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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니스 서 Mar 24. 2016

위험한 진실

음악 에세이 7 - 가면을 벗어라.


지갑을 분실했다. 주의했어야 했지만 설마 했다. 장소가 연주자 대기실이었기 때문이다. 다소 협소한 공간이었다. 무대로 나가기 직전에 다음 연주자들이 대기실에 들어오는 것을 보았다. 지갑을 챙길까 하다가 무대에 지갑을 들고 갈 수도 없는 노릇인데다, 성장을 한 연주자들을 보니 무슨 일이 생길까 싶었다. 연주를 마치고 집 근처에 와서야 지갑이 분실된 것을 알았다. 하필 그날은 현금이 꽤 들어있었다. 공연장에 서둘러 연락했다. 빈 지갑은 화장실에서 찾았다고 했다. 신고를 하면 감시카메라를 통해 잡을 수도 있다고도 했다. 잠시 망설이다가 그만 두기로 했다. 한 연주자를 범인으로 마주하고 싶지 않았다.


지갑 분실 사건에 대한 주변의 한결같은 반응은 ‘다른 이도 아니고 연주 직전의 연주자가 어떻게 다른 이의 지갑에 손댈 수 있는가?’였다. 무대 뒤는 누구에게도 숨길 수 없는 자신의 모습을 직면하는 시간 아니던가? 바로 그때 연주 중인 다른 연주자의 지갑을 훔친다는 것은 충격적이었다. 그는 내 얼굴을 봤을 것이다. 나는 그 얼굴을 기억하지 못한다. 다만 어떤 얼굴이었을까가 씁쓸하게 궁금하다.

   

내 오랜 친구 중에 언제나 깍듯이 예의 바른 친구가 있다. 그녀는 모든 이에게 한결같은 공손함으로 대한다. 평생 친형제와도 싸움 한 번 한 적 없이 컸다고 한다. 보기 드물게 여리고 고운 친구였다. 대학에서 음악을 전공한 그녀는 졸업하자마자 직장생활을 했다. 그리고 직업의 요구에 따라 오랜 시간 감정 노동에 시달렸다. 직장생활 10년이 지나자 누구보다도 섬세했던 그녀는 완벽한 포커페이스가 됐다. 마네킹 같은 그 얼굴이 섬뜩했다. 친구에게 다시 음악을 해야 한다고 만날 때마다 말했다. 그녀의 표정을 되찾고 싶었다.

   

그녀는 먼 길을 돌아 다시 음악을 한다. 그리고 공백기가 길었던 만큼 대가를 호되게 치르고 있다. 어느 날 그녀가 말했다. 음악이 아니라 음악 하는 사람들 때문에 더 힘들다고. 음악 앞에서 완전히 마음을 열면서 사람들에게도 솔직한 속마음을 드러내게 되는데, 결과적으로 더 많은 상처를 받는다고. 그녀가 음악을 통해 정신이 고양될수록 정서는 불안정해지고 생활은 불편해졌다. 그녀의 괴로움이 커질수록 직장생활 잘 하는 친구를 애매히 음악으로 끌어들였나 싶어 나의 자책도 커져갔다.

   

한 선생님과 겨울 여행을 갔는데 이 친구도 함께 했다. 영주에서 부석사와 소수서원을 보고 밤늦도록 이야기를 이어갔다. 그때 선생님께 나의 고민을 이야기했다. 내가 음악을 가치 있게 생각한다는 이유로 주변의 여러 사람에게 내 생각을 종용한 것은 아닌가 싶다고. 여행에 함께 간 또 한 명 역시 나의 권유로 다시 대학원을 들어갔다. 그리고 여행 전에 졸업연주를 끝낸 상태였다. 아이가 셋인 가정생활과 개척해야 하는 음악인의 삶 사이에서 그녀 또한 새롭게 갈등하고 있었다.

   

이들이 음악을 다시 선택한 이후에 직면한 여러 문제에 실질적으로 힘을 실어줄 수 없다는 것이 마음의 짐이 됐다. 수많은 음악인들의 스승이기도 한 선생님은 그들의 선택은 나의 강요로 이루어진 일이 아니라고 하셨다. 우리는 서로에게 상대방의 영혼의 목소리를 들려주는 존재이며, 내 영혼의 목소리를 상대방을 통해 듣는 거라고 말씀하셨다. 나는 인간관계에 관한 이렇게 의미 깊은 해석을 들어 본 적이 없다. 그분을 통해 나는 내 영혼의 목소리를 수없이 많이 들어왔던 까닭이다. 내가 미처 듣지 못하던 나의 목소리를. 그 소리는 사람이 사람에게 줄 수 있는 가장 귀한 울림이었다.

   

진실을 드러내는 것에는 언제나 위험부담이 따른다.


우리는 대개 예의와 교양 등의 이유로 좋은 얼굴로 좋은 말들만 하고 싶어 한다. 그래서 불편한 진실 앞에서 손쉽게 쓸 수 있는 몇 개의 가면을 가지고 있다. 얼굴뿐만이 아니라 성격도 그렇다. 문학 평론가 신형철은 성격이 일종의 습관이며, 어느새 피부가 돼버린 옷이라고 비유했다. 누구나 자신에게 가장 편한 성격을 걸쳐 입는다는 것이다. 문제는 언제든 벗을 수 있는 가면이고 옷이라고 생각했는데 어느 순간 마리오네트가 되어버린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는 것이다. 맡겨진 역할이라는 외부의 통제력에 따라 기계적으로 움직이는.

   

겨울 여행을 다녀온 직후에 오랜만에 대학원에서 스터디를 하던 사람들을 만났다. 많은 대화가 오갔는데 만남의 끝에 이르도록 정작 그간 어떻게 살았는지, 지금은 어떠한지에 대해서는 거의 나누지 못했다. 나는 지나가는 말처럼 자신이 심한 우울증을 앓고 있다고 밝힌 한 사람이 마음에 걸렸다. 가장 활발하게 이야기를 이끌어가던 사람이었다. “지금 이렇게 유쾌하게 있다가 집에 가서는 괴로운 거예요?” 그 순간 모임의 분위기가 무장해제되는 것을 느꼈다. 우리는 꽁꽁 싸맨 우리만의 이야기들을 드디어 나누기 시작했다.

   

본래 모습과 달리 형성된 이미지는

스스로를 구속한다. 


이미지가 실체를 앞서갈 때 광대의 삶이 시작된다.


지나치게 화려한 화장과 치장을 한 연주자들을 보면 위태롭다. 가식적인 표정과 미사여구로 포장된 프로필을 봐도 그러하다. 음악인들은 말할 수 없는 것까지도 가장 직접적으로 영혼에 호소하는 이들이다. 스스로를 기만할 때 그에게 남는 것은 공허함뿐이다. 음악에서 정신이 빠지면 기능으로 전락한다. 무대 위의 모습과 무대 뒤의 모습이 같을 수는 없어도, 적어도 모순되면 안 된다고 믿는다.




이제 우리는 우리의 정체를 밝힐 때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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