한마디로 말이 안 되는 것을 말이라고 하고 있었다. 도대체 이게 말이야 막걸리야? 진짜 부처가 이렇게 문법적으로도 엉망진창인 말을 했던 걸까? 불경은 우리나라에 전파되기까지 여러 가지 언어로 번역, 재번역되는 절차를 거쳤다. 진짜로 부처는 당시에 어떤 말을 했는지 궁금했다. 그래서 언젠가 보았던 도올 김용옥 선생의 불교 강의 동영상을 찾아 다시 보았다.


인도의 동북부 카필라바스투 지역 작은 왕국의 왕자로 태어났다는 부처, 고타마 싯달타의 생전 행적은 역사적으로 확실하게 기록되어 있다. 부처는 쿠시나가르에서 열반에 들며 아난다에게 자신이 태어난 곳(룸비니), 깨달음을 얻은 곳(부다가야의 보리수 아래), 최초의 설법을 행한 곳(바라나시, 일명 녹야원), 열반에 든 곳(쿠시나가르), 이 4곳을 통해서 너희는 나를 기리게 될 것이라고 했다. 불교의 4대 성지를 스스로 밝힌 것이다. ‘그래, 내 마음의 상처의 근본 원인을 찾아 치유하기 위해서, 부처의 행적을 따라 인도로 가 보자.’ 구글 지도를 보며 20박 21일 불교 성지 순례를 계획했다.


싯달타의 어머니 마야부인은 해산을 위해 친정으로 가던 중 룸비니에서 싯달타를 낳았다. 룸비니는 지금 네팔지역이다. 네팔.. 네팔 하면 히말라야, 지리 시간에는 ‘세계의 지붕’이라고 배웠다. 네팔은 동숭동 집 지하에서 인도식당 니로사를 운영하는 나사장(Shiwakoti Nabaraj, 시와코티 나바라즈인데 나는 그냥 나사장이라고 부른다.)의 고향 나라 이기도하다.


마침 HP OB  밴드에 누군가가 지난가을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를 다녀온 후기를 올린 것을 보았다. ‘그래, 히말라야. 거대한 설산의 찬란한 풍광이 펼쳐진 그곳에 가자. 그곳에서 내 마음속의 찌꺼기를 날려 버리자.’


내 마음속 빈자리에 히말라야가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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