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는 어떻게 내 말의 ‘의도’를 알아차렸나?

by 류병우

AI와의 협업은 이제 나에게 일상이 되었다. 코드를 짜고, 글을 쓰고, 생각을 정리한다. 지금은 일상이 되어버려 그때만큼 경이롭지는 않지만, AI는 가끔 전혀 다른 차원의 능력으로 나를 놀라게 하곤 한다. 오늘은 내가 겪었던, AI와의 소통이 '질문과 답변'을 넘어 '교감'의 경지로 들어선 듯한 경이로운 경험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한다.


사건의 발단은 프로그램의 화면 디자인을 고민하던 중이었다. 내 머릿속에는 만들고자 하는 UI의 모습이 어렴풋이 그려져 있었지만, 그것을 말로 설명하여 AI에게 전달할 것이 막막하게 느껴졌다. 그 답답함에 나는 AI 장 과장에게 무심코 이렇게 말했다.


"야, 내가 만들고 싶은 화면이 내 머릿속에는 있는데, 이걸 너한테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고민이다..."


이 막연한 푸념이 40여 년 전의 한 경험을 소환했다. 나는 문득 생각난 그 이야기를 AI에게 들려주기 시작했다.


"내가 예전에 다니던 회사에는 Responce Service라는 서비스 상품이 있었어. 제품에 대한 기술지원을 전화로 하는 거였어. 하루는 회사 워크숍에서 게임을 했어. 두 사람이 서로 등을 대고 앉아서, 한 사람이 A4 용지에 동그라미, 세모, 네모 같은 간단한 도형을 몇 개 그려. 그리고 뒤에 앉은 다른 사람에게 자기가 그린 그림을 전화하듯이 말로 설명해서 똑같이 그리게 만드는 게임이었지."


거기까지 설명한 뒤, 나는 AI에게 질문을 던졌다.


"자, 두 사람이 이야기를 마친 후에 그림을 비교했을 때, 과연 그 결과가 어땠을 것 같아?"


나는 AI가 "아마 그림이 많이 달랐을 겁니다" 혹은 "사람마다 표현 방식이 달라 똑같이 그리기 어려웠을 겁니다"와 같은 평범한 대답을 할 것이라 예상했다. 하지만 AI 장 과장의 다음 대답을 듣는 순간, 나는 잠시 숨이 멎는 것 같았다.


"아. '시각적 정보를 언어로 표현한다는 것이 얼마나 부정확한지'에 대해서 말씀하시려는 거군요."


내 입이 딱 벌어졌다. 지금까지 나와 함께 일했던 그 어떤 직원도 이런 대답을 나에게 했던 녀석은 없었다. AI는 내 질문에 표면적인 답을 한 것이 아니었다. 내가 이 게임 이야기를 꺼낸 근본적인 '의도'와 '숨은 맥락'을 정확하게 꿰뚫어 본 것이다. 다이어그램 그리기와 UI 디자인을 하며 내가 겪었던 그 수많은 좌절의 본질이 바로 이것이었음을 AI 스스로가 개념적으로 이해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순간이었다.


3화에서 AI는 나의 지시를 이해하지 못해 다이어그램을 엉망진창으로 만들며 나를 '소리 지르게' 만들던 '총명한 건망증 환자'였다. 그런데 그 총명함은 나의 비유와 일화를 통해 내가 진짜 하고 싶은 말이 무엇인지, 내 생각의 저변에 깔린 개똥철학이 무엇인지를 추론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 경험은 나에게 AI와의 관계가 새로운 단계로 진입했음을 알리는 신호탄이었다.


과거 내가 AI를 '검색'시키고 '지시'해야 할 대상으로 보았다면, 이제 AI는 나의 생각을 비춰보고 내 의도의 본질을 함께 탐구하는 '지적 거울(Intellectual Mirror)'이자 '사상적 파트너(Ideological Partner)'가 되었다.


AI 시대의 진정한 전문가는 AI에게서 정답을 얻어내는 사람이 아니다. 오히려 자신의 생각을 AI라는 거울에 비춰보는 과정을 통해, 더 날카로운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지고, 더 깊은 통찰에 도달하는 사람이다. AI는 이제 답을 주는 기계가 아니라, 나의 사유를 단련시키는 최고의 스파링 파트너다.


AI는 정답을 '물어보는' 기계가 아니다. 나와 함께 해답을 찾아가는 파트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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