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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류병우 Jan 22. 2019

2.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

초보자에게 허락된 히말라야는?

히말라야 트레킹에 대한 후기, 유튜브 동영상을 인터넷에서 검색해 봤다. 히말라야라는 이름은 산스크리트어로 ‘눈이 사는 곳’이라는 뜻이라고 한다. 사시사철 만년설이 덮여있어 붙여진 이름인가 보다. 히말라야는 네팔 북부 - 인도 북부에 걸쳐있는 해발 8000m의 산맥을 말하며, 여기에는 에베레스트를 포함하여 안나푸르나, K2 등이 있다. 그 동네에서는 최소한 해발고도 5000m는 되어야 산이라고 부르고, 그 이하는 그냥 언덕(Hill)이라고 부른단다.


“Life Changing Experience”


누군가의 후기에 나오는 말이다. 올해로 환갑이 된 나에게 변화할 인생이 남기나 한 것일까?


나는 산이란 멀리서 쳐다볼 때 더 아름다운 곳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내 기억 속에 등산은 손에 꼽을 수 있다. 중학교 2학년 때 학교에서 수학여행으로 속리산 문장대를 올라갔었다. 힘들었다는 것 외에는 별달리 기억나는 것이 없다. 고등학교 2학년 여름방학에 친구들과 외설악 흔들바위와 울산바위에 올라갔었다. 그날 산을 내려와서 민박집에서 4명이 한방에서 자다가 화장실을 갔다 와보니, 내가 누었던 자리가 없어졌다. 하는 수 없이 마당의 평상에서 잤다가 온 몸을 모기에게 헌납했던 기억이 난다.


대학교 4학년 여름방학에는 병선이와 둘이서 할아버지를 모시고 시골에 갔다가 계룡산을 동학사에서 갑사로 넘어갔었다. 황간 역전에서 할아버지가 내 생애 첫 보신탕을 사주셔서 맛있게 먹었던 것이 기억난다.


1987년경 HP 다니던 시절에 당시 팀장이던 이지성 차장이 바람을 잡아서 우리 팀원들이랑 북한산 백운대를 한번 다녀왔고, 가을에는 회사 산악회를 따라서 설악산 백담사를 새벽에 출발해서 설악동으로 내려왔다. 아마도 12시간쯤 걸었던 것 같고, 단풍 구경은 못하고 앞사람 발뒤꿈치만 쳐다보고 걸어야 했다. 랜턴을 준비하지 않았기 때문에 막판에는 해가 져서 깜깜한 산길을 내려오느라 고생한 기억이 난다.


결혼 후 혜경이가 네댓 살쯤 된 봄 어느 날, 우리 네 식구가 우이동을 갔다. 산에 간다는 생각 없이 그냥 놀러 나온 것인데, 가다 보니 우연히 북한산을 좀 깊숙이 들어가게 되었다. 여기서 우리 혜경이가 불후의 명대사를 날렸다. “아빠, 우리 이제 산에서 나가자.” 그 말에 뒤돌아서 왔던 길을 도로 내려가기는 싫어서 옆길을 찾아 내려가기 시작했는데, 그 길이 진달래능선 옆의 김병로선생 묘소로 가는 길이었다. 어린 혜경이를 목마 태우고 가파른 길을 내려오느라 꽤나 고생했던 기억이 난다.


가장 최근에 했던 등산은 2004년이던가 아버지와 나, 순기 이렇게 셋이 함께 북한산을 다녀온 것이다. 당시 70대 후반이던 아버지가 3대가 함께 등산을 하고 싶다고 제안하셨고, 아버지는 산에 가려면 체력 훈련을 해야 한다면서 거의 몇 달간 집 근처 낙산과 명륜동 성대 뒷산을 오르내리며 준비하셨던 기억이 난다. 아버지는 나와 순기에게 등산화도 하나씩 사주셨고, 가을 등산복도 사주셨다. 아마도 계속 함께 등산하고 싶으셨나 보다. 가을 주말 어느 날엔가 정릉매표소에서 출발하여 보국문을 거쳐 북한산성입구로 내려왔고, 보국문까지는 계단이 많은 가파른 언덕을 올라가야 해서 좀 힘들었고, 거기부터는 완만한 내리막 길이어서 힘든 것은 없었던 것 같다. 그게 아버지와 함께 한 처음이자 마지막 등산이었다.


보통 사람들은 해발 3000m 이상이 되면 산소가 희박해져서 고산병 증세를 느끼게 된다고 한다. 2016년 1월 해발 600m의 나스카에서 해발 3300m의 쿠스코로 가는 야간버스를 탔다. 저녁 9시에 나스카를 출발하면서 간단한 기내식을 줘서 잘 먹었다. 밥도 잘 먹었으니 졸음이 와서 잠이 들었는데, 얼마 후 잠에서 깨는 순간 갑작스럽게 구토가 나왔다. 어찌해 볼 틈도 없이 토사물을 옷과 바닥에 쏟아냈고, 버스차장이 가져다준 알코올 솜으로 닦아서 간신히 상황을 수습했다. 그때 아이폰 고도계로 확인한 높이가 해발 4300m였다.


출발 전에 한국에서 미리 처방을 받아서 가져간 비아그라도 먹었고, 리마 현지에서 구입한 이뇨제 소로치필도 먹었지만 구토 증상에는 별로 효험이 없었다. 쿠스코 호텔에서는 한 밤중에 숨이 막혀 잠에서 깨었다. 공포감에 헉헉거리며 거친 숨을 몰아 쉬고는 마음을 진정시키고 다시 잠을 청하기도 했다. 아버지가 말년에 폐섬유화로 호흡이 어려우셨는데, 아마도 이런 기분이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해발 3500m 수준인 볼리비아의 수도 라파즈에서는 하도 움직이기가 귀찮아서, 관광을 포기하고 오전 내내 호텔방에서 잠만 자기도 했다. 해발 4000m라는 우유니 소금사막에 갔을 때는 적응이 되었는지 다행히 별문제 없이 지냈다. 아무튼 고산체질은 분명 아니다.


한국어사전에 ‘트레킹(trekking)은 심신 수련을 위해 산이나 계곡 따위를 다니는 도보 여행’이라고 나와 있다. 그렇다. 나는 극기 훈련을 하려는 게 아니다. 다만 거대한 설산이 아무에게나 그냥 보여주는 것이 아닌, 그에 합당한 대가를 치른 사람에게만 보여주는 찬란한 대자연의 풍광을 나의 맨 눈으로 감상하고 싶을 뿐이다.


평소 등산이라고는 1도 안 하던 내가 갈 수 있는 만만해 보이는 코스를 찾아야 했다. 전문등반가가 아닌 일반인에게 접근이 허락된 히말라야 트레킹 코스에는 에베레스트 베이스캠프 트레킹,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 트레킹, 안나푸르나 서킷 트레킹 등 많은 코스가 소개되어 있다. 에베레스트 베이스캠프는 고도가 5364m이다. 아무리 일반인이 간다고 하지만 겁나는 숫자다. 안나푸르나 베이스켐프는 4130m이다. 4000m급은 남미에서 살아 돌아왔으니 가능할 것 같다. 안나푸르나 서킷 트레킹이 눈에 들어왔다. 서킷 트레킹이니까 둘레길 수준이려니 생각하고 내용을 자세히 보니 그게 아니다. 안나푸르나 서킷 트레킹은 안나푸르나 지역을 크게 한 바퀴 도는 것으로, 최소 15일 이상의 기간이 걸리며 ThorungLa Pass 같은 곳은 해발 5400m가 넘는다. 이것도 아니다.


안나푸르나는 히말라야 산맥 중에 높이 8000m 이상인 소위 14좌의 하나로, 풍요의 여신이라는 뜻이라고 한다. 해발 4130m에 있는 베이스켐프(ABC, Annapurna Basecamp)는 안나푸르나를 등정하기 위한 등반대가 정상 공략을 준비하는 곳이다. 보통 봄과 가을에는 정상 정복을 하려는 등반대와 일반 트레커들이 몰려 시장 바닥처럼 붐비고, 롯지도 몇 개 없어서 잠자리를 구하기도 어렵다고 한다. 일반인도 베이스캠프까지는 준비만 잘하면 큰 무리 없이 갈 수 있다고 한다. 국내 혜초여행사에서는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 트레킹을 패키지로 270만원정도에 판매하며 매주 2팀이 출발한다. 한 번에 약 16명 정도가 출발하는데, 트레킹 하는 사람 외에 가이드 1~2명과 8~9명의 짐을 나르는 포터, 4~5명의 cooking staff가 동반하여 매끼 한식을 해 먹으면서 대부대가 움직인다.


혜초여행사와 같은 코스를 운행하는 현지 여행사도 많이 있다. 한 현지 여행사의 안내 페이지에는 ‘12 Days Age 5+’라고 나와 있다. ‘헛! 5살짜리도 갈 수 있다면 이 정도쯤이야..ㅋㅋ’ 근거 없는 자신감이 뿜어져 나왔다. 5살짜리가 갈 수 있다는데, 아무리 내가 저질 체력이지만 5살짜리 만도 못하지는 않겠지..


패키지 프로그램을 자세히 보면 전체 12일이지만 실제 트레킹을 하는 기간은 8박 9일이다. 6일간 올라갔다가 3일에 내려온다. 보통 Pokhara에서 4륜 구동 차량으로 갈 수 있는 Hille까지 이동해서 Poon Hill로 우회하여 ABC까지 갔다가 하산하는 코스가 가장 일반적인 듯하다. Poon Hill은 이름에 Hill이라고 언덕이라는 이름이 붙어있지만, 실제 Poon Hill은 해발 3210m로 우리나라에서 제일 높은 백두산보다 높은 곳이다. Poon Hill 전망대에서는 안나푸르나 1, 2, 3 등 히말라야의 주요 봉우리를 조망할 수 있고, 일몰과 일출이 장관이라고 한다. 하지만 여러 사람의 후기를 보니 긴 휴가를 낼 수 없는 직장인들은 Poon Hill을 생략하고 바로 ABC를 5박 6일 만에 다녀오는 사람도 있다.


windy.com에서 ABC의 날씨를 검색해 봤다. 12월의 ABC는 낮 최고 영하 5도에 밤에는 영하 20도까지 내려가는 완전한 한 겨울이다. ABC까지는 거의 매 2km마다 롯지나 찻집이 있기 때문에 가이드나 포터 없이 혼자 터덜터덜 걸어가면서, 힘들면 아무 롯지에나 들어가서 며칠이고 쉬어가면 된다. 하지만 고도 3000m 이상이 되면 기온이 항상 영하이기 때문에 눈이 오고 나면 녹지 않고 쌓여 있을 것이고, 트레커가 많지 않은 겨울에는 길이 눈에 파묻혀서 자칫 길을 잃어버릴 위험성이 있을 것 같다. 전화도 안 터지는 초행길을 가이드 없이 간다는 것은 불안한 일이다.


비상상황을 대비한 각종 장비를 포함하면 최소한 10kg 정도의 짐은 내가 지고 가야 한다. 숙박에 필요한 짐까지 생각하면 족히 30kg이 될 짐을 나 혼자 다 짊어지고 간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원래는 가이드 라이선스를 가진 가이드는 절대로 짐을 들어주지 않는다고 한다. 그렇다고 혼자 가는데 가이드 따로 포터 따로 고용한다는 것도 웃기는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혼자 트레킹 하는 우리나라 사람들이 가이드 겸 포터라는 개념을 만들어서 포터 라이선스를 가진 경험 많은 포터에게 웃돈을 주고 가이드 역할을 하게 하는 방법을 쓴다고 한다.


패키지로 가면 먹고 자는 모든 것을 챙겨주니 트레커는 오로지 걷고 풍경을 즐기는 것에만 집중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하지만 여러 명이 함께 움직이기 때문에 다른 참가자들과 트레킹 속도를 맞춰야 한다. 단체에 진짜로 5살짜리가 끼어서 함께 가는 것이 아니라면, 이 점이 나로서는 큰 부담이다. 평소 등산을 안 해 봤으니 내가 어떤 속도로 걸을 수 있는지 나도 모른다. 오로지 나만의 컨디션에 맞춰 트레킹을 진행하고 싶다.


일단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를 간다고 생각하고 준비를 해 보자. 뭐부터 준비를 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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