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와 결혼식장에 왔다. 엄마의 언니의 딸에 딸의 결혼식이었다. 엄마에게는 한 명의 오빠와 3명의 언니가 있었는데 첫째 언니와 둘째 언니는 이미 유명을 달리했고, 오늘 결혼식의 주인공은 십수 년 전 고인이 된 첫째 언니의 손녀였다. 나로서는 일면식도 없는 타자의 결혼식이었지만, 시골에서 올라온 엄마가 길을 잃지 않도록 식장으로 모시고 갔다. 일종의 아버지 대타였던 셈이다.
식장에 도착하자 낯익은 얼굴이 몇 보였다. 외숙모와 외숙모의 딸, 돌아가신 둘째 이모의 첫째 아들, 셋째 이모와 이모부 그리고 슬하의 첫째 아들이었다. 엄마는 우리의 얼굴을 훑어보며 그래도 장남‧장녀들은 하나씩 데리고 왔다며, 그게 맞이들의 책임감이라고 농을 던졌다. 그러면서 첫째들끼리 핸드폰 번호라도 공유해, 언제 연락할 일이 생길지 모르잖아, 했다. 연락할 일이란 엄마 일가의 경조사를 뜻했고, 그것이 언제고 닥칠 수 있는 연세라는 걸 맞이들은 이해하고 있었다.
오랜만에 만난 엄마와 외가 식구들은 할 말이 많았다. 결혼식이 끝나고 식사가 끝나도 할 말이 남아 식장 근처 카페로 자리를 옮겼다. 외가 식구들이 모처럼만에 회포를 푸는 동안 맞이들은 따로 자리를 잡았다. 내가 가장 막내였고, 언니 오빠들은 40대 중반, 오십대였다. 다들 서울에 있었지만 얼굴 볼 일은 없었기에 그리 편하다고는 할 수 없는 사이였다. 어렸을 때 이야기를 했지만 그마저도 기억에 남아있지 않았다. 그러다 외숙모의 딸이 말했다.
“너도 좋은 소식 들려줘야지.”
“저요? 저는 결혼 생각 없어요.”
“야, 너는 왜 결혼 생각이 없냐? 나는 네 나이 때 그렇지 않았다. 지금은 포기했지만.”
둘째 이모의 아들이 말했다. 반백의 나이가 된 그는 두 마리의 고양이를 모시고 사는 중이었다.
“그러게요. 저는 결혼해야겠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어요.”
“그럼 아예 생각이 없는 거야?”
옆에서 조용히 듣고 있던 셋째 이모의 아들이 물었다.
“없는 건 아닌데, 아직 결혼하기엔 이르달까?”
“야, 씨, 이르긴 뭐가 일러. 사십이 넘었구만.”
둘째 이모의 아들이 쫑크를 줬다.
“저는 결혼의 적정 나이는 오십 넘어서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하하.”
“오십 넘으면 귀찮아서 더 못해.”
외숙모의 딸이 말했다. 그녀는 올해 오십대가 되었다.
“그런가요?”
내가 머리를 긁적이자 둘째 이모의 아들이 말했다.
“요즘엔 안 해도 괜찮지. 자기가 불편하지 않으면. 결혼하면 또 얼마나 골치 아프겠냐. 얘도 할 말 많을 걸.”
둘째 이모의 아들은 셋째 이모의 아들을 가리키며 히죽거렸다. 셋째 이모의 아들은 말없이 웃으며 고개만 끄덕일 뿐이었다. 그는 우리 중에 유일하게 기혼이었다.
그날 저녁, 엄마를 보내드리고 b를 만났다. b가 따뜻한 국밥이 먹고 싶대서 동네 국밥집을 찾았고, 국밥을 먹지 못하는 나는 만두를 시켰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하얀 국밥에 코를 박고 먹는 b에게 무심코 물었다.
“결혼 생각 해 본 적 없어?”
“없는데.”
b가 1초의 망설임도 없이 곧바로 대답했다.
“왜 갑자기 그런 걸 물어?”
시간차를 두고 b가 또 한 번 물었다.
“결혼하고 싶어?”
숟가락으로 국밥을 퍼올리던 b가 정지된 상태로 대답을 기다리는 모습을 보니 괜스레 웃음이 났다. 나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아니.”
내 대답을 듣고 b는 다시 국밥을 떠먹기 시작했고 나는 그 모습을 흡족하게 바라보았다. 결혼을 한다면 상대는 b가 될 것이다. 무엇도 바라지 않고 그저 존재만으로 충만해지는 관계. 나를 제외하고 이토록 편안함을 느꼈던 타인은 없었다. b와 있을 때 나는 무한한 자유를 느끼며, 비로소 나다워짐을 인식한다. 누구도 보지 못한 심지어 스스로도 몰랐던 나의 모습을 발견하게 되며, 아무것도 거칠 것 없는 상태가 된다. 어떤 억압도, 구속도, 책임이나 의무도 없는 온전한 나로 존재하게 된다. b와 함께할 때 나는 더 자유로워진다. 살면서 이런 인연을 만난다는 것은 기적에 가까운 일일 것이다. 우리가 오십이 넘어도 함께할 수 있을까. 남의 속도 모르고 b는 그 작은 입으로 잘도 국밥을 먹고 있었다.
언젠가 어떤 쇼츠를 본 적이 있다. 두 사람이 결혼에 대해 이야기하는 내용이었다. 한 남자가 사람들이 왜 결혼을 하는지 아세요? 하고 물었고, 상대방이 답했다. 행복해지기 위해서? 질문을 한 남자가 말했다. 아니요. 대부분의 사람들은 불행해지지 않기 위해 결혼을 해요. 지금보다 더 나빠지지 않기 위해. 짧은 영상이었지만 그 말은 상당히 일리가 있었고 지금까지도 내 머릿속에 남아있다. 만약 오십이 넘으면 그때는 불행해지지 않기 위해 결혼을 선택할 수도 있을까. 따지고 보면 얼마 남지도 않았다. 그러나 지금은, 지금에 충분히 만족하고 있다. 따로 또 같이인 지금의 상태가 좋다. b도 마찬가지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