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필하고 또 어필하는게 배우의 숙명

by shannon

배우라는 직업은, 철판을 깔고 살아내는 일이다.

광고 모델로 활동하는 방법은 광고 에이전시 투어라는 것이 있어, 매해 50여 개의 메이저급 에이전시에 미팅을 다니며 자기소개 영상을 남기러 다니는 거다. 하루하루 발품 팔아 나라는 사람을 보여주면, 일정 기간 동안은 그 데이터를 기반으로 일이 들어오는 구조라, 몸은 좀 수고스러워도 에이전시에서 연락이 오는 확실한 시스템이라는 체감이 있다.


하지만 배우를 시작하고 나서부터는 캐스팅 디렉터를 직접 만나기는커녕, DM, 메일, 카톡으로 ‘나를 소개하는’ 과정을 먼저 거쳐야 했다. 다행히 잘 아는 지인이 준 캐스팅 디렉터 리스트 덕에 메일을 보내며 시작했지만, 현실은 쉽지 않았다. 수신함이 가득 차 메일 발송조차 안 되는 경우도 많았고, 보낸다 한들 열어보는 디렉터들은 거의 절반도 안 되는 것 같았다. 그래서 들은 조언대로 연락처를 알게 되면 먼저 카톡으로 정중히 인사를 드린 뒤, 프로필을 보내도 괜찮겠냐고 묻고 그렇게 허락을 받아 보내거나, 다시 답장을 기다리는 일이 반복됐다. 그러다보니 그 모든 과정이 길고 더디다. 어쩌면 ‘배우라는 직업은 나를 소개하기까지도 참 많은 시간이 필요한 직업’이라는 걸 처음으로 뼈저리게 느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야 했다. 제작사 프로필함에 프로필을 넣으러 직접 찾아간 적도 있다. 상어영화나 OTT같은 작품들은 제작사에서 직접 프로필을 받기도 하기에, 제작사 주소를 찾아가 사무실 앞 프로필 함에 매 프로필을 멓고 오기도 한다. 이미 가득차 있는 프로필들을 보면 이중에 내가 되겠냐 싶기도 하고, 실제로 그렇게 해서 한 번도 연락은 온 적은 없다. 그럼에도 언젠가를 위해 시간 날 때마다 해두는 일. 그것이 배우의 숙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될지 안 될지도 모르는 일에 매번 시간과 마음을 쏟는 것. 혹시나 하는 마음에 희망 하나로 버텨야 하는 것. 그게 배우지망생이 할 수 있는… 이바닥을 살아내는 방법이었다.


한 번은 캐스팅 에이전시 겸 플랫폼 업체에서 아주 유명한 캐스팅 디렉터의 세미나가 열렸는데 운 좋게 당첨되어 직접 강의를 들은 적이 있다. 그분은 말했다. “배우도 영업을 해야 한다”고. 수많은 배우들이 쏟아지는 세상에서, 한 번 메일 보내고 기다리는 걸로는 절대 눈에 띌 수 없다고. 명절마다 선물을 보내라는 말이 아니라, ‘계속 존재감을 알리라’는 것이었다. 한 번 보고 모르겠으면 두 번, 두 번 보고 모르겠으면 세 번 보는 게 이 바닥이라고. 수없이 어필해야 한다고. 그래서 나는 지금도 계속 프로필을 업데이트한다. 연기 영상이 생기면 편집해서 또 보내고, 유튜브에도 올리고, 필요하면 다시 연락도 드리고. 2021년에 연기를 배우기 시작해, 약 3-4년간 천천히, 그러나 꾸준히 어필해왔더니 이제 조금씩, 정말 조금씩 연락이 오기 시작한다.


기회는 언젠가 온다. 중요한 건, 그 기회가 왔을 때 내가 준비되어 있느냐는 것이다. 지금도 나는 내 특기와 취미를 키우고, 무언가 계속 배우고, 새로운 역할을 꿈꾼다. 왜냐하면 배우는 ‘멈추지 않는 사람’만이 살아남을 수 있는 직업이기 때문이다. 이 길은 쉽지 않지만, 그만큼 재미도 있다. 바닥이니까, 지금은 올라갈 일만 남았으니까. 어디까지 갈 수 있을까. 스스로를 시험해보는 이 길이, 나는 아직도 꽤 설렌다. 지금이 43살인데, 73세.. 가능하다면 83세까지도 카메라 앞에 서고 싶다. 계속 내 한계에 도전하면서 꾸준히 어필해가면서. 그게 내가 배우를 계속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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