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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은이 Aug 28. 2023

4천 8백 원에 하늘은 무너지지 않는다

알면서도 받아들이기 어려운 조그마한 사실

올해 3학년인 지은이는 스스로를 '알바 마스터'라고 부르고 다닌다. 4곳의 식당과 2곳의 카페, 아이 돌보미, 과외, 호텔 등 안 해 본 알바를 찾기 어렵다. '알바 마스터'라는 호칭에는 자조와 설움, 그리고 과시가 조금씩 섞여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하지만 방금 자신이 만들어 낸 50줄의 김밥 더미를 보고 있으니 조금 더 과시해도 되지 않을까 생각했다.


김밥 단체 주문을 모두 처리하고 허겁지겁 수업을 들으러 가는 몸뚱이에서 산화된 참기름 냄새가 퀴퀴하게 올라온다. 바람이 불면 냄새가 더 강하게 난다.


'흔들리는 꽃들 속에서.. 니 참기름이 느껴진 거야'


상황에 적절한 개사에 쿡쿡 웃음이 나온다. 대학생의 머리에 샴푸 냄새가 난다면, 그건 머리를 말리지 않고 나왔기 때문이 아닐까. 적어도 지은이의 주변 여학우의 머리에선 '커피콩 냄새(카페 알바)', '음식 냄새(식당 알바)', '담배 냄새(흡연자)',  '기름 냄새(어제 술 먹고 머리 안 감음)'가 날 것이 분명하다. 또는 '맡을 수 없음(지각해서 모자 쓰고 나옴)' 상태던가. 


강의실에 도착해 자리에 앉으니 동기가 킁킁거린다. '어후, 고소한 냄새' 라고 말함과 동시에 코를 손으로 막는다. 지은이는 '고소하다며 코는 왜 막니'라고 핀잔을 준다. 그리고 나오기 직전 포장한 김밥 두 줄을 가장 가깝게 앉은 동기들에게 나눠 준다. 1시간의 참기름 냄새를 참아 달라는 뇌물이다. 동기들은 고맙다며 김밥을 허겁지겁 먹는다. 너무 맛있단다. 보고 있으니 나름 뿌듯해 조용히 어머니의 마음으로 미소를 짓는다. 그리고는 한 마디 툭 던진다. '다음엔 참치 김밥으로 싸 올게.' 


수업이 끝나고 나오니 교내에 벚꽃이 예쁘게 펴 있다. 아침 일찍 일어나 2시간 내내 서서 김밥을 말았던 탓일까, 아님 햇빛이 너무 따뜻한 탓일까. 지은이는 졸음이 몰려온다. 다음 수업까지 1시간이 남았다. 생활비를 충당하고 친구들과의 만남을 지속하기 위해 하는 아르바이트라고 생각하니, 온전히 자신을 위해 아르바이트비를 쓴 경우는 거의 드물었다. 돈을 쓸 때도 '이게 나에게 꼭 필요한 물건인지' 열 번이고 스무 번으로 되묻다 지쳐 구매를 포기하는 경우가 많았다. 지은이는 절약 정신이 투철한 자신이 자랑스럽다가도, 가끔 자신의 강박에 질려 버리곤 했다. 


그러기에 보통의 공강 시간에는 도서관에 가서 시간을 때우는 경우가 많았다. 지은이에게 도서관은 돈도 들지 않고, 정수기도 있고, 컴퓨터도 있고, 책도 많은 아주 효율적인 곳이었다. 그런데 오늘은 도서관까지 가기엔 힘이 없었다. 도서관은 저 멀리 있고 가는 길을 상상하니 벌써 지쳐 한숨이 나왔다. 무거운 전공책을 내려놓고 앉아 있을 벤치가 없을까 두리번거리는 찰나, 벚꽃 나무가 드리워져 있는 작은 카페가 눈에 들어왔다. 팀플 과제나 동아리 모임이 있을 때나 가던 카페였다. 메뉴는 2~3천 원 대로 물가에 비해 너무나도 저렴한 가격이었지만 지은이에게는 김밥 한 줄 또는 컵라면 두 개와 바꿀 수 있는 돈이었다. 


그 생각을 하니 가슴이 답답해져 발걸음을 돌렸다. 그때 지은이에게 누군가 이렇게 외쳤다.


'3천 원 쓴다고 하늘이 무너져?'


당연히 파란 지폐 세 장에 하늘은 무너지지 않을뿐더러 지은이가 밥을 굶을 일도 없다. 그런데 무엇 때문에 이렇게 망설이고 고민하고 결국 포기하는지, 그리고 그럴 만한 이유가 있는지 지은이는 도무지 알 수 없었다. 지은이는 결심한 듯 카페로 걸어 들어가 나무 밑 야외 테이블에 자리를 잡았다. 그리고 메뉴판을 확인했다. 아메리카노와 생딸기 라테가 보였다. 카페에 이미 자리를 잡은 지금까지도 2천 원의 가격 차이에서 고민하다니. 자신의 우유부단에 질려버린 지은이는 당당하게 외쳤다.


'생딸기 라테 주세요.'


카드를 가져가는 가게 주인의 손이 슬로모션으로 보였다. 당장이라도 카드를 다시 가져오고 싶어 져 질끈 눈을 감았다. 대신 진동벨을 건네어받고 자리로 돌아갔다.


하늘을 올려다보니 솜사탕 같은 벚꽃이 몽글몽글했다. 바람이 산들산들 머리카락을 건드렸다. 떨어지는 벚꽃 잎을 공중에서 두 개쯤 잡았을 때 진동벨이 울렸다. 진동벨과 바꾼, 아니 무러 스페셜 밥버거와 맞바꾼 생딸기 라테를 가지고 자리로 돌아와 가방 속에서 소설책을 꺼냈다. 밑바닥에 가라앉은 딸기청을 휘휘 저어 한 모금 쭉 빨았다. 달콤하고 상큼하고 부드러운 맛이 입안 가득 퍼졌다. 4천8백 원에 이런 행복을 누릴 수 있다면 충분히 투자할 가치가 있지 않을까, 고 지은이는 생각했다. 일주일에 한 번 이런 여유를 즐긴다면 퀴퀴한 참기름 냄새에 쩌들고, 밤샘 과제에 지치고, 부모님의 과도한 걱정에 시달려서 거칠해진 삶이 조금은 부드러워지지 않을까 생각했다. 나도 이런 달콤함을 누릴 때가 온 것이 아닐까 하고, 자꾸만 떠오르는 김밥과 컵라면, 스페셜 밥버거등을 무시하며 지은이는 조심스럽게 자신에게 허락을 구했다.


그 뒤로 지은이는 매주 한 번씩 카페에서 음료를 사 먹었다. 대부분은 아메리카노였지만 가끔은 숨 한 번 작게 내쉬고 옥수수라테나 헤이즐넛라테, 화이트초코와 같은 스페셜 음료에도 도전했다. 그럼에도 하늘은 무너지지 않았고 지은이의 통장은 아직 건재했으며 밥을 단 한 번도 굶은 적이 없었다. 달라진 거라고는 12시간의 달콤한 시간과 그 시간 동안 읽은 3권의 아름다운 이야기가 추가된 것뿐이었다. 정말 그게 다 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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