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주 '모티프원'에서
퇴사를 결정한 순간부터 이직 준비를 했던 나는 퇴사 후에도 면접 보고 지원서를 넣느라 여행이라는 걸 생각할 틈이 없었다. 여행은 이직이 결정되고 맘 편히 돈 펑펑 쓰면서 다녀와야지 생각했다. 그 사이에 총 3번의 합격 연락을 받았고 연봉을 협상했지만 가지 않기로 했다. 왜 가지 않았냐고 묻는다면, 그 안에서 내가 재밌게 일할 수 없을 것 같아서 - 가 맞겠다. 잘 되지 않을 때가 더 많았지만 한평생 '재미'를 추구하며 살았던 나는, 인생의 절반이 넘는 시간을 보내게 될 직장을 신중하게 결정하고 싶었다. 높은 연봉을 주지 않아도 얼마나 내가 재미있게 일할 수 있는지를 입사 기준으로 세웠고, 세 곳 모두 갈까 말까 고민하는 나 자신을 보니 이곳은 아니다 싶어 형식적이지만 만감이 교차하는 거절의 메일을 보냈다.
그렇게 한 달이 넘는 시간이 흘렀고, 이제야 비로소 이 삶이 지겨워진 나는 여행을 결심하게 되었다. 아침에 일어나서 운동을 갔다가 점심을 챙겨 먹고 스터디 카페에 가서 이직을 위한 준비를 하고, 배가 심각하게 고파질 때쯤 나와서 저녁을 챙겨 먹고 자기 직전까지 공부하는 시간을 반복했다. 정말로 더는 할 수 없었다. 첫 번째 회사에서 사귀었던 친구와의 술자리에서 홧김에 예전부터 내내 가고 싶었던 '모티프원'에 2박 3일 예약을 해버렸다. 통창이 초록색으로 가득 차 있어 인기가 많은 방들은 모두 차 있었지만,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그저 빠르게 쉴 곳이 필요했다.
마침 일주일 전 지원한 곳에서 연락이 왔고, 너무나도 가고 싶었던 포지션이었기에 여행 가기로 한 첫날에 면접 일자를 잡았다. 면접을 보고 서둘러 돌아와 짐을 싸고 합정역으로 가면 될 터였다. 직군 전환을 희망하고 있어 이번이 마지막 기회일지도 모른다는 불안감과, 면접을 본 4곳의 기업 중 3곳에서 합격했으니 크게 걱정하지 않아도 될 거라는 안도감의 상충을 무시한 채 고통의 면접 준비를 마치고 면접을 보러 갔다. 간절히 원했기 때문이었던 걸까, 처음으로 면접이 끝난 뒤 시원섭섭함이 밀려왔다. 평소에 잘하지도 않던 후회를 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미 내 손을 떠난 일, 집으로 돌아와 서둘러 짐을 챙겨 합정역으로 향했다.
합정역과 파주를 오가는 2200번 버스는 삼 년 전 처음으로 탔었다. 출판사 면접 때문이었는데, 중학교 때부터 너무나도 좋아하던 출판사에 서류 합격을 하게 되어 떨리는 마음으로 버스를 탔던 기억이 났다. 버스 안은 삼 년 전 받았던 인상과 똑같았다. 피곤에 지친 직장인의 모습. 그때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낯설어했지만, 지금은 나도 매우 피곤한 상태이기 때문에 자리에 앉자마자 면접의 긴장이 풀려 잠에 들었다.
잠에서 깨니 버스는 헤이리 4번 게이트를 지나고 있었고, 내려야 할 곳인 헤이리 1번 게이트를 지나쳤다는 사실을 알고 부리나케 내렸다. 헤이리 6번 게이트였다. 택시도 없고 주변 카페도 다 문이 닫은 상태였다. 주소를 찍으니 1km를 걸어야 했었다. 깜깜한 밤이 되었음에도 날은 후덥지근했고, 가로등도 드문드문 있어 길을 잘 찾아갈 수 있을지 염려되었다. 하지만 이보다 더 긴장되었던 면접을 보고 왔기 때문인 걸까, 아무렴 어때라는 마음으로 캐리어를 달달 끌며 사람 하나 보이지 않는 어두운 헤이리마을을 가로질러 갔다,
도착하니 모티프원의 호스트이신 이안수 님의 첫째 딸이신 이나리 사장님께서 맞이해 주셨다. 목소리가 카랑카랑하고 발음이 또렷하신 분이었다. 걸어오느라 지친 낯선 여행자를 친근하게 대해주셔서 마음이 편안해졌다. 저녁을 먹지 않아 배달 음식을 시켜도 되냐고 물으니 '물론이죠!'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쓰레기 처리는 한 곳에 모아 주방에 놓으면 된다고 하셨다. 어떻게 음식물을 처리하고 분리수거를 하는지 구체적으로 알려 주지 않아 처음에 당황했다. 그러나 이내 모티프원은 참 자유로운 곳이라는 걸 알았다. 주방에 펼쳐져 있는 찻잔과 찬장 안에 있는 그릇을 원하는 대로 사용하고, 서재에 있는 책을 들고나가 카페에서 읽어도 된다고 했다. 예전에 갔었던 북스테이는 (지금은 없어진) 제한 사항이 10가지가 넘고 그중에 발걸음과 목소리 소리도 포함되어 있어 쉬어도 쉬는 곳이 아닌 것처럼 느껴졌는데, 사장님의 첫인상처럼 모티프원 또한 시원시원하게 운영되고 있었다.
오자마자 예정되어 있던 화상 스터디를 하고, 면접 본 회사에서 요청한 추가 문서를 부랴부랴 준비해서 전달했다. 그러고 나니 새벽 1시, 치킨을 시켜 놓고 공용 공간을 어슬렁거렸다. 책들이 전체적으로 오래되었는데 오래된 책에서 나는 특유의 냄새가 마치 디퓨저를 피워 놓은 것처럼 공간에 가득 차 있었다. 그 쿰쿰한 종이 냄새가 너무 좋아 떠날 수 없었다. 공간에서는 클래식 라디오가 계속 흘러나오고 있었는데, 간간히 클래식 해설을 해 주시는 목소리가 이 공간을 더욱 다정하게 만들어 주었다. 라디오 볼륨은 공간의 일부처럼 촉촉이 녹아들어 이질감이 느껴지지 않았다. 모티프원을 떠올리면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클래식과 목소리가 생각나고, 그러다 보면 오래된 책 냄새가 나고, 이안수 호스트님께서 직접 만드신 가구들을 은은하게 비추는 조명이 생각난다. 모티프원의 공용 공간인 서재는 통창으로 되어 있고 밖에는 나무가 많이 심어져 있어 해가 비추는 낮이 유명한데, 나는 모두가 잠든 새벽 시간이 더 좋았다. '하지 마세요'라는 말을 듣지 못해서 인 걸까, 모티프원의 서재에 빠르게 적응해 갔고 마지막 밤과 마지막 아침에는 3~5번씩 보이차를 우려먹으며 다도를 즐기기도 했다. 주방에는 차가 많았는데, 왠지 모르게 모티프원에 보이차가 없으면 이상할 것 같아 살펴보니 아니나 다를까 보이차가 있었다. 비싼 보이차를 이렇게 자유롭게 내어주시다니. 여러 번 우려서 드시라는 통에 써진 메모처럼 밤에 세 번, 아침에 한 번 우려먹었다.
모티프원이 손님들을 대하는 방식은 모티프원 호스트이신 이안수 님과 그분의 아내가 자식들을 대하는 태도와 닮아 있다. 아내와 남편이 서로의 삶의 모습을 존중하고 그 존중이 자식들에게 향하며 결국엔 손님들에게까지 도달한다. 모티프원에서는 손님들을 '선생님'이라고 호칭하는데, 이 호칭에는 층층이 쌓아 온 세월의 내공이 담겨 있는 듯하다.
작은딸이 언니가 고생을 하는데 너무 무심한 것 아니냐는 이의를 제기했습니다. 부모가 '무심'하기 위해 얼마나 큰 인내심을 발휘하는지 작은딸은 모릅니다. 때로는 무심한 것이 더 짙은 감정이라는 사실을 말입니다. (중략) 지금 딸은 살아 있는 한 끊임없이 겪을 판단과 선택을 홀로 하는 독립을 훈련 중이고 아내와 나는 간섭하고 싶은 욕구를 억누르는 인내를 연습 중입니다. 아내는 잔소리를 하고 싶은 욕구를 참기 어려울 때 쑥뜸을 뜹니다. - <아내의 시간>, 이안수, 남해의 봄날, 172쪽 중
부부의 소통에서 사용 빈도수가 아주 높은 종결어미는 '~해라'와 '~하지 마라'이지 싶습니다. 자녀와의 관계도 마찬가지일 테지만 이 종결어미를 적게 사용할수록 수평적인 소통이 이루어지고 있는 가정일 것입니다. 이를 의식하고 있으면서도 일상에서는 자제가 쉽지 않습니다. 소중한 사람이니까 내가 좋다고 여긴 것을 자연스럽게 권하게 되고 그렇지 않은 것은 말리게 됩니다. 사랑이라는 이름의 강요입니다. 이것이 긍정적인 결과를 내는 대신 분쟁의 불씨가 된다는 것을 체험으로 알고 있습니다. 동거의 시작에 아내가 간섭에 대해 다시 쐐기를 박은 것은 내게 아는 것과 실행하는 것의 차이가 있음을 자각하게 했습니다. - <아내의 시간>, 이안수, 남해의 봄, 28쪽 중
모티프원은 손님들에게 적당한 무관심으로 대한다. 손님들이 공용 공간에서 책을 읽든, 차를 마시든, 밥을 먹든, 오랫동안 동거해 온 이처럼 산뜻한 무심함을 보여준다. 다음 날 아침, 이나리 사장님께 지난밤 공용 서재에서 좋은 시간을 보냈다고 말을 하니 '어머, 잘하셨어요! 너무 좋지 않아요?' 시원한 대답이 이어졌다. 지난밤 입실 시간이 훌쩍 넘은 9시 30분, 나를 반기는 사장님의 목소리가 크고 뚜렷하여 혹시 휴식을 취하고 있는 다른 손님들에게 방해가 되진 않을까 염려했었다. 보통의 북스테이라면 목소리 볼륨을 낮추길 원하는데 말이다. 그러나 그럴 필요가 없다는 걸 아침이 되니 알게 되었다. 건물의 뛰어난 방음 설계 때문에 누가 오고 떠났는지 모를 정도로 에어컨 바람 소리만 들리는 고요한 아침을 맞이했다. 서재의 책을 밖으로 가져가 카페에서 읽어도 되는지 여쭤보니 지극히 당연한 걸 왜 묻냐는 식의 '물론이죠!'가 돌아왔다. '꼭 읽을 책만 가져가세요', '읽고 난 책은 꼭 제자리에 꽂아 두세요', '무언가를 먹을 땐 책을 보지 마세요' 흔히 볼 수 있는 문구도 없었다. 정말이지 돈을 지불한 게스트하우스가 아닌 누군가의 서재에 놀러 온 느낌이 들었다. 이안수 호스트님은 살면서 깨달으신 바를 책에만 저술하는 것이 아닌, 자신이 만들어낸 공간에도 적용하여 몸소 실천하고 계시는 것 같았다.
밖으로 세 권의 책을 들고나가 파스타를 먹고 커피를 마셨다. 요 근래 1년 정도, 모든 걸 내려놓고 누리는 여가 시간을 만들지 않았기 때문에 밥 먹으면서 밀렸던 드라마나 예능 프로그램을 보는 것이 습관이 되었던 내가, 아무런 콘텐츠 시청 없이 그저 창 밖을 보며 식사를 하고 있으니 조금 낯설게 느껴졌다. 혀에 느껴지는 짭조름함과 파스타의 단단한 식감을 느끼며 꼭꼭 씹어 먹었기 때문인 걸까 절반쯤 먹었을 때 서서히 배부름이 느껴졌다. 생각해 보니 무언가를 할 때 하나만 하는 경우가 잘 없는 듯했다. 밀린 일을 처리할 때도 이 일이 끝나면 해야 할 다른 일을 생각하고 있었고, 쉴 때도 앞으로 해야 할 일들에 대해 결심을 굳히고 있었다. 효율이라는 명목 아래 너무 많은 일들을 나에게 몰아붙이고 있는 건 아닐지, 가끔은 일이든 식사든 여가 생활이든 하나에만 집중하여 그 시간을 온전히 느끼고 기억하는 일도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모티프원의 마지막 날은 남은 보이차와 아침의 새들, 고양이가 함께해 주었다. 공용 서재의 미닫이 창을 열어 놓아 선선한 바람이 솔솔 들어왔다. 아침 공기는 아무도 밟지 않은 눈처럼 사람의 온기가 묻지 않아 신선하고 차가웠다. 달그락거리는 인기척을 느꼈는지, 고양이 한 마리가 다도를 준비하는 내 모습을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털이 복슬복슬 나른해 보이는 작은 친구는 모티프원에서의 마지막 시간을을 즐기는 내 곁을 끝까지 지켜 주었다. 고양이와 눈을 마주친 채 차를 홀짝이며 '또 이 기억을 가지고 부지런히 살아가겠구나' 생각했다. 앞으로도 자주 넘어질 테고 그때마다 화를 내거나 울거나 대부분은 없었던 일인 것처럼 애써 무시하겠지만, 그럼에도 다시 일어날 수 있는 것은 언제나 꺼내 볼 수 있는 이런 시간들 때문이 아니겠냐고 믿기로 했다. 서울로 돌아면 다시 많이 힘들어할 텐데, 넘어지고 다시 일어서는 모든 행동의 주체는 ‘나’이니 힘이 드는 건 당연한 것이 아니겠냐고, 귀하의 노고에 감사드리며 잘 부탁한다는 의미로 나는 내 손을 잡아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