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기에 대한 갈망이 마구마구 솟구 쳤던 그때는 매일 하루에도 수십 번씩 필름메이커스에 들어가서 배우 모집 글을 놓치지 않고 확인 했었다. 학생 단편영화에 출연 하면서 한번이라도 경력을 쌓아야 겠다 싶어서, 나이대와 성별이 맞고 할수 있는 역할이다 싶으면 무조건 다 지원을 해봤다. 물론 학생단편은 학생들의 작품이기 때문에 페이가 다소 적다. 하지만 상관 없었다. 돈이 중요한 게 아니었다. 아무런 연기 경력이 없는 나 같은 사람을 단편영화에서 써 줄리 만무하기에, 캐스팅 되기만을 바라며 무작정 여러곳에 최대한 많이 지원해서 확률을 높여 야만 했다. 그러다가 정말 기적적으로 첫 학생 단편영화 에서 연락이 왔다.
당시 홍대 학생들의 작품이었는데 연락을 받고 떨리는 마음으로 첫 오디션을 보았다. 그런데 너무나도 감사하게 캐스팅이 되었고 대본미팅과 긴긴 준비기간을 거쳐 촬영일자가 점점 다가왔다. 내 역할인 엄마와 두 딸이 주연인 작품으로 3일 동안 홍대캠퍼스 근처 청주에서 촬영을 해야 했다. 전날 미리 내려 가는 것까지 하면 4일을 청주에 머물러야 했다.
캐스팅되어 단편영화를 찍게 된건 너무 좋았지만, 당시 27개월 무렵의 아이를 두고 지방에 내려 간다는 거 자체가 굉장히 부담스러웠다. 사실 너무 너무 하고 싶은데 아기를 생각하면, 엄마없는 기간에 아기가 엄마를 애타게 찾을까 싶기도 하고 또 눈에 밟히기도 해서 내가 작품을 포기해야 하나 싶었다. ‘어떻게 얻은 기회인데 하필이면 4일이나 지방을 가야 하다니… 차라리 하루 찍고 빠지는 간단한 역할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들정도로 첫 작품이 너무 너무 부담스러웠다.
그렇지만 너무 귀한 기회였고 이걸 해내지 못하면 앞으로도 연기 생활하는데 지장이 있겠다 싶었다. 어차피 내가 앞으로 해야 할 일이라면 부딪쳐야겠다고 생각을 했다. 남편도 내가 아기를 너무 걱정하면서 포기 하려고 하니, “앞으로 어떻게 할 거냐”, “그렇게 생각하면 앞으로도 연기생활은 못한다.”, “촬영 있을 때마다 이럴 거냐” 하며 해보라고 다독여 주었다. 그리고 아기는 자기가 케어 잘 하겠다고 걱정 하지 않도록 해 주었다. 그렇게 남편의 지지를 얻어 4일간의 지방촬영을 나서기로 했다.
그렇게 촬영 날이 되었다. 극중 엄마는 남편 없이 아이들을 키우는 엄마였기에 매우 고달프고 힘든 상황을 연출 해야 해서 화장기도 거의 없는 상태로 촬영해야했고, 옷도 후질근 한 상태로 준비한 의상을 입고 리얼하게 진행 되었다. 그런 자체가 광고 모델 할 때와 너무 달라서 재미있었다. 늘 헤어 메이크업 해주는 실장님들이 계시고 컨셉에 맞게 예쁘게 꾸며지는 상황이 아니라, 그냥 현실을 담아 내야 하는 상황에서 배우로써 자연스럽게 연기하는게 너무나도 달랐다. 눈썹 하나 진하게 그리는 거 조차도 거부감이 있을 수 있는 상황이기에 외적인 모습에 신경쓰지않고 그저 연기에 집중했다.
배우 설경구님의 말씀이 떠올랐다. “배우로서 가장 중요한 건 ‘나’를 지우는 용기라고 생각해요.”. 그렇다. 연기 할 때는 장현진이 아니라 나를 지운 채 극중인물에 빠져들어 하나하나 상상해가며 만들어 나가야 했다. 그 작업이 얼마나 재밌는지 모른다. 연기 수업을 받는 것과 달리 작품을 해 보는 것이 훨씬 연기하는데에도 도움이 되었다. 수업도 물론 중요하지만 실제로 작품에 들어가 보는 게 최고의 연기 수업이었다.
작품에 몰두하며 청주에 내려 간지 4일째 되는 날, 마지막 씬 촬영은 야외 저녁씬이었다. 잃어버린 아이를 찾으며 많은 생각과 죄책감에 휩싸인채 아이를 마주 하는 엄마가 오열하는 신이었다. 지금도 너무 생생한데. 그때에 오열하는 장면은 내가 정말 이렇게 울다가 탈진하면 어쩌나 싶을 정도로 감정들이 폭발 했었다. 극중인물에 많이 빠져 들어 있었나보다. 그런데 야외 촬영이었고 사람들이 사는 주택가였기에 여러 변수가 있다보니 찰영이 여러번 끊기기도하고 장비문제로 중단 되기도 하면서 촬영이 매우 오랫동안 진행 됐었다. 그러는 동안에도 내 감정을 유지 해야 했다. 그래서 일부러 농담도 안하고 장난도 치지 않으면서 감정을 계속 이어 가기 위해 노력했다.
그런데 하늘도 무심하시지.. 오랫동안 진행 되다 보니 옆에 켜 놓은 조명이 꺼져 버렸다. 그 조명을 다시 키는 상황에서 복구하는데에 시간이 너무 많이 지체 됐었다. 다시 조명 명이 켜지기까지 너무 긴시간이 지체되어서 일까.. 씬을 이어가려고 하는데, 세상에! 중요한 마지막 장면인데, 그 사이 마음 진정이 됐는지 갑자기 감정이 잡히지 않고 더 이상 눈물이 나지 않는 것이다. 눈물이 소진되어서 연기가 되지않자 이번엔 나 때문에 촬영이 중단되었다. 어째서 눈물이 메말랐을까. 스탭들에게 미안한마음과 동시에 계속이러다 촬영 마무리가 너무 걱정되었다.
감독이 다시 감정 잡아보라며 시간을 줬음에도 다시 촬영이 재개되지 않자 내게 왔다. 다 쏟아내고 감정 힐링되신것 같다며 이 상황을 어찌할지 생각끝에 감독은 내게 “차분히 대사 다시 한번 해볼까요?”라고 제안했다. 수긍하고 집중해서 눈감고 다시 대사를 내뱉는순간! 다시 눈물이 왈콱 나오는게 아닌가! “어어어!!!! 지금이야! 지금해요 감독님!”하며 바로 현장으로 걸어갔다. 감독은 스탠바이중이던 스탭들에게 신호를 주며 모두 바로 일사천리로 움직이게 했다. 그렇게 다시 촬영이 재개되고 한큐에 눈물을 펑펑 쏟아내며 마지막씬을 완성했다.
그렇게 박수갈채와 함께 청주에서의 촬영이 마무리 되었다. 하염없이 울었던 마지막장면은 평생 잊지 못할 것 같다. 나의 첫 주연작이자 첫 단편영화. 잠도 못자가며 강행되는 촬영환경에서도 오히려 서로가 더 단단히 뭉쳤다. 그 배역을 맡아 할 수 있음에 행복했다. 비록 음향문제로 미완성이라는 이유로 연기영상을 받지 못했지만, 연기의 맛을 느끼게 해준 그 작품은 그저 내마음 속 1위의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