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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니스 서 Mar 28. 2016

모차르트 피아노 협주곡 제21번
<엘비라 마디간>

음악 에세이 10 - 멈추고 싶은 아름다움


지상의 양식천상의 음악     

   

빵만으로는 살 수 없다지만, 빵이 없으면 살 수 없다. 최초로 자유계약직 음악가가 된 모차르트에게도 음악은 생계와 직결된 것이었다. 당대의 가장 탁월한 피아니스트이기도 했던 그는 피아노에 특별한 애정을 가지고 30여 곡에 이르는 피아노 협주곡을 작곡했다. 그중 피아노 협주곡 제21번, C장조, K.467은 1785년 2월~3월에 작곡한 작품으로, 그해 2월에 완성한 피아노 협주곡 제20번, d단조, K.466을 발표한지 불과 한 달 뒤에 완성한 작품이다. 그는 이 작품을 자신이 주최하는 예약제 연주회에서 독주 부분을 연주할 목적으로 작곡했다.    

   

창작에 대한 열정은 빈곤의 위협 속에서 더욱 불타올랐다. 이 작품의 자필 악보에는 음표와 더불어 생활비를 적은 숫자가 가득 적혀 있다. 그러나 그 후로도 상황은 점차 악화됐다. 모차르트가 동료인 미하엘 푸흐베르크에게 쓴 편지에는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다. “아, 친구여, 지금 나는 이미 자네에게 빌린 돈을 갚기는커녕 더 빌려달라고 사정한다네. 자네가 진정한 내 친구라면 이러한 나의 고뇌를 알 것으로 믿네. 이러한 상황에도 불구하고 나는 예약제 연주회를 열어 급히 필요한 돈을 얻는 방법을 택했지. 그러나 이것조차도 실패로 끝났네. 빈에서는 불행히도 운이 완전히 내게 등을 돌려 벌고 싶을 때조차 한 푼도 벌 수가 없다네.”

   

나날의 양식을 위한 대가는 신의 총애를 받은 천재라 할지라도 피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냉혹한 현실 앞에서 이렇게 처절한 고백을 할 수밖에 없던 모차르트였지만 그의 음악은 때로는 일상에서의 일탈을 꿈꾸게도 하고 힘든 일상을 잠시 잊게도 한다. 현실로부터의 도피든 혹은 초월이든, 천상의 세계로 이끄는 듯한 모차르트 음악의 완벽한 아름다움은 그 자체로 완전한 세계처럼 여겨진다.      

   


멈추고 싶은 아름다움 <엘비라 마디간>     

   

이 작품의 2악장은 1967년작 영화 <엘비라 마디간>의 배경음악으로 쓰였다. 영상과 음악이 더없이 아름답게 어우러진 ‘엘비라 마디간’은 많은 이들이 이 작품의 제목으로 알고 있기도 한다. 이 협주곡은 영화가 나온 뒤로 그 아름다움이 새롭게 조명돼 미국의 빌보드 톱 10에 오르기도 하며, 대중적인 관심과 사랑을 받고 있다. ‘엘비라 마디간’이라는 이름이 붙기 전에 이 작품은 행진곡풍으로 시작하는 1악장으로 ‘군대’라는 별칭이 붙었던 작품이었다. 

   

영화는 이렇게 흐른다. 스웨덴의 귀족이자 군인인 식스틴 중위와 서커스단에서 줄타기를 하던 여인 엘비라 마디간은 사랑의 도피 여행을 떠난다. 뛰어넘을 수 없는 신분 차이뿐만이 아니라 남자는 부인과 두 아이가 있는 가장이기도 했다. 군대를 탈영한 남자와 서커스단을 탈출한 여인의 사랑은 미래를 기약할 수 없는 만큼 더욱 애절하다. 이들의 로맨스는 주로 푸른 풀밭 위에서 이루어진다. 평화로운 초원을 배경으로 모차르트의 선율이 흐르는 가운데 두 연인은 지극한 행복을 누린다. 발각의 위험 속에서 이들의 사랑은 절망적이리만큼 절대적이다. 

   

그러던 어느 날 식스틴 중위의 친구가 그를 찾아온다. 사랑은 군인이었던 한 남자를 전혀 다른 존재로 만든다. 그는 이제 풀밭에 머무르고 싶어 한다. 친구는 그를 설득한다. “나도 풀밭 위에 앉아 있는 것을 알지. 만약 네가 풀잎 하나를 네 눈 가까이에서 보면 그 풀잎은 깨끗하게 보이지. 그 밖에 다른 것은 안 보이고. 그 밖의 모든 건 희미해지거든. 우린 선택을 해야 돼. 식스틴.” 식스틴은 대답한다. 


“하나의 풀잎이 전체의 세상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믿어. 그리고 세상은 풀잎 없이 아무것도 아닌 거지.”

   

사회에서 도피해 오직 사랑만을 선택한 이들이었지만 곧 사랑만으로 살 수 없다는 것을 절박하게 느끼게 된다. 이들 역시 빵의 문제까지 피해갈 수는 없었던 것이다. 이들은 숲에서 열매를 따먹거나 급기야 풀을 먹다가 탈이 나기도 한다. 시작부터 예상된 비극적 결말 앞에서 이들은 마지막을 준비한다. 엘비라와 식스틴은 피크닉 바구니에 와인과 빵을 싸서 들판으로 간다. 이들에게 이것이 마지막 만찬이 될 터였다. 빵 아래에는 총이 함께 준비되어 있다. 

   

마지막까지 이들은 격조 있게 슬픔을 다스린다. 마치 모차르트의 안단테 악장처럼. 와인을 마시며 나눈 마지막 눈맞춤에서 두 사람은 끝내 눈물을 흘리지 않는다. 빵을 한 잎 베어 문 식스틴은 엘비라를 한 손으로 포옹하며 다른 한 손으로 그녀의 머리에 총구를 갖다 댄다. 그렇지만 차마 방아쇠를 당기지 못한다. “할 수 없어.” “해야 해요.” “할 수 없어.” “해야 해요... 하세요. 다른 선택이 없어요.” 이들에게 사랑이 없다면 빵을 먹는 의미 또한 없는 것이다. 

   

머뭇거리는 그들 앞에 어디선가 나비가 날아든다. 그녀는 나비를 따라간다. 그녀가 손 안에 잡은 나비를 떠나보내는 순간 화면이 정지한다. 미소 띤 아름다운 모습이다. 그 위로 총성 한 발이 울린다. 그리고 또 한 번의 총성이 이어진다. 영화는 이렇게 멈춘다. 

   



시인 성찬경은 음악의 아름다움에 대해 이렇게 표현했다. 


“참으로 음악은 지상에서 천상적인 것을 느낄 수 있게 해주는 가장 뛰어난 예술의 형식이다. 우리의 영혼의 구조를 드러내는데 음악 이상의 것은 없다. 그리하여 우리가 최상의 음악을 들으며 이승의 삶에서 문자 그대로 천상적인 것을 엿볼 때 그것은 괴테가 ‘파우스트’를 통해서, “머무르라, 그대는 그토록 아름답다!”하고 말하는 순간이나 다름이 없는 것이다.” 


죽어도 여한이 없는 이들의 사랑은 모차르트의 선율과 함께 지금까지도 많은 이들의 가슴에 파문을 일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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