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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지와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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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니스 서 Mar 25. 2016

브람스 피아노 협주곡 제2번

음악 에세이 8 - 내 속에서 솟아 나오려는 것, 바로 그것


브람스는 파악하기 힘든 사람이었다. 그는 세상과 자기 자신에 대해서 지나치게 신중했으며 끊임없이 회의했다. 이것은 대인관계에 큰 어려움을 가져왔다. 무뚝뚝한 태도와 말투는 사람들에게 벽이 되었다. 그렇지만 그것은 자신의 내면을 정확하게 드러내기 싫어하는 브람스의 방패이기도 했다. 작곡가 브루흐가 자신의 작품에 대한 평가를 부탁했을 때 그 일이 내키지 않자, “그런데 자네, 이 오선지는 어디에서 구했나? 최고급이군!”이라고 말했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이러한 그의 성격은 그를 미로 같은 사람으로 느끼게 했다. 

   

“나는 아주 여린 스케르초를 가진 아주 작은 피아노 협주곡을 한 곡 만들었답니다.” 브람스가 친구에게 말한 이 작품은 피아노 협주곡 제2번을 일컫는 것이었다. 이것은 그의 역설적 표현이었다. 이 작품은 그때까지 창작된 피아노 협주곡 중에서 가장 큰 규모를 가진 중후하면서도 장대한 작품이었던 것이다. 일반적인 협주곡의 3악장 구성과는 달리 4악장 구성이며, 피아니스트는 약 50여분에 이르는 긴 시간 내내 자신의 모든 것을 쏟아내야 한다.      



1. <좁은 문>과 고독의 길     


브람스는 평생 독신으로 지냈다. 그렇지만 그는 아가테 폰 지볼트, 엘리자베스 폰 헤르초겐버그, 율리에 슈만 등의 여인들과 끊임없이 사랑했다. 이 중 아가테는 약혼까지 했던 사이였다. 그렇지만 마지막 순간에 그는 돌아섰다. 창작을 위한 자신의 자유와 고독이 침해받을까 봐 그는 두려워했다. 아이들을 좋아하고 결혼에 대한 미련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결혼하지 않았다. 그것은 그의 완벽주의적인 성향 때문이기도 했다. 그는 그의 일방적인 파혼 선언에 대해, 만약 자신의 작품이 혹평을 받았을 때 혼자 있는 방에서는 견딜 수 있지만 아내의 걱정 어린 시선을 받게 된다면 참을 수 없을 것이라고 친구에게 말했다. 


“때로는 한 사람이, ‘형제여, 피곤하거든 내게 기대라’라고 말하면, 다른 한 사람이 ‘내 곁에 네가 있음을 느끼는 것만으로도 내겐 힘이 돼’하고 대답하는 두 사람의 순례자들처럼 내내 함께 인생의 길을 걸어가게 해 주시옵소서. 아닙니다! 하느님, 당신께서 저희에게 내리신 길은 좁은 길, 두 사람이 나란히 걸을 수 없는 좁은 길이옵니다.”    

                                                                                                        (앙드레 지드, <좁은 문> 中)

  

“저에게는 절대적인 고독이 필요합니다... 위대한 작품이 제 앞에 있는데, 저는 그것이 그렇게 즐겁지는 않지만 자신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만일 내가 라인 강이나 더 멋진 곳에서 즐거운 시간을 보냈더라면, 그런 작품을 쓸 수 없었을 거라고 말입니다.” 브람스가 여행이나 교제 자체를 금욕적으로 거부한 것은 아니었다. 그렇지만 그가 걸어간 좁은 길은 평생 위대한 작품이었다.     

      


2. <회색 노트>와 클라라 슈만     


첫 만남에서부터 흠모했던 클라라에 대한 사랑도 마찬가지였다. 브람스는 클라라를 ‘내가 진정 사랑했던 오직 한 사람’이라고 고백했다. 클라라의 남편 슈만이 자살을 시도한 후, 정신병원에서 요양하고 있던 1856년 5월에 브람스는 클라라에게 이렇게 편지했다. “나의 사랑하는 클라라... 너무도 당신을 사랑하기 때문에 말을 시작할 수가 없군요. 흠모하는 것만으로는 모자랍니다. 나는 당신을 내 연인이라고 부르고 싶어요.” 그랬던 그가 2개월 후에 슈만이 세상을 떠나자 오히려 그녀를 한 여인으로 소유하기보다는 스승의 부인이자 음악적인 동료로 예의를 갖춰 대했다.      


“자기 자신이 창조하기 위하여 태어났다고 자각할 때 가장 중대하고 가장 아름다운 사명을 띠고 있으며 다해야 할 커다란 의무를 가졌다고 생각할 것. 그래야 하지 않을까? 그렇다. 성실할 것! 모든 일에 성실하고 항상 성실할 것! 아아, 이런 생각은 얼마나 가혹하게 나를 쫓아다니는 것인가! 


오오, 사랑하는 벗이여, 나는 너를 내게 주신 신께 얼마나 감사하는지 모른다. 우리들은 우리들 자신을 똑똑히 알고 우리들의 진정한 천분을 똑바로 헤아리기 위하여 얼마나 서로를 필요로 할 것인가?... 나에게 살아가는 힘을 주는 것은 사랑, 그리고 나는 한 사랑을 가졌을 뿐. 그것은 너다!”     

                                                                                                 (마르탱 뒤 가르, <회색 노트> 中)     


클라라는 언젠가 브람스가 자신에게 수수께끼 같은 존재라고 고백한 적이 있다. 아마도 브람스는 그 자신조차도 풀기 힘든 수수께끼 같은 사람이었을 것이다. 그러한 내적 갈등과 모순은 그의 작품에도 여실히 드러난다. 브람스의 작품은 연주하기 어려운 작품으로 손꼽히는데, 정서적 깊이와 음악적 내용을 이해하지 못한다면 연주는 미궁에 빠지기 십상이다. 그렇지만 클라라는 오직 음악으로만 말하는 브람스를 음악으로 가장 깊이 이해한 지음(知音)이었다.     

 


3. <데미안>과 브람스      


“내 속에서 솟아 나오려는 것, 바로 그것을 나는 살아보려고 했다. 왜 그것이 그토록 어려웠을까?”      


싱클레어의 고백처럼 사람의 일생은 어쩌면 진정한 자기 자신을 만나기 위한 여정인지도 모른다. 그런데 이 자아실현은 오히려 기존의 자기 자신을 깨뜨려야 가능하기에 그 길이 험난하다.      

   

“그것은 아무 희망도 없이 사랑하는 사람의 이야기였다. 그는 자기 영혼 속에 완전히 틀어박혀 사랑으로 활활 타 없어질 것 같았다. 그에게는 세계도 사라졌고, 푸른 하늘도 푸른 숲도 보이지 않았다. 그에게는 졸졸거리는 시냇물 소리도 들리지 않았고, 하프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모든 것이 사라져버렸고 가난하고 비참하게 되었다. 

그러나 그의 사랑은 자라났다. 그는 자기가 사랑하는 그 아름다운 여인을 단념하느니 차라리 죽거나 멸망해버리기를 원했다. 그때 그는 자기의 사랑이 자기의 내부에 있던 모든 것을 불태워버렸음을 느꼈다. 그래서 그 사랑은 강해지고 자꾸 끌어당기고 또 끌어당겼다.”     


결국 그의 사랑은 사랑하는 여인을 그에게로 이끌었다. 그리고 그때 기적이 일어난다. 

   

“그는 단지 한 여자를 얻음으로써 온 세계를 마음속에 갖게 됐다. 하늘의 모든 별들은 그의 내부에서 타올랐고 그의 영혼을 뚫고 지나가며 환희의 불꽃을 발했다. 그는 사랑을 했다. 자기 자신을 발견한 것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기를 잃어버리기 위한 사랑을 하는 것이다.”     

   

브람스의 ‘피아노 협주곡 제2번’은 피아노 협주곡이라기보다는 피아노 교향곡이라는 표현이 어울릴 만큼 피아노와 오케스트라는 하나로 융합되어 있다. 그렇지만 이 작품은 두 가지 점에서 특별한 성격을 지닌다. 먼저 피아노가 이 작품에서 온전히 자아실현을 하고 있다는 것과 동시에 피아노가 또 하나의 오케스트라와 같은 비중을 가져 마치 두 개의 오케스트라를 위한 협주곡처럼 들린다는 것이다.      

   

“돌이켜 생각해 봐. 그 길이 그렇게 어렵기만 했나? 아름답지는 않았나? 혹시 더 아름답고 더 쉬운 길을 알았던가?”

                                                                                                          (헤르만 헤세, <데미안> 中) 

   




이 작품에서 피아노와 오케스트라는 완벽하게 한 몸을 이루면서 각각의 개성을 더욱 빛나게 살려 준다. 이처럼 쉽게 이루기 힘든 아름다움을 브람스는 이 협주곡에서 성취해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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