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좋은 엄마라는 착각하지 마세요
초보 엄마였던 시절. 밴쿠버에서 플랜트 사업을 하던 지인으로부터 대한민국은 엄마가 바뀌어야 한다는 말에 내심 발끈했던 적이 있었다. 밴쿠버로 영어캠프를 보내며 한국사람 없는 곳으로 보내달라는 엄마들의 요구에 정작 본인은 영어 한마디도 못하면서 자기 아이를 그런 곳에 던져놓는 게 정신적 학대라는 주장이었다. 당시에 직설적인 지인의 화법이 굉장히 거슬렸던 건 내가 이제 막 엄마가 되었기 때문이었다.
인에이블러 엄마의 고백서 <나는 내가 좋은 엄마인 줄 알았습니다.>
한눈에 들어온 책 제목에서 '인에이블러'는 낯선 단어였지만 이 세상 모든 엄마들이 좋은 엄마로 살고 있다고 믿을 텐데 아니란 말이야? 하는 의문으로 관심을 끌기에 충분했다. 평소 여자로서의 삶이 싫지 않았다며 엄마여서 아내여서 딸이어서 좋았다고 공공연하게 떠들었는데 아내와 엄마의 관점에서 써 내려간 글을 읽어 내려갈수록 엄마라서 가엽고 측은한 감정이 스며들었다. 이 책에서 작가는 자신을 '인에이블러'라는 고백으로 시작해서 그녀가 남편과 아이들과의 관계에 있어 자신의 행동과 의존 의미, 책임과 변화로 마무리지었다.
인에이블러는 사랑한다면서 실제로는 자신에게 의존하게 함으로써 자율적 성장을 박탈하여 망치는 사람이다. 우리나라 돼지엄마 헬리콥터 엄마들의 이야기를 다룬 드라마 <스카이케슬>의 곽미향, <팬트하우스>의 천 서진 같은 극성맞은 엄마들이 전형적인 인에이블러였다. 이 행위는 누군가의 심리적 건강을 저해하고 건강한 성장을 방해한다는 점에서 심각한 정서적 학대로 간주될만하다. 자칫 극성맞은 치맛바람으로 자녀에게 이미 길을 정해놓고 그 길로만 가라고 요구하며 휘젓고 다니는 엄마가 만일 요구에 따르지 않으면 책망, 협박, 교묘한 조종 행위로 자신이 정한 길로 갈 수밖에 없게 하는 일련의 행동을 말하는 것 같았다. 얼핏 조금만 생각해보면 나 역시도 반성해야 할 몇몇 가지들이 분명히 존재했다.
나 역시 결혼과 동시에 가족을 성공적으로 보살피는 것이 인생의 중요한 목적이라는 명목 하에 배우자나 아이들에게 하는 모든 행위를 합리화시켰고 따라주지 않는 남편과는 소통의 단절로 결론지으며 아이들에 대한 집착은 도를 넘게 되어 결국 가족이 받게 되는 고통에 절망했었다. 그 원인은 남편이라 생각했고 요즘은 이제 막 미성년자를 벗어난 딸아이와의 갈등에서 또다시 아이 탓을 하며 신경전을 벌이고 있다. 딸아이의 기질은 분명 비교가 될 만큼 강하고 특별했다. 간혹 당황스럽긴 했지만 '그저 성장과정일 거야. 그만해.'라는 말을 하지 않았다. 내가 딸을 위해 살 수 있고 짐을 대신 질 수 있을 만큼 강하다는 생각으로 살았다.
스스로 하는 법을 배우도록 지켜봐 줄 생각이 전혀 없었다. 이런 조장 행위는 작가의 고백뿐 아니라 흔한 우리의 모습이라고 생각했다.
사람은 어려움에 쳐했을 때 가까운 사람으로부터의 도움을 기대하며 어려움에 반응하는 방식에 따라 상호의존적 사람과 의존적인 사람으로 나뉘며 어떤 식의 이유를 핑계 삼아 본인 책임을 회피하는 사람은 감정적 의존인데 실제 경제적 의존보다 더 치명적이라고 한다. 감정적 의존자가 본인의 핑계나 거짓 행동을 정당화하며 문제를 다른 사람에게 해결하도록 넘겨주고 기꺼이 떠맡으려는 사람까지 있다면 조장과 의존의 악순환의 모습이라고 한다.
보편적으로 인에이블러는 노잼이고 현실적인 규칙을 따르고 열심히 일하는 반면 의존자들은 자신의 내적 드라마에 사로잡힌 낭만적인 인물인 경우가 많다고 한다. 맞네. 맞아 내가 그렇거든......
딸을 대하는 방식을 바꿔보기로 했다. 자신의 행동에 대한 책임의 부담을 그들에게 되돌려주는 과정이 시작된 것인데 독립을 시키기로 결정했다. 이 책을 읽고 바뀐 건 아니었다. 공교롭게 문제 발생에 맞물려 수많은 해결책을 반복할 즈음 이 책을 읽게 되었고 결론을 짓는 셈이었다.
나의 조장행위를 끊어내려면, 딸에게 조력자라는 가면을 벗고 나 자신을 바라볼 필요가 있었고
나는 나에게 정직하기로 했다. 조장하는 습관을 버리려면 인에이블러임을 인정하고 조장행위를 끝내도록 헌신해야 한다는 작가의 충고를 받아들이고 실천해보려고 한다. 그야말로 20년 전에 들었던 엄마가 바뀌어야 한다는 말을 듣기로 한 것이다.
책 내용에서 이제 막 부모가 된 신생아를 둔 부부의 예가 있어 잠깐 소개해보려고 하니 초보 엄마가 꼭 참고했으면 한다.
1. 육아 파트너로 남편을 지지하고 싶은 아내는 수유 방법과 기저귀 교환법을 보여준다. 자기의 경험으로 알아낸 사소한 것같이 남편에게 가르쳐주고 아기와 아빠가 단둘이 있는 특별한 시간을 장려한다.
2. 남편과 아기의 의존성을 키우려는 아내는 아빠와 단둘의 시간을 주지 않는다. 자신이 없어서는 안 될 존재로 육아방법을 알려주지 않는다. 남편과 아기 두 사람이 자신을 중재자로 원하도록 만든다
정체성이란 감각은 각종 경험을 통해 자신이 누구인지를 발견하면서 생겨난다.
아이의 일을 대신하고 싶어 하고 아이의 인생을 애들 자신보다 내가 더 잘 처리할 수
있다는 엄마는 실은 아이의 정체성을 부정하고 있다는 걸 생각하길 바란다.
-엔젤린 밀러-
딸이 내 공간에서 벗어나기 하루 전 많은 것을 함께 했다. 오랜만에 외식을 하고 새로운 공간에 필요한 생필품을 쇼핑했다. 평소 엄카를 무섭게 긁어내던 딸은 슬금슬금 눈치를 보며 비교적 저렴한 가격의 물품들을 기웃거리면서도 신나 하는 모습이었다. 그렇게 좋니.
아이의 독립 이후 나에게도 조금씩 변화가 생겼다. 더 많은 책을 읽게 되고 처리해야 하는 업무에 집중도 높아 결과물이 순조롭게 나왔다. 건강해야 돈을 벌 수 있다는 직원의 충고에 헬스장 회원등록도 하고 미뤄뒀던 출장 계획을 잡으며 그동안 만나지 못했던 친구들과의 만남도 끼워 넣었다.
그야말로 나를 위한 계획으로 변화시켰다. 변화에 적응하고 활용할수록 인생이 풍부하고 흥미롭다는 걸 체험하고 있다. 엔젤린 밀러의 <나는 내가 좋은 엄마인 줄 알았습니다>는 감탄을 자아내는 말들이 무수히 나온다.
물론 모든 엄마들이 공감하지 않을 수도 있다. 다분히 공격적인 표현도 있을 수 있지만 나는 나의 경우를 빗대어 나를 보게 되었고 나를 변화시키려는 쪽이다 보니 공감을 할 수 있었다.
마지막으로 이 책에서 가장 가슴에 와닿았고 소중한 나의 딸과 아들에게 해주고 싶은 문장으로 정리를 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