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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y Kyron Oct 07. 2021

택배차의 방지턱

덜컹, 툭!

“덜컹, 툭. 덜컹! 툭.”


 이놈의 냉동차는 과속방지턱만 넘으면 엉덩이가 올라가는 흥을 주체하지 못한다. 본인의 엉덩이에 얼마나 중요한 것들이 들어있는지도 모른 채, 냉동차는 방지턱을 만날 때마다 본인의 엉덩이를 위아래로 신나게 흔들어 재낀다. 왜 이리 아파트 단지에는 과속방지턱들이 즐비해 있는 건지 모르겠다. 다들 어련히 알아서 천천히 갈 것을. 이게 다 사람들이 유통업을 경험해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전국민이 택배차를 한 번이라도 몰아봤다면 전국 각지에서 방지턱을 없애자는 운동이 벌어질 것이 분명했다.


“법적으로 첫 자가용은 택배차로 구입하도록 규제를 해야하는데 말이야.”


 나도 어이없는 망상이라는 걸 알면서도 지금 운전석 뒤에서 사방으로 튕겨 나가 어딘가 상처가 나 있을 식료품들을 생각하면 스트레스가 솟아오른다. 분명 퇴근할 때쯤 되면 컴플레인 전화가 하나 둘 걸려올 것이다. 하... 벌써부터 아찔하다. 방지턱만 없었어도 이런 걱정 할 일이 없었을 텐데. 물론, 방지턱이 앞에 있을 때 내가 제대로 감속만 한다면 택배들도 흔들림 없는 여정을 지속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그게 가능한 일이냐고! 사람들은 매일 같이 택배 동선 조회를 해대고, 조금만 늦어도 택배 회사로 전화를 해서 자기 택배 어디 있냐고 소리 지르기 일쑤인데 내가 제때 감속을 할 수 있겠냐고.


“털털털, 털털털”


 아이고, 벌써 기름이 한 칸도 안 남았네. 내가 담당하는 차량이 식료품을 싣는 냉동차다보니 기름 소모량도 상당하다. 기름 넣은 지 아직 3일밖에 안 된 거 같은데, 벌써 또 넣어야 한다. 그것도 내 사비로 말이다. 기름값은 본사에서 지원되지 않는 가장 엿 같은 고정비용이다. 한 달에 오십만원 이상의 기름값이 지출되지만 그건 그저 내 지갑에서 흘러나가야 할 당연한 비용이 되었다. 그럴 거면 월급이라도 많이 주지. 사대보험에 기름 값하면 뭐 100만원은 뚝딱이다. 생각보다 높은 연봉에 혹해서 시작한 택배 일이었지만 이렇게 돈에 뒤통수를 맞을 줄을 상상도 못했다. 그리고 주유소가 이렇게 안 나올 지도 상상도 못했다. 아니 무슨 동네에 주유소가 없냐... 아, 이럴 줄 알았으면 아까 물류센터에서 출발할 때 넣고 올 걸 그랬다. 빨리 퇴근하겠다고 괜히 급하게 나왔다가 도로 한복판에서 택배차를 직접 끌고 가게 생겼네.


“삐-빅, 삐-빅”


 의미없이 돌아다니다간 정말 차가 멈출 것 같아서 일단 도로변에 차를 세우고 T맵을 켰다. 다행히 두 블록 지나 우회전하면 바로 GS 주유소가 위치해 있었다. 다행히 차를 끌고 다닐 일은 없겠구나 싶어 안도의 한숨이 나왔다. 업무 시작한 지 얼마되지도 않았는데, 왜 벌써 피곤한지 모르겠다. 기름이나 넣는 김에 커피라도 한 잔 마시면서 정신을 차려야겠다. 커피 생각이 나던 그때 주유소가 앞에 보였고, 마침 또 주유소 옆에 커피 자판기가 있는 게 눈에 잡혔다. 나이스. 나는 주유소에 도착했다는 안도감에 소심하게 밟던 엑셀에 편안히 발을 올렸다.


“덜컹, 툭. 덜컹! 툭.”


하... 방지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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