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욕에 대한 기억
온몸이 가벼워지는 마법같은 추억
나는 항상 거실 화장실만 쓰지 안방 화장실은 쓰지 않는다. 문이 반투명이라 씻을 때 알몸의 실루엣이 보이는 게 신경쓰이기도 하고, 욕조가 불필요하게 자리를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오늘은 내가 안방 화장실을 쓰고 있다. 30분 뒤면 백신을 맞으러 출발해야 하는데 누나가 갑자기 거실 화장실을 독차지하는 바람에 오랜만에 안방 화장실을 쓰게 됐다. 하지만 역시 반투명 문을 두고 샤워를 하긴 뭐해서 머리만 후딱 감기로 했다.
이렇게 욕조에 머리를 쳐 박고 머리를 감는 게 얼마만인지 모르겠다. 거실 화장실은 욕조없이 샤워 부스로만 되어 있어서 머리를 감으려면 바닥에 고개를 숙인 채 머리를 감아야 했다. 그런데 이렇게 욕조에 대고 머리를 감으니 어릴 적 기억이 떠올랐다. 처음으로 엄마가 머리를 감겨줬던 기억부터 학교 가기 전 교복 입은 채로 머리를 감던 기억까지 욕조와 함께했던 과거의 날들이 파노라마처럼 지나갔다.
어릴 적 나는 욕조에 물을 받고 목욕하는 것을 굉장히 특별하게 여겼다. 욕조를 청소하는 시간 5분, 물을 받는 시간 10분, 따뜻한 물과 차가운 물로 적당한 온도를 맞추는 시간 5분. 목욕이란 정성이 담긴 20분이라는 시간을 아낌없이 보답해야 하는 의식과도 같기 때문이다. 어쩌면 목욕이란 우리가 쌓아온 먼지의 시간을 씻겨 내려가는 물의 시간으로 전환하는 하나의 종교 의식일지도 모른다. 목욕재개라는 말이 있는 걸 보면 진짜 그럴지도…
거품은 목욕을 특별하게 만드는 또 다른 기쁨이었다. 난 항상 목욕을 할 때면 적당히 따땃하면서도 미적지근한 물이 어느정도 찼다 싶을 때, 물이 나오는 수독꼭지에 엄마 몰래 샴푸를 풀어서 거품을 만들곤 했다. 잔잔한 물에는 아무리 샴푸를 풀어봤자 거품이 생기다 말다 하는데 콸콸 쏟아지는 수도꼭지에 샴푸를 풀면, 조금만 풀어도 보글보글 많은 양의 거품이 퍼져나갔다. 뭉게뭉게 퍼지는 거품은 한 방울 한 방울씩 만져보면 아무것도 없는 것처럼 가벼웠지만, 우글대는 거품더미를 만질 때면 폭신한 베개에 기대는 것처럼 포근했다. 마치 꿈처럼 진실과 허구가 적절히 섞인 모호한 공간에 온 기분이었다.
거품의 기억이 꿈과 같아서인지 목욕을 했던 지난 날들은 내게 너무 행복한 기억으로 남아있다. 지금은 목욕을 하기 귀찮아서 그저 샤워로 떼우는 일상이지만, 역시 목욕했던 기억들은 따뜻하고 여유로웠다. 그런데 지금은 내게 20분의 시간을 들여 욕조를 준비할 여유가 없는 건지, 거품더미 같은 꿈을 꿀 시간이 없는 건지 목욕은 내게서 멀어져 갔다. 이제 욕조는 그저 어쩌다 한 번 급하게 머리를 감는 미봉책의 공간일 뿐이다. 바빠져 버린 일상에 따뜻한 물이 주는 치유의 시간은 사라졌다. 일상에서 받은 상처들은 미봉책들로 덕지덕지 가려져 있을 뿐이다.
그런데 참 웃기다. 난 지금 회사를 다니는 것도 아니고, 학교를 다니는 것도 아닌데 왜 여유가 없을까? 괜시리 마음을 한 번 들춰본다. 역시나 마음 세포들은 내가 무얼 하든 바쁘게 움직이며 나를 초조하게 만들고 있다. 이 글을 쓰는 지금도 그렇다. 마음 세포는 ‘얼른 덮고 자소서나 써!’라고 나를 다그치고는 다시 마음의 페달을 밟으러 사라졌다. 그래, 자소서나 쓰자. 나는 오늘도 샤워기를 내려놓고 수도꼭지를 잠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