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떨결에 도쿄로 이주한 서른 살의 좌충우돌 적응기 (3)
임시 거처인 serviced apartment 에 처음 도착 했을 때 놀란 것은 역시 화장실이었다. 화장실과 세면/샤워실이 분리되어 있다는 것이 조금 놀라웠다. 음... 왜...?당황스러웠다. 그럼 청소는 어떻게 하라는거지? 하지만 일단 여기서는 내가 청소를 신경쓸일은 없으니까 그냥 그러려니 했다. 어차피 일본에서 흔한 변기 위에 손을 씻는 곳이 붙어있는 상태라서 크게 불편함은 없었다.
시간이 흘러, 내 집을 구해 나온 지금은 나름의 청소 방식이 있고, 편리한 점이 있다는 것을 이해하게 되었다. 먼저 변기에 붙은 비데에 변기를 청소할 수 있는 노즐 모드가 탑재되어 있다는 점. 청소 모드를 통해 문제 없이 변기를 청소할 수 있다. 두번째는 생각보다 편리한 시스템이라는 것. 건식 화장실을 유지할 수 있다. 그리고 혼자가 아니라 둘 이상이 거주한다면 분리 시스템이 분주한 아침에 무척 편리할 것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집이 좁아 터져도 욕조가 있다. 목욕을 사랑하는 일본인의 특성을 여기서 한껏 느낄 수 있다. 한국은 대부분의 친구들이 있는 욕조도 뜯어내고 샤워부스로 리모델링하는 추세인데. 실제로 욕조 사용률이 각 가정에서 얼마나 되는지 궁금하다. 어쩌면 이렇게 "우리집에선 언제든 목욕을 할 수 있어"라는 안정감만 가지고, 다들 온천이나 목욕탕에 가는 건 아닐까? 한가지는 여전히 미지수인데. 왜 어쩌다가 이렇게 분리된 시스템을 모든 집에서 차용하게 되었는지. 여전히 알 수가 없다.
우리집으로 이사오고 겨울이 왔다. 점점 추워지더니, 어느덧 라디에이터를 켜고 전기 장판으로 이불 속을 데우지 않으면 잠들기 어려워졌다. 일본집은 단열이 0에 가깝다. 우선 베란다로 통하는 유리문이 정말정말 얇다. 한국의 이중창과 두꺼운 유리가 단열에 얼마나 큰 역할을 하는지 겪어보지 않으면 모를 것이다. 왜 이렇게 얇은 유리를 쓸까 여러번 고민했지만 역시나 답은 지진뿐이었다. 밖으로 탈출해야하는데 문틀은 움직이지 않고 유리를 깨야만 하는 경우, 이중창이나 두꺼운 유리는 너무 어려울 테니까. (집에 망치를 두면 되잖아..)
무튼 "유까담보"라고 하는 한국의 온돌 시스템이 적용된 집들이 종종 있지만 비싸고, 우리집은 해당하지 않는다. 그래서 가장 추운 시즌에는 집에서 후리스를 입고, 두꺼운 니트 양말을 신고 잤다. 어느날은 코가 시려워서 잠에서 깬 적도 있다. 하지만 이것도 적응이 되더라. 문제는 적응이 될까 말까 하던 중, 날이 조금씩 풀린다는 점이다.
이 부분은 그냥 이해가 안 가는 부분이다. "일본인은 새로운 걸 쓰는 걸 좋아하지 않아." 라던지 "일본은 여전히 아날로그 방식을 선호해."라는 말에 고개를 몹시 끄덕이게 하는 케이스다. 집을 구하면서 수많은 집들을 보았지만 죄다 열쇠로 열어야 했다. 그 달에 완공해서 첫 입주를 받는 맨션만 디지털 도어락을 쓰고 있었다. 그런데 우습게도 그건, 핸드폰으로 만 열수 있는 도어락이었다. 너무 최첨단으로 가버린 것 아닌가.. 왜 번호를 누르면 열리는 편리한 도어락을 쓰지 않는가. 그래서 집을 살 마음이 없었는데도, 부동산 에이전트에게 집을 사면 도어락 내가 달 수 있는거냐? 라고 확인을 했었다. 당연히 달 수 있다고 했다. 내가 일본에서 집을 산다면 도어락도 아주 큰 이유가 될 것이다. 열쇠를 다시 쓰게 될 줄이야.
사실 한국에서도 근 8년을 열쇠를 써야하는 집에서 살았다. 하지만 인간은 편리함에 무섭도록 적응을 하는 동물이다. 도어락을 설치하고 나서는 두 번 다시 돌아갈 수 없을거라고 생각했다. 지금 집으로 이사를 하고, 아침에 달리기를 하러 나가는데 열쇠를 들고 나오지 않았다. 집이야 그렇다 치지만 현관 문을 열수가 없어서 안에서 누가 나오길 기다려야 했었다. 물론, 달리기를 다 하고 돌아올 때 쯤 횡단보도에서 아차 싶은 생각이 들었다. 이사 온 지 3일 정도 되었을 때 이야기다. 지금은 기계적으로 열쇠를 챙긴다. 스스로 대견할 정도로 또 적응을 했다. 인간이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