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고모델로 정신없이 일하며 부랴부랴 임신 준비를 시작했고 1년을 꼬박 고생해서 어렵사리 임신 소식을 들었다. 그때까지도 광고모델로 한창 일하던 시기였기에, 임신을 알게된 그날 당시, 이미 그 달에 픽스된 광고 촬영이 3건이나 있었다. 도합 700만 원이 넘는 페이였다. 하지만 망설이지 않았다. 에이전시 세 곳에 차례로 연락해 “죄송하지만 임신이 되어 이번 촬영이 어렵게 되었습니다. 그동안 오랫동안 기다리던 아이가 찾아온거라 아무래도 조심해야 될 것같아요. 정말 너무 죄송합니다“ 라는 내용으로 전했다. 다행히 임신이라는 사유라서 그런지 디렉터들도 ‘같이 일하지 못해 안타깝지만, 축하드린다’고 말씀해주시며 어쩔 수 없음을 이해해 주셨다.
간절히 기다린 생명이었다. 일도, 돈도 중요하지 않았다. 그저, 잘 지켜내고 싶었다. 그날 이후, 나는 그 어떤 스케줄도 없이 그저 ‘엄마가 되기 위한 시간’에 몰두했다. 입덧 하나 없이 잘 먹고 잘 쉬며 그렇게 40주를 지나 어느덧 만삭이 되었고 출산 전 마지막 몸무게는 75kg. “출산하면 다 빠진다”는 말에 안심하며 먹었건만, 아이 무게 4.34kg만 빠지고 나머지 70kg 넘게는 내 몫으로 남았다.
거울 앞에 선 나는 꽤나 후덕했다. ‘계속 이렇게 살게 되면 어쩌지?’ 라는 생각에 무서웠다. 하지만 다행히 출산 이후 입맛이 뚝 떨어졌고, 하루 한 끼만 먹는 루틴이 자연스럽게 시작되었다. 덕분에 모유는 오래 주지 못했다. 초유만 한 달 정도 먹이고, 분유로 전환하게 된 건 아기에게 미안한 부분이었지만, 나에게 꼭 필요했던 변화이기도 했다. 하루에 한끼먹으며 저녁 식후엔 꼭 효소를 챙겨먹고, 홈트 영상 따라 틈틈이 운동하고, 클리닉에서 뱃살 관리도 받았다. 살빼는데 도움된다는건 다한것 같다.
그렇게 출산 6개월 만에 17kg 감량. 다시 일할 수 있을 만큼 회복했고, 출산 7개월만에 보일러 브랜드 광고 촬영도 들어갔다. 하지만 화면 속 나는, 전처럼 날렵하지 않았다. 여전히 남은 산후 부기와 통통한 얼굴이 그대로 잡혔다. 그 광고는 내게 일종의 ‘중간 점검표’였고, 나는 다시 다이어트에 박차를 가했다. 그런데 예전처럼 안 먹는다고 쉽게 빠지지 않았다. 기운이 없어 육아가 더 힘들었다. 이건 아니다 싶어, 제대로 먹되 건강하게 먹는 식단을 짰다. 어플에 하루 섭취량을 기록하고, 한 끼를 먹어도 성분을 따지며 균형 잡힌 식사를 했다. 그렇게 출산 1년 반이 지났을 무렵, 드디어 48kg, 출산 전 몸무게를 되찾을 수 있었다. 물론 그 이후 반등은 있지만 그럭저럭 유지어터로 먹빼먹빼를 반복하고있다.
그런데 이제, 문제는 겉모습이나 살이 아니었다. 광고모델로서의 활동은 길어질수록 이미지 소진이 빨라 오래일하면 이제는 자주 불러주지 않는 분위기가 형성되어감을 느꼈다. 물론 아기낳고도 굵직굵직한 광고에 출연하고 대대적인 지면광고도 찍으며 활동을 이어갔지만, 나보다 젊고 새롭고 신선한 뉴페이스들이 더 자주 다양한 기회를 가져갔다. 당연한 이치이고 지당한 결과다. 그래서 ‘내가 이 분야 일을 계속 하려면 연기력이 필요하겠구나. 연기를 병행해야겠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모델로 활발히 활동하던 시기에도 ‘언젠가는 배우로 전향하고 싶다’는 마음이 있었지만 나중으로 미뤄온일인데, 이 시기를 기회로 삼아야 했다.
물론 육아를하다보니 나혼자였을때와달리 자유로운 몸이 아니라서 뭐하나 배우러 나가기도 쉽지 않았다. 아기를 키우는 입장에서 월수금, 화목 같은 고정된 수업은 어려웠다. 내 일정에 맞게, 유연하게 배울 수 있어야 했다. 마침 지인 배우가 한예종 출신의 개인 연기 선생님을 소개해줬고, 나는 내 스케줄에 맞게 1:1로 수업을 받기 시작했다. 이제 막 기기 시작하는 아기를 애아빠에게 맡겨두고 나가며, 이 나이에 연기배우겠다고 나서는 마음도 편치만은 않았다. 아기의 작은 손이 내 손가락을 잡고 곤히 잠들면 그 손가락 하나 빼는데에도 깰까싶어 조심스레 빠져나오며 겨우 재워두고, 내 패션이나 스타일은 신경쓰지도 못한채 집을 후다닥 나서는 날이 허다했다.
그렇게 1년. 빠짐없이 꾸준히 감각을 익혔다. 다시, 촬영장을 향한 몸과 마음을 준비해갔다. ‘연기자’라는 타이틀을 가지고 멘땅에 헤딩하는 마음으로 임했다. 광고에이전시 디렉터들과는 달리 배우쪽 캐스팅디렉터들은 아무도 나를 모르기 때문에 배우일은 다시 밑바닥부터 시작해야했다. 뭐부터 어떻게 시작해야할지 모르겠고 모든게 리셋된 느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