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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omyi Jung Oct 21. 2019

오사키가 아니라 오-사키라고요?

얼떨결에 도쿄로 이주한 서른 살의 좌충우돌 적응기 (2)

급작스럽게 도쿄 이주를 결정하고 주변 이들을 만나 소식을 알리다 보니, 가장 많이 듣는 질문은 "원래 일본어를 했었나?" 였다. 그리고 놀랍게도 나는 일본어를 할 줄 모른다.


회사 복지를 최대한 활용하려는 심보로 세 달 정도 배운 적은 있었지만, 의지박약과 수다 본능으로 세 달 치고는 거의 아는 것이 없는 상태로 그만둔 적이 있다. 다만, 일본 출장을 자주 왔었기 때문에 기본적인 눈치와 생활 용어 등은 갖춘정도였다.


일본으로 넘어온 첫 날, 비행기에서 내려 인사팀에서 넘겨준 레지던스 주소를 읽으려고 아이폰을 확인했다. 구글 맵에는 영어로 위치가 나와 있었는데, 하필 타게 된 택시의 기사님이 영어를 아예 할 줄 모르시는 분이었다. "오사키 데스!"라고 외치며 주소를 보여드렸지만 도통 어딘지 못알아 먹겠다는 눈치.

'이제 나는 주소도 못읽는 인간이 된건가!' 라는 충격과 공포감이 빠르게 스쳤다.



결국 몇분간의 실랑이 끝에 주소를 입력하고 레지던스에 도착했다. 열쇠를 찾아 꺼내고, 오사키의 레지던스 605호로 들어갔다. 생활에 필요한 대부분의 것들이 갖추어진 서비스 아파트먼트였고, 바닥은 카페트 재질 그리고 욕실은 투명한 유리로 된 특이한 구조였다. 한마디로 2인이 생활한다면 매일 상대방이 샤워하는 모습을 볼 수 있는 그런 곳이었다. 세상에..



에어컨을 잔뜩 틀고, 잠시 침대에 누웠다가 짐을 전부 꺼내 세팅을 마쳤다. 애초에 들고 온 것이 별로 없어서 금방 해낼 수 있었다.


저녁에 회사 선배들과 야키니쿠 데이를 약속한 날이라, 샤워를 하고 옷을 갈아 입고 시부야로 향했다. 약속 시간보다 일찍 도착하는 바람에 혼자 아무곳에나 들어가 맥주를 한잔 하며 하루를 돌이켜 보았다. '난 여기서 대체 어떻게 살아가게 될까?'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몇모금을 더 마시고 나니 별 걱정이 없어졌다.


그날 일본인 30대 회사원 7명과 소고기와 맥주 그리고 하이볼을 잔뜩 먹고 마셨다. 일본의 야키니쿠 가게에서는 고기가 무척 조금씩 나오고, 이곳의 사람들은 한번에 많이 구워서 잔뜩 먹는 문화가 아닌 한 점씩, 잘 구워서 먹고, 또 주문을 하는 식문화를 가졌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 나는 자고로 고기 굽기의 정석이란, 많은 고기를 빠르게 잘 굽는 것이라고 배웠는데, 배운 것을 써먹을 길이 없었다.


하지만 이사를 한 일본생활의 첫 날, 남이 구워주는 기름과 살코기가 적절히 섞인 질 좋은 소고기를 한점 한점 입에 넣고 나니, 환대 받는 기분이 들었다. 비록 나는 우리집 주소도 제대로 말 못하는 사람이었지만 말이다.

그날의 멤버들에게 몰래 고마운 인사를 전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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