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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y Grace Oct 27. 2022

7. 말싸움의 매너

맞짱 뜰까?......

심사 발표를 끝내고 사무실로 돌아오는 내내 제대로 답변하지 못한 자괴감에 빠져 들면서  방금 심사장에서 만난 심사위원(정확히 2명), 명품 C사 한국지사장, 그리고 얼마 전 강연장에 서 뵌 강원국 님이 떠올랐다.

강연을 끝낸 강원국 님께 요즘 제일 관심 있는 게 무어냐는 질문에 '말의 품격''막말'망언'이런 것들이라고 했는데 지금 이 타이밍에 떠오르는 사람들이라니 피식 웃음이 나왔다.


그럼에도 해야 하는 이유


'아! 그 질문이 맞느냐고 했어야 했는데' (막상 그 자리에서는 그러지 못함)

'왜 그게 아니라고 반론을 하지 못했을까'

'그냥  자리를 박차고 나왔어야 했나?'당최 청문회도 아니고 내가 저 사람들한테 왜 혼이 나야 하는지 오만가지 상상의 나래를 펼치며 생쇼를 하다 보니 현기증이 날 지경이었다. 물론 평가를 하는 입장이긴 해도 설사 기업이 사업목적에 맞지 않았거나 질의응답에 원치 않는 답변을 했더라도 평가 항목에 낮은 점수를 주면 될 것을 가끔 완장 찬 앞잡이 모습을 연상케 하는 위원을 볼 때가 있는데 그 하나가 바로 오늘이었다.

"주휴 수당 줍니까? 컨설팅받고 오세요!!!"

"???"

요즘 세금. 임금. 안 주고 사업할 수 있는 시대도 아니고 회계사, 노무사 거래 안 하고 사업하기 쉽지 않은 시대에 되려 묻고 싶었다. 어떻게 심사위원으로 선정되셨는지. (나중에 들은 소리로 그분의 직업이 노무사였다나?)

옆에서 동행한 직원은 한 술 더 떠 풀썩거리는 모습이 우스꽝스러워  서로 눈이 마주 치차 동시에 웃음이 터져 나왔다.

"왜. 매번 발표 때마다 이렇게 싸우는 걸까요? 알고 보면 위원들 중에 지난번 00 사업 발표 때도 있던 거 아이가. 저것들 또 만났네. 어휴 징그러워. 그럴 수도 있어요."

"그르게..."

깔깔거리며 웃었지만 앞으로도 매번 더럽고 치사한 이런 기분을 감수해야 하는 게 맞나 싶었다.

감수하기 싫으면 안 하면 그만이다. 누가 억지로 모가지를 잡아 끄는 것도 아니고......

이럴 때마다 드는 생각은 내가 사업가 자질이 과연 있는 걸까 하고 자신감이 바닥으로 떨어진다. 평가를 받는 입장에서 나를 굽히고 절절매는 (순전히 나의 주관적인 표현임) 리액션을 한다거나 과하다 싶은 공격도 참고넘어가는 행동으로 오히려 주변사람을 힘들게 만들어버린다. 그럼에도 일 년에 상하반기별로 지원사업에 도전을 하는 건 확장성과 시장에서 나의 비즈니스 검증을 받고 싶어서이기도 하다.

분위기부터 다른 발표장이구나... 진짜 저런가?


말의 품격


작을수록 좋은 두려움, 클수록 좋은 비전, 을 향해 두려워하지 않으면 쌓인다고 한다


       "한 대도 안 맞는 싸움은 없다. 네 대 맞고 여섯 대 때릴 수 있으면 싸운다"

한미 자유무역 협정 때 노무현 대통령님의 이 말이 얼마나 멋지게 들리던지......

늘 가까이선 이런 분을 모셨으면 은연중에 그분의 언행을 흉내 낼 것이고 그러다 보면 나도 모르게 몸에 벨 테니 그런 점에서 강원국 님이 부러웠다. 나는 말을 잘하고 싶었고 또 그 말을 잘 쓰고 싶은 사람이다. 대표라는 위치에 있다 보니 많은 사람을 만나는데 고객과의 상담, 사업 발표, 투자설명, 간담회 등 쉴 새 없이 떠들고 서류작성을 직접 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 나를 보고

"대표니까 당연하죠."얄망스럽게 망설임 없이 뱉는 직원 말에 발끈하며

"참 같은 말이라도 이쁘게 해. 그렇지?"하고 비아냥거리다  대화를 끝내곤 한다.

내 자식도 필터링 없는 문장을 구사하는데  남의 말투에 지적질로 싸워봤자지 뭐......라는 생각으로 정리를 하면서도 매번 중요한 사업 발표 후 같은 상황을 겪다 보면  분해서 씩씩거리다 육두문자를 날리며 그야말로 혼자 생쇼를 한다.

소싯적 별명이 '쌈닭'이었던 나는 상대방이 누구든 간에 대화를 하다 궤변을 늘어놓기 시작하면  인정이 되질 않아 언쟁을 벌이고 지쳐 떨어질 때까지 물고 늘어져  끝을 봐야 직성이 풀렸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의 내 모습은 여럿 질리게 했는데 가끔 그 똘끼가 발동을 할 때가 있지만 지역사회에서 사업을 하다 보면 튀지 말라는 조언을 많이 들어 결국엔 나 역시 나약한 인간임을 인정하고 또 타협해버리며 또 혼자 생쇼를 한다.

그게 대표의 숙명이라고 한다. 앞으로도 더 많이 깨지고 떨어지고 자존감 무너지고 타협하고 그때마다 이렇게 분해하면 못 견딜 거라니......


그 사람은 어떨까


이삼십 대의 풋풋함과 통통 튀는 매력을 발산시키는 시기가 지나고 사십 이후부터는 부드럽고 우아한 사람이 돼야 하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 종종 하지만 그게 어디 하루아침에 되나. 하지만 그럼에도 연습을 하게 된다.

최소한 그런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을 하는 중이다. 말하기보다 들어주기. 호흡하고...... 말하기. 생각하고 말하기. 무엇보다 매너 있게 말하기. 내뱉는 말은 부메랑처럼 나에게 다시 돌아온다고 하니 상대에게 날려야 하는 일침이라도 한 번쯤은 생각하고 내보내면 안 되겠니. 영화 <오만과 편견>중 무도회에서 자신을 무시하는 태도의 남주와 헤어져 집으로 돌아와 위로하는 언니에게 여주인공 리지는 말한다.


괜찮아. 자존심을 건드리는 건 싫지만 어차피 다시는 안 볼 건데....


나는 주정뱅이



이지적인 사람의 말투에서  공통점은 흥분을 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화가 없지는 않겠지만 표현법이 점잖은 건 수양을 많이 했을 테고 그 수양법은 책을 읽고 글을 쓰지 않을까 한다. 화를 주체하지 못해 주변 사람 힘들게 하다 몇 달 전부터 쓰기 시작한 모닝 페이지에 시원하게 육두문자를 쏟아내고 나니 신기하게도 해소가 돼버렸다.

새벽부터 일어나 있는 욕 없는 욕으로 3페이지를 뱉어내는 내 모습에서 술퍼 마시고 길바닥에 토해내는 모습을 본 거 같아 그리 좋아 보이지도 않았다. 이러다 술 주정뱅이 되는 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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