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 시작한 이색 취미-밀 키트 요리

오늘뭐 먹었어?

by By Grace

B형 여자가 화났을 때


마음을 풀어주는 가장 좋은 방법은 맛있는 음식을 먹이면 된다고 할 정도로 나는 먹는 걸로 위로받기를 좋아한다. 맛집이라면 한두 시간이 걸리거나 그 시간을 기다리더라도 불사하는데 비 대면의 일상과 외식조차 어려워지는 코 시국에 하루 세끼는 아니더라도 매 끼니마다 챙겨야 하는 먹거리 걱정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마트에서 장을 보더라도 몇 안 되는 품목이 5~6만 원이 훌쩍 넘었어도 집에 와서 보면 딱히 해 먹을 게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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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뭘 먹지?


늘 고민하던 중에 새로운 취미라고 해야 하나? 요즘 나는 밀 키트 요리에 빠졌는데 가성 비 좋은 요리를 만드는 재미가 꽤 쏠쏠하다. 메뉴를 정하면 부재료비까지 비용이 만만치 않은 데다 식구도 많지 않아 자칫 보관이 일주일이 넘으면 상하기 일쑤라 버리는 게 싫어 만만한 김치볶음밥으로 때우다 보니 ‘올드보이’라는 놀림을 받았다. 그러던 어느 날 마트 한편에 자리 잡고 있는 밀 키트 코너에서 다양한 메뉴를 구경하다 순두부 찌개를 발견했다. 2인 기준금액으로 7000원 정도였는데 언뜻 계산해도 순두부 재료에 들어가는 야채와 양념값만 해도 그 이상의 가격이 들 텐데 과연 안에 있는 재료들이 깨끗할지 신선할지 망설이면서 집어 들었다.


지극히 개인적인


때마침 밖은 가을비가 추적추적 내리고 있었고 빗물처럼 눈물 콧물 쏟아지도록 얼큰한 국물 이랑 말캉한 순두부의 식감이 식욕을 당겼다. 순두부찌개는 주로 집에서 만들어 먹기보다는 밖에서 주문해 먹는 메뉴였는데 이유는 번거롭기 때문이었다. 어르신들이 들으면 기가 찰 노릇이라고 혀를 차겠지만 부엌에서 한 시간 이상을 소비하면서 식사 준비를 한다는 게 생산적이지 못하다는 지극히 개인적인 의견에서 그동안 최소한의 동선으로 요리를 하는 편인 나는 뭐든 한 가지로 후딱 해 먹는 걸 선호해서 가급적 씻고 썰고 끓여하는 국물 종류는 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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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전범죄 노리다


내심 기대 반 의심반으로 선택을 했었는데 결과는 기대 이상이어서 놀랐다. 밀 키트의 다양한 메뉴에는 손질된 재료들과 조리법이 내장되어 있었는데 말라비틀어진 야채도 아니었고 약간의 노력만 들이면 10~20분 만에 훌륭한 일품요리가 탄생했다. 그래도 위생상 정수기 물에 재료들을 한번 더 깨끗하게 세척하고 그야말로 도깨비방망이처럼 1~2인분에 약간의 야채와 육수만 첨가하니 3~4인분으로 양을 늘릴 수도 있었다. 베트남 불고추, 굴 소스 같은 나만의 양념을 첨가하고 빨간 고추기름 사이에 수저로 순두부를 듬뿍 떼어내어 '보글보글' 끓는 순간 마지막으로 계란 노른자를 '톡'. 참기름 한 방울만 떨어뜨리고 보기 좋은 게 먹기도 좋다 했던가?


완전 범죄를 위해 꽃무늬 화려한 제법 비싼 법랑 냄비에 옮겨 담고 세뚜로 앞접시를 놓아 테이블 데커레이션에 신경을 쓰니 가족들이 놀래 자빠졌다. 이걸 엄마가 했느냐고…… 식탁 위로 옮겨도 보글보글 계속 끓는 소리는 식사가 끝날 때까지 '후후' 불어가며 뜨겁게 먹을 수 있었다.



좋은 음식은 좋은 대화로 끝이 난다.

-제프리 네이머-

다시 그날


한 번 셰프의 위엄을 보이니 나의 응큼한 도전은 그 이후로 계속 질주를 했는데 감바스, 차돌박이 숙주볶음 등 나날이 화려한 요리를 선보이니 대화가 풍성해졌다. 오가는 질문과 답변 사이에서 자신의 꿈까지 뱉어내는 아이. 동료들. 그야말로 만원이 주는 소소한 식탁 위의 행복이었다. 여전히 많은 시간을 들이지 않는 요리사가 가능했던 건 밀키트 덕분이었다.

불현듯 추운 나라 캐나다에서 추위를 견디느라 즐겨 마셨던 따뜻한 사케가 떠올랐다.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흩날리는 눈을 보며 따뜻한 술과 국물로 외로움을 달랬던 그때도 좋았다.


남은 과제는 사케에 어울리는 밀푀유 나베로 친구를 초대해 술을 즐기며 욕심을 부려볼 참인데 책도 읽고 글도 쓰는 나만의 북-bar도 낭만적이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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