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가장 많이 받는 질문은 요즘 뭐 해? 이다. 이 질문을 할 때 상대는 대개 이런 거 물어도 되나 하는 듯한 태도로 조심스럽게 혹은 얕은 호기심을 담아 가볍게 묻는다. 그것이 내 인생에 대한 진심 어린 관심이라기보다 그저 지금을 소비하기 위한 지나가는 화두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알기에, 나 역시 아무것도 아닌 듯한 말투로 별일 없이 지내요, 라고 답한다. 달리 할 말이 없거니와, 실제 별일이 없기 때문이다.
정초부터 제주기억 시리즈를 오디오북으로 옮기고 있다.*1편을 다 올리도록 영 반응이 없어 접을까 하다 이후로 조금씩 구독자가 늘더니 어느덧 백 명을 넘었다. 대체 어떤 사람들이 듣는 걸까 의아하면서도 제 시간을 내어준 생면부지의 그들에게 감사했다. (그중에는 나의 어머니와 어머니가 다니는 교회의 목사님과 사모님 그리고 b도 포함되어 있다.) 계속 유튜브를 하려면 콘텐츠가 필요했고, 남의 글을 읽기에는 저작권 사용을 허가받는 과정이 복잡해 이왕 이렇게 된 거 내 글을 올려 보기로 했다. 마침 (일기를 제외하고) 글을 쓰지 않은지 반년이 지나가고 있었고, 무얼 쓸까 고민하다 문득 사람들이 궁금해하는 질문-요즘 뭐 해?가 떠올랐고, 별일 없는 내 이야기를 써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에 대해 쓰려면 객관화가 필요했다. 먼저, 나에 대한 키워드를 정리해 보았다.
40대, 여성, 미혼, 무직, 프리랜서.
특별할 게 없는 흔한 단어들이었고, 그래서 글이 될 수 있겠다고 판단했다. 현재 내가 마주하는 현실과 그로 인한 고민들은 동시대를 살아가는 모든 이들에게 적용될 것이었고, 어쩌면 나의 이야기가 누군가의 인생에 (공감을 하든 반면교사 삼든) 참고가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좀 더 세부적인 키워드로 나의 현실 고민을 늘어놓아 보았다.
앞서 18개의 이야기는 이 키워드에 대한 내용이다. 한 화마다 독립된 내용을 담고 있어 단순한 일상 에세이로 보였겠지만 애당초 취지는 그러했다. 40대, 미혼이자 프리랜서인 내가 불안정한 현실 속에서 주눅 들지 않고어떻게 나를 지키며 살아가고 있는지 공유하는 것. 예컨대 첫 화-요즘 뭐 해? 에서는 나의 정체성-여성/40대/싱글/프리랜서-을 밝혔고, 2화에서는 직장인과 프리랜서의 삶을 대비하였으며, 3화는 원룸살이를 전전하다 공동체주택에 입주한 경험담을 그렸다. 각각의 키워드는 나의 구체적 삶과 연결되며 나의 생각과 감정을 드러내는 통로가 되었다. 누군가의 기준에는 깊은 한숨을 동반하는 걱정스러운 인생일 수 있겠으나 사실은, 나름 잘 살고 있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별일 없이 삽니다, 는 시도 때도 없이 닥쳐오는 불안을 외면하지 않고 받아들이며 불안정하지만 조금은 다른 삶을 살겠다는 다짐에 관한 글이다. 이 글을 쓰며 삶의 다른 방식이 있음을, 조금은 다른 가치를 추구하는 삶이 있음을 당신이 알아주길 바랐다. 그리고 가능하다면 당신이 잠시나마 삶의 무게를 내려놓기를 바랐다. 현대인들, 특히 대한민국 사람들은 과도한 경쟁에 노출되어 있고 끊임없는 생존 위협에 시달린다. 움직이지 않으면 도태되기 일쑤고 남과 비교하는 사회 분위기는 숨이 막힐 지경이다. 그런 와중에 이런 인생도 있음을. 어떤 목표에 도달하지 않아도, 사회가 규정해 놓은 많은 것들이 충족되지 않아도 잘 살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싶었다. 그럼으로써 당신에게 작은 숨통이 되기를 바랐다.
개인적으로 별일 없이 삽니다,를 연재하며 자주 했던 생각이 있다. 혹시 지금의 안온함이 앞으로 닥칠 불행의 복선은 아닐까. 지금까지는 운 좋게 별일 없는 일상을 유지하고 있지만 이것이 언제라도 깨질 수 있다는 막연한 불안감, 생의 근원적 두려움 같은 것들 말이다. 결국 벌어질 일들은 시간의 문제일 뿐 언젠가 벌어질 일이라는 것을 알지만, 별일 없는 일상을 최대한 유지하기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일-건강한 식사를 하고, 규칙적으로 운동하며, 남과 비교하지 않고 나다운 길을 모색하는 일을 할 뿐이고, 무엇보다 생 앞에 겸손해야 함을 잊지 않으려 하고 있다. 그리고 가능하다면 가능한 오래 별일이 없기를 바랄 뿐이다. 그리고 당신에게도.
지금까지 별일 없이 삽니다, 를 읽어 주셔서 감사드리며, 마지막으로 이 글의 제목으로 끝을 맺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