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는 라디오 '맘 편해라'

엄마를 축하하는 파티는왜 없어?

by By Grace

제가 뽑혔다고요?


한낮의 불볕더위와 세차게 울어대는 매미 소리에 지친 오후였지만, 사무실로 걸려온 전화를 받은 후 대학 캠퍼스 안에 위치한 연구실을 가기 위해 빠르게 발걸음을 움직였다. 크리에이터 랩 운영 사무국이라고 밝힌 그녀는 두 달 전 지원했던 ‘아이디어 융합 팩토리 크리에이터 2기 프로젝트’에 참가 선정을 알려주며 구체적인 행사 일정도 전달해주었다.


20팀만 뽑기 때문에 경쟁률이 워낙 높아, 내가 제안한 돌봄 사업 콘텐츠가 요즘 트렌디한 분야가 아니라서 사실 선정까지는 기대하지 않았는데, 뜻밖이었다.


개인 창작자를 위한 꿈의 무대


'아이디어 융합 팩토리 크리에이터 랩'은 콘텐츠진흥원에서 채널을 보유하고 있는 개인이나 팀을 대상으로, 아이디어 발굴부터 콘텐츠, 채널을 활성화시키는 목적으로 지원해주는 프로젝트 사업이다. 그동안 유튜브, 팟캐스트, 네이버 TV 등 여러 채널을 운영하면서 사정상 제한된 콘셉트로만 진행하는 것이 아쉬웠는데, 이런 지원을 받을 수 있다니 나 같은 개인 창작자에게는 너무나 좋은 기회였다.


출산의 전리품이 우울증이라고?


언택트 시대를 맞이해 돌봄 시장의 변화를 꾀하는 서비스 사업을 비즈니스 모델로, 스타트업을 창업한 지 일 년이 되었다. 고객이 산모이다 보니 출산 전부터 자연스레 만나 스케줄을 확인하며 출산 후에는 직접 산후조리서비스까지 제공하면서 긴 시간을 그들 곁에서 지켜볼 수 있었다.


초보맘들은 출산 후 본격적으로 신생아를 돌보면서 낮과 밤이 구별되지 않고, 평일과 주말도 없이 수유와 수면을 반복하는 생활 루틴에서 오는 무기력과 경력단절의 불안감과 우울감을 경험하고 있었다. 어떤 산모는 출산의 전리품이 '산후우울증'이라고도 했다.



엄마들을 위한 파티는 왜 안 해?


출산과 육아는 엄마의 영역이 아닌 사회의 영역으로 확대하여 산후 우울증은 국가가 책임져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면서 많은 정책이 생겨났지만, 현장에서 실제 도움을 받을 수 없다는 소리도 들을 수 있었다. 첫 임신을 확인했던 순간, 첫 산부인과 진료, 첫 입덧 등 시시콜콜한 모든 처음의 기억들이 소환되었다. 남자들의 군대 담처럼 산모들에게도 저마다 상황과 환경이 다르다 보니 공유하고 싶은 자신만의 출산 스토리가 있을 텐데 싶었다.


누구나 처음이기에 겪을 수 있는 출산 에피소드를 서로 공유하면서 공감하고 고충을 이해해줄 수 있는 모임이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 늘 있었다. 그러던 중 누군가의 아내가 되기 전 '브라이덜 샤워'라는 축하파티와 아기의 탄생 전 '베이비 샤워'를 하는 것을 보고 엄마가 된 것을 축하해주는 파티는 없을까 하는 생각으로 팀원들과 회의를 했다. 그리곤 이렇게 결론을 내렸다. "그래, 우리 맘(엄마)들을 위한 파티를 만들어보자!" 맘들을 위한 파티, '맘 편해라'가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KakaoTalk_Photo_2021-09-27-00-06-21.jpeg 출처: 내 사진첩



맘들을 위한 파티, MOTHER'S SHOWER


'맘들의 파티, 맘 편해라'는 단순히 모여서 먹고 수다를 떠는 게 아니라, 이제 막 엄마가 된 그들을 향한 위로와 응원을 각자의 목소리와 이야기로 전달하는 것이다. 그것도 보이는 라디오로 말이다. 프로그램 속에서 주인공들은 파티에 초대되어 드레스 업을 하고, 예쁘게 장식된 테이블에 앉아 우아하게 브런치를 즐긴다. 그리곤 출산과 육아 전문가들을 초대해 출산이 곧 사회 모든 구성원이 함께해야 한다는 인식을 만들어줄 수 있도록 다양한 이야기를 담은 것이 '맘 편해라' 프로그램의 주된 내용이다.


누구나 엄마가 처음이기에 겪을 수 있는 시행착오와 딸 때문에 다시 육아를 하게 된 조부모님, 초보 아빠들의 드러내지 못하는 속사정이 의외로 다양하고 흥미로웠다. 그래서 이들이 출산과 육아를 각자의 입장에서 바라보고 직접 참여함으로써 겪는 일들을 공유하고 서로 공감할 수 있는 출산과 육아 콘텐츠를 기획했다.


마음이 편하면서, 맘(엄마)이 편할 수 있게 콘텐츠를 만들자라는 뜻의 '맘 편해라'는 처음 구상했던 비즈니스 모델인 애플리케이션의 명칭이며, 이번 프로젝트에는 '보이는 라디오'라는 방송명도 그대로 사용하기로 했다. 이번 콘텐츠는 제작비와 홍보비를 지원받기에 바다가 보이는 장소를 섭외하고선 관리 중인 산모들에게 전화를 걸었다.


코로나-19라는 어려운 상황에서 외출조차 쉽지 않아 힘든 때임에도 예상대로 많은 산모들이 콘텐츠 제작에 참여 의사를 밝혔다. 낯설기도 하고 촬영을 한다는 점이 부끄러울 수 있지만 누군가 나에게 관심을 가져준다는 건 그들에게 설렘과 위로를 동시에 안겨줄 거란 확신이 맞았음을 깨달았다.


대신 방역을 철저히 하고, 인원을 제한해서 총 7회에 걸쳐 산모와 남편, 예비 산모와 전문인력들의 입장에서 경험했던 출산 및 육아 스토리를 수집하고 인터뷰하는 방송 프로그램을 기획했다.


이만 마치며: 좋은 인연으로 기억된다는 건 수많은 연습이 필요하다


지나고 보니 누군가의 딸로 태어나 아내로, 엄마로서의 삶이 그렇게 싫지만은 않았다. 나의 뱃속이 우주였던 나의 아이들. 어느새 자라 대학생인 딸아이와 코밑에 수염 난 아들을 보면서 여전히 아이들을 뱃속에 품고 출산하던 당시의 설렘을 생생하게 떠올릴 수 있다.


거창한 사명감으로 시작한 건 아니었다. 출산의 기쁨이 있는 반면 상처와 아픔도 경험하면서, 만일 지금 내 주변에 아무도 없어서 힘든 사람이 있다면 나의 관심이 위로가 되어 자신의 편도 있다는 것을 이야기해주고 싶었다.


자신에게 누군가가 관심 가져주는 것을 마다하는 사람은 없다. 따뜻한 한 끼를 예쁜 그릇에 담아 주고 향기 좋은 수건으로 닦아주는 소소한 대접을 받을 때도 우리는 감동을 받는다. 촬영을 통해 그런 감동이 느껴지도록, 그리고 방송을 통해 시청자들도 이를 느낄 수 있도록 하기 위해 '맘 편해라'를 탄생시켰다.


상대를 행복하게 만든다는 게 거창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처음부터 알지 못했다. 눈을 마주치고 귀를 기울이는 노력을 꽤 많은 시간 동안 해왔고 이번 프로젝트 역시 누군가의 기억 속에 마치 언니나 선배처럼 좋은 인연으로 남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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