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자이너레오, 경영철학에 마음을 빼앗기다.
디자인 경력 11년 차에 접어든 2014년.
잘 다니고 있던 회사를 그만두고 나의 길을 걸어보겠다며 고작 10여 년의 대행사 경력으로 메디컬 디자인 사업을 준비하던 파이팅 넘치던 해이 기도하다. 물론 같은 해 7월 사랑하는 와이프의 권유(?)로 지금의 서울척병원에 입사했다.
2013년 부친께서 암으로 돌아가시기 전, 치료를 받기 위해 병원을 자주 다니셨다. 대전과 서울을 오가며 치료를 받으셨었다. 회사일이 바쁘다는 핑계로 자주 모시진 못했지만, 가끔씩 병원을 동행할 때마다 느끼던 부분들이 있었다. 바로 병원의 Sign Design과 고객 동선 부분인데, 그 당시는 복잡했다. 몸이 편찮으신 아버지를 모시고 병원에서 나름대로 정해놓은 복잡한 시스템과 환자 동선에 적응하기란 쉽지 않았다. 지금이야 고객의 Needs를 충족시키기 위해 병원들이 많은 노력을 하고 있는 시기임에는 틀림없다고 생각한다.
잠깐, 사회 초년생 시절(2004년)로 돌아가 본다. 첫 직장은 브랜드 Kappa의 광고 그래픽 디자인 및 운동화 디자인을 경험하면서 신발 공장 및 매장 영업 직원분들을 통해 고객과 시장을 파악하는 일을 경험했다. 그 뒤론 국내외 제약회사 브랜드의 전시부스 광고 대행사에서 경험을 쌓아갔다. b2c보단 b2b 성향이 강했다. 다양한 고객 경험들이 고객을 관찰할 수 있게 하였고 고객의 유형을 파악하는 힘을 길러주었던 것 같다. 그 후로 좋은 기회가 생겨 국내 전자 쪽 POP 및 POSM을 디자인하였다. 고객을 중심으로 한 디자인력과 기획력이 더욱더 단단해졌다.
아버지께서 돌아가셨을 때 아버지와 함께 했던 순간들을 중 가장 안타까웠던 점들이 머릿속에서 지워지질 않았다. 그중 하나가 병원에서 하지 않아도 될 고생을 했던 것. 많이 죄송했었다. 그때인 것 같다. 병원에 디자인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던 순간이.
"호랑이를 잡으려면 호랑이 굴에 들어가야 한다."는 옛말이 있듯이 병원에 디자인을 적용하려면 병원을 알아야 한다는 아내의 말에 설득을 당했다. 그렇게 2014년 7월에 서울척병원에 입사했다.
당시 병원장이셨던 김동윤 이사장님이 면접 때 하신 말씀이 아직 기억난다.
우리 병원에 오시는 환자분들이 디자인을 통해서 좋은 서비스를 받았으면 좋겠고, 우리 병원에 종사하는 직원분들도 좋은 환경에서 근무하고 있다는 인식을 주고 싶어요.
이사장님의 그 한 마디는 내가 병원에서 하려는 '그것'과 같았다. 병원에서 디자인으로 어떻게 환자를 케어할 것인가? 다른 분야의 사람들도 마찬가지겠지만 대부분 병원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디자인을 명사적 의미로만 받아들이고 있었다. 명사적 의미는 단순히 "이쁘다"라는 결과적인 부분만을 의미한다면, 동사적 의미는 "이쁘게 하다"라는 창조하고 계획하는 과정을 말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여기서 질문을 던져본다.
의사가 환자만 케어하는가?
간호사가 주사만 놓고 있는가?
질문에 대한 답은 모두가 "아니오."라 답할 것이다. 병원은 조직이며 제공자(Provider)로 보일 수 있고 환자는 고객(Customer, Consumer)으로 볼 수 있다. 의료서비스 제공자의 입장에서 의사는 환자를 케어하기 위해 여러 가지 진료와 관련된 일을 하며 또한, 간호사 및 병원에서 일하는 각 부서의 부서원들도 모두 챙겨가며 일을 해야 한다. 그게 역할이라 생각한다. 간호사도 마찬가지 일 것이다. 정해진 시스템을 활용하여 환자를 케어하는 목적에 이르기 전까지 엄청난 스트레스와 준비 과정이 필요할 것이다. 디자이너도 똑같다. 이쁘고 편리하게 하기 위해 똑같은 과정이 필요하다.
이쁘게 하는 것은 기본 옵션일 뿐,
고객중심적인 관점에서 창의력을 보태어주는 문제의 해결사 역할을 하는 것.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디자인은 명사적 의미와 동사적 의미를 함께 동반해야 한다.
앞으로 순차적으로 발행될 서울척병원의 브랜드 스토리를 통해 많은 병원들이 디자인에 대한 시각이 달라졌으면 하는 것이 작은 소망이다. 미래의 병원은 디자인이 필수가 되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