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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지와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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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니스 서 Mar 22. 2016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황제>
아다지오 악장

음악 에세이 6  - 낭만적 혁명

“우리 모두 리얼리스트가 되자. 그러나 가슴속엔 불가능한 꿈을 지니자!     


만일 우리가 낭만주의자이고

도저히 구제할 길 없는 이상주의자이며

우리는 불가능한 것을 이룩하려고 한다고 말한다면

천 번이고 만 번이고 맞는 말이다.     


우리는 ‘그렇다’고 해야 할 것이다.”     

   

시를 사랑한 혁명가 체 게베라의 말이다. 죽음이 눈앞에서 오가는 혁명의 현장에서 그는 시를 읽었다. 총살될 당시 그의 배낭에는 69편의 시가 들어있었다. 그는 자신의 현실을 부정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는 더 나은 현실에 대한 가능성을 보았다. 그는 꿈꾸었고, 그 꿈이 그를 낭만적인 혁명가로 만들었다.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제5번 ‘황제’의 2악장     

   

“주위에서는 온통 파괴적이고 무질서한 모습밖에는 보이지 않습니다. 온통 북소리, 대포소리, 온갖 종류의 비인간적인 처참함뿐입니다.”


나폴레옹 군대가 빈을 점령했다. 당시에 빈에 남아 있던 베토벤의 상황은 절망적이었다. 그렇지만 현실의 절망을 그는 다시 한 번 음악으로 승화시킨다. 이 혁신적인 작품은 황폐한 전쟁터에서 그가 음악으로 이룬 혁명인 것이다.

   

압도적인 제1악장, 열렬한 제3악장도 특별하지만 두 악장 사이에 있는 제2악장은 각별한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다. 군대가 물러간 후에 ‘죽어버린 평화’라고 탄식하던 베토벤은 숭고미를 담은 악장으로 대응한다. 이 아다지오 악장이 흐르는 영화 두 편을 따라가 보자.      



1.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     

   

보수적인 명문학교의 학생들이 의자에 앉아있다.


“이제 여러분은 생각하는 법을 다시 배우게 될 거야. 여러분은 말과 언어의 맛을 배우게 될 거야. 누가 무슨 말을 하든지 말과 언어는 세상을 바꿔놓을 수 있다.”


교과서가 뭐라고 하든지 말과 언어가 세상을 바꿔놓을 수 있다고 진심으로 믿는 사람은, 위험하다.

   

그는 계속 도전한다.


“시가 아름다워서 읽고 쓰는 것이 아니다. 인류의 일원이기 때문에 시를 읽고 쓰는 것이다. 인류는 열정으로 가득 차 있어. 의학, 법률, 경제, 기술 등은 삶을 유지하는데 필요해. 하지만 시와 미, 낭만, 사랑은 삶의 목적인 거야.”


그리고 휘트먼, 소로우, 프로스트 등 그가 일으킨 죽은 시인들의 목소리는 교실 안의 또 다른 죽은 시인들을 일깨운다. 그들은 비로소 자신만의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다. 그 목소리는 그들의 삶을 바꾼다.

   

닐은 연극배우의 꿈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닐의 아버지는 그가 의사가 되기를 바란다. 연극에 출연하기로 한 전날, 닐의 아버지가 닐을 찾아온다. 아들이 연극에 출연하는 줄도 모르는 거짓말쟁이가 됐다고 분노한다. 그리고 세상이 끝나도 연극에 출연할 수 없다고 못 박는다. 절망에 빠진 닐은 키팅 선생을 찾아간다.

   

키팅 선생의 방문이 열리자 흐르는 ‘황제’의 아다지오 악장. 그곳에서 닐은 자신의 진심을 드러낸다. 연극은 자신의 전부라고. 키팅 선생은 연극에의 열정과 확신을 아버지께 말씀드리라고 말한다. 그렇지만 자신에 대한 아버지의 기대와 희생을 아는 닐은 그 말을 할 수가 없다. 조용한 눈물처럼 잔잔히 흐르는 음악 속에서 닐은 가장 치열한 내적 전쟁을 치른다.

   

연극은 닐의 탁월한 연기와 함께 성공적으로 끝났다. 그러나 닐의 아버지는 닐을 집으로 끌고 간다. 그리고 육군사관학교로 전학해 하버드 의대에 진학해야 한다고 말한다. 격분한 닐은 자신의 진심을 말하려다 결국 연극이 아무것도 아니라고 말한다. 그날 밤, 스스로를 속이며 살 수 없었던 닐은 죽음을 택한다.

   

학교는 이 사건의 책임을 학교와 불협화음을 이루던 키팅 선생에게 돌린다. 키팅 선생이 학교를 떠나며 마지막으로 교실에서 나가는 순간, 학생들은 하나 둘 책상 위로 올라선다. 그들은 책상 위에서 세상을 보게 한 키팅 선생의 가르침을 기억한다.


“이 위에 선 이유는 사물을 다른 각도에서 보려는 거야. 이 위에서 보면 세상이 무척 다르게 보이지. 믿기지 않는다면 너희들도 한 번 해봐. 어서, 어서. 어떤 사실을 안다고 생각할 땐 그것을 다른 시각에서 봐라... 너희들의 목소리를 찾을 수 있도록 투쟁해야 해.”

   

키팅 선생의 가르침은 의식을 전복시키는 힘이 있다. 그가 일깨운 학생들은 더 이상 죽은 시인이 아니다. 그들에게는 자리에 앉으라는 교장의 권위적인 외침보다 자신의 내면의 목소리가 더 크게 울린다.           



2. 영화 <자전거 탄 소년>     


한 소년이 세상이 던진 돌을 맞고 쓰러진다. 현실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영화로 유명한 리얼리스트 다르덴 형제가 영화에 처음으로 음악을 사용했다. 이 작품에서 비참한 현실과 어우러져 성스럽기까지 한 베토벤의 아다지오는 영화에서 잊기 힘든 울림을 만든다.   

   

보육원에서 지내는 시릴은 아버지에게 버림받았다는 사실을 인정하기 싫다. 시릴은 보육원을 탈출하려다 붙잡힌다. 암울한 상황에서 그는 낙담한다. 그때 아다지오 악장의 서주의 일부분이 비통하게 흐른다. 아름다운 음악은 그러나 이내 멈추고 거친 삶이 이어서 펼쳐진다. 소년은 결국 아버지에게 철저히 버림받았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돈이 필요하다는 이유로 소년이 애지중지하던 자전거를 아버지가 팔아버렸다는 것도. 소년은 자해한다. 잔혹한 현실에서 다시 아다지오의 서주가 잠시 흐른다.

   

그렇지만 일말의 희망이 있다. 자전거를 되찾아 주고 위탁모가 된 사만다의 보살핌이다. 그러나 상처 깊은 시릴은 여전히 거칠다. 시릴은 나쁜 친구와 어울리며 도둑질을 하고 그 돈을 아버지에게 들고 간다. 아버지는 소년을 범죄자 취급하며 내쫓는다. 자전거를 타고 사만다에게 돌아가는 시릴. 그 참혹한 순간에 아다지오의 서주가 울린다. 음악은 곧 멈춘다.

   

사만다는 피해가정에 보상을 하기로 한다. 그렇지만 가게에서 시릴과 마주친 피해자의 아들은 나무 위로 도망친 시릴에게 돌을 던진다. 돌을 맞고 떨어진 시릴은 오랫동안 미동도 없이 나무 밑에 쓰러져 있다. 그는 죽은 것 같다. 비극이다. 그런데 시릴의 주머니에서 불현듯 벨이 울린다. 오지 않는 시릴을 찾는 사만다의 전화일 것이다.

   

죽은 줄 알았던 시릴은 깨어난다. 상처투성이의 몸과 비틀거리는 걸음으로 쓰러진 자신의 자전거로 다가간다. 그리고 그것을 일으켜 세운다. 자전거를 타고 사만다에게 가는 시릴의 등 뒤로 아다지오 악장이 다시 시작된다. 그러나 이제 선율은 오래 이어진다. 가혹한 현실에서도 여전히 그를 깨우는 소리들이 있다. 그 힘이 그를 일으켜 세운다. 절망과 타락과 죽음의 문턱에서도.

   




‘황제’의 2악장은 베토벤의 가장 아름다운 아다지오 악장의 하나로 손꼽힌다. 그렇지만 이 작품은 ‘온갖 종류의 비인간적인 처참함’ 속에서 탄생했다. 아름다움은 현실을 미화하는 것이 아니다. 불편한 진실을 직시하지만 여전히 불가능한 꿈을 꾸게 하는 것, 그것이 아름다움 아닐까? 아름다움을 품은 사람은 같은 현실을 다르게 본다. 관점의 변화는 현실의 변화를 일으킨다. 음악과 시가 가진 아름다움에는 혁명적인 힘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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