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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은이 Mar 17. 2024

사랑하고 있을까요?


  관계가 틀어져도 다시 맞춰 보려 안간힘을 쓰던 시절을 떠올려 봅니다. 그 시절은 그럴 수 있는 힘과 여유가 있었지요. 곰곰이 생각해 보고, 눈을 마주쳐 보고, 손을 마주 잡고 이야기하고, 그러다가 싱긋 웃어버리고 마는 시간은 언제든 마음만 먹으면 만들어 낼 수 있었습니다. 관계가 수십 번 어긋나도 온전히 깨져 버릴 수 있다는 생각은 결코 품지 않았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희망이라는 단어가 낯설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어떨까요?


  당신과 다툼이 반복되고 있습니다. 처음엔 쉽게 풀어져 버리고 말았던 다툼이, 한 시간이 걸리고, 반나절이 걸리고, 기어코 하루가 지나가도록 미결로 남아 있습니다. 나를 노려보는 눈빛, 쏘아 붙이던 말투, 심장을 저 밑까지 쿵하고 떨어지게 만들었던 날카로운 말들. 내가 너에게 소중한 존재가 맞는지 헷갈린다고 말하는 나를 가만히 내려다 보는 차가운 시선. 엉엉 울며 집 밖을 나서는 나를 등진 채 양치를 하던 당신의 모습. 이 모든 것들은 당신에게 향했던 마음을 경화시키고, 당신을 사랑한다고 말할 수 없게 만들었습니다. 그 낯선 눈빛과 말들을 또 마주치게 될까 두려워하니, 이제는 당신이 무서워졌습니다. 사랑해야 하는 당신이 무서운 존재가 되어버렸습니다.


  당신을 사랑하는지 사실 난 잘 모르겠습니다. 여전히 당신이 궁금하고, 당신이 보고 싶고, 당신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듣고 싶지만, 과연 이 마음이 사랑일까요? 나를 사랑한다고 말하는 당신을 보며 사랑한다고 말할 때마다 혀 끝에 모래가 느껴집니다. 더 이상 당신이 염려되지 않습니다. 당신의 힘듦이 나와는 별개의 문제로 여겨집니다. 당신을 염려한다고 말했을 때 당신은 듣기 싫어했지요. 이제 당신이 하고 싶은대로 하더라도 나는 신경 쓰이지 않습니다. 어떤가요? 당신이 원하는 대로 되었나요? 이게 정말 당신이 원하는 것인가요?


  우리가 만난 지 반 년이 채 지나지 않았지만, 벌써 나는 지쳐가는 것 같습니다. 조금 더 어렸던 시절에는 이보다 더 많이 다투고 더 많이 울었던 것 같은데, 그럼에도 끊임없이 사랑하고 사랑하려고 했었는데, 이제는 이만 끝내고 싶다는 생각을 자주 합니다. 우리가 맞춰 갈 수 있을까요? 맞추려고 노력할 힘과 시간이 당신은 있나요? 그것보다, 사람은 바뀔 수 있나요?


  반복되는 연애에서 우리는 각자의 교훈을 얻습니다. 내가 얻었던 교훈은 당신과 내가 맞출 수 없다고 말합니다. 이만 관계를 마무리하는 것이 좋겠다고 말합니다. 지난 사랑이 준 고통은 너무도 아찔하여 마음을 덜 주려하고, 사랑을 포기하고 싶게 합니다. 하지만 아직 나는 머리보다 마음이 하는 말이 더 듣기 좋습니다. 마음이 하는 말은 내 시야를 가리고 달콤한 말들로 나를 유혹합니다. 고통에 몸을 떨었던 지난 날들을 외면하게 만듭니다.


  당신을 사랑하는지 사실 난 잘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당신에게 연락이 올 때마다 반가운 마음을 감출 길이 없습니다. 어린왕자의 여우처럼 당신과 만나게 될 날이 꽤 이른 날부터 기다려집니다. 아직 당신을 안고, 당신에게 안기고 싶은 걸 보니 아직 당신과 끝내기에는 너무 이르다고 생각합니다. 힘이 닿는 데까지 당신과 발 맞춰 걸어 보려 합니다. 그래야 우리가 서로에게 등을 돌린 채 서로의 반대 방향으로 걸어가는 날이 오더라도 당신을 응원해 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서로가 애틋했던 지난 밤들처럼 날 사랑해 주세요. 나에게 사랑한다고 말해 주세요. 나도 다시 용기를 내보겠습니다.



220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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