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만든 나의 윤슬
너는 햇살처럼 빛나는 사랑으로 나의 일상 곳곳에
사소히 반짝이는 윤슬을 만들어내곤
내 마음속에 너만이 만들 수 있는 유일한 윤슬을
영원히 존재하게 만들었다.
Colde(콜드) - 윤슬
p. s. ‘삼나’를 위한 윤슬을 빌려
할머니 댁에는 항상 강아지나 큰 개가 있곤 했다. 그 영향 때문일지는 몰라도 어렸을 때부터 동물을 굉장히 좋아했다. 길거리에서 강아지, 고양이를 마주할 때면 안쓰럽다가도 반가웠다. 학창 시절엔 반려동물을 키우는 친구들에게 유독 관심 많고 질척댄 친구였을지도 모르겠다. 친구들의 반려동물 이름을 다 외우고, 아이들의 안부도 틈틈이 챙길 정도였으니.
그렇게나 동물을 좋아했지만, 정작 그들을 내 가족으로 들이기는 쉽지 않았다. 홀로 집에 남겨질 아이에 대한 미안함, 아이를 키우는데 드는 현실적 부담감과 같은 그럴듯한 이유들과 함께... 우리 엄마는 털 날리는 게 싫다고 하셨다. 사실 나는 한 다리 건너 반려동물들을 보는 것으로 만족했고, 나의 기쁨은 길거리 동물들과의 반가운 조우로도 충분했다. 그동안 반려동물이 없는 삶을 살아왔으니, 반려동물이 있는 삶은 꿈만 꿔왔다. 꿈이 현실이 될 필요도 딱히 없었던, 행복한 상상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었다.
그런데 나의 상상이 현실이 되었다. 내 나이 22살 무렵, 털 날리는 게 싫다던 엄마는 갑자기 고양이 한 마리를 데려왔다. 직장동료네 아들내미가 무턱대고 분양받아온 아이. 분양취소의 위기 앞에서 정 많은 우리 엄마는 그 작은 회색아이를 무시할 수 없었나 보다. 맘은 약했고, 정이 털을 이겨냈다.
이름은 덕봉이(뿌듯하게도 내가 지었다.), 우리가 어렸을 때부터 살던 동네 이름에서 따왔다. 고양이와 인간의 관계는, 일명 주인과 집사의 관계라고 하지 않는가. 그럼에도 우리 덕봉이는 도도함은 개나 줘버린, 항상 우리를 지켜주고 바라봐주는 겸손한 아이다. 길지 않은 주기로 항상 생각한다. ‘어떻게 이렇게 착하고 순한 아이가 우리 집에 왔을까?’ 새근새근 자는 게 예뻐서, 가만히 바깥 구경하는 게 신기해서, 졸졸 따라다니는 게 귀여워서, 그냥 모든 행동이 너무너무 사랑스러워서 넘치는 사랑을 쏟게 된다. 너는 넘치고 쏟아지는 사랑을 한 방울도 흘리지 않고 온전히, 얌전히 받아주었다.
그런 너로부터 나는 많은 걸 배웠다.
회사에서 스트레스받아 힘들 때도, 사랑하는 사람과의 이별에 슬플 때도 그냥 아무 말 없이 기댈 수 있었다. 너의 그 작은 몸, 보드라운 회색 털에 얼굴을 반쯤 파묻어 눈물을 흘렸다. 우리의 관계에는 조건이란 게 붙을 수가 없었다. 무조건적인 사랑을 줄 수 있어서 기쁘고, 무조건적인 사랑을 받을 수 있어서 감사하다. 사람으로부터 느낄 수 없고 채울 수 없는 불가결의 감정이 있었다. 너로부터 불가결의 감정, 그 존재부터 알게 되었다. 네가 없었다면 알지도 못했을 감정, 사실 영원히 몰라도 큰 문제없는 것이겠지만 너로 인해 그 감정을 알고 내 마음에는 영원히 빛날 윤슬이 담겼다. 너도 내 마음속에 너만이 만들 수 있는 윤슬을 영원히 존재하게 만든 것이다. 그렇게 나는 내 감정의 사각지대까지 찬란하게 빛나는 사랑으로 가득 채울 수 있었다.
“너의 이번 생을 더욱 아름답게 만들어 준 게 누구냐?” 누군가 묻는다면, 나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너”를 떠올리겠다. “우리 집 회색 고양이, 덕봉이”를 답하겠다.
항상 그랬듯 오늘도 나는 너에게 속삭일 거다.
“사랑해 덕봉아~”
유일의 감정을 알려준 무이의 너, 우리는 이 반짝이는 잔물결 속에서 오래오래 함께였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