닫은 귀
분주한 아침, 수화의 방에는 옷과 화장품이 널브러져 있고, 거실 테이블에는 마시다 남은 커피가 담긴 텀블러가 그대로 올려져 있었다. 수화는 대학 졸업 후, 독립해 혼자 산 지 6년이 흘렀다. 본래 외로움을 많이 타는 수화였지만 남자친구와 동거하며 부모님의 간섭으로부터 자유를 만끽하며 지냈다. 하지만 남자친구와 헤어지면서 혼자가 된 수화는 밤마다 베개를 적신 지 한 달이 될 무렵이었다.
오늘도 헛헛한 마음을 안고 지하철을 타고 회사로 향했다. 지하철역과 두 정거장이 떨어진 곳에 회사가 있어 아침에는 지하철에서 버스로 환승해 출근을 했다. 정류장에 도착해 버스를 기다리던 중 같은 팀, 지혜가 빠른 걸음으로 다가오는 것을 보았다.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수화가 수줍게 인사를 건네자 지혜는 덤덤하게 인사하고는 누군가에게 메시지를 보내는 듯 핸드폰을 만지며 버스에 올랐다. 뒤따라 오른 수화는 버스 뒷문 쪽에서 핸드폰만 보는 지혜를 지나 뒷자리에 앉았다. 수화는 지혜가 괜스레 신경 쓰였지만 애써 핸드폰만 보았다.
회사 건물과 가장 가까운 정류장에 내린 둘은 사무실로 향했다. 걸음이 빠른 지혜는 앞서 걸었고, 수화는 뒤에서 천천히 따라 걸었다. 수화가 사무실 가까이 도달할 때쯤 먼저 도착한 정윤과 지혜가 인사를 나누는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수화가 조심스레 사무실로 들어서자 정윤이 인사를 건넸다.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연이어 팀원들이 하나 둘 출근했다. 마주한 그들은 인사말만 나누었고 사무실은 적막이 감돌았다. 직원들은 각자 자신만의 아침 루틴으로 움직이는 듯 했다. 수화는 낯설고 적막한 분위기를 이겨내고자 정윤과 지혜를 초대해 단체 채팅방을 만들었다. 지혜는 귀찮아진 듯한 기색이었고, 정윤은 보기와 다른 수화의 적극적인 행동에 다소 놀랐지만 반가움의 이모티콘을 보냈다.
“타닥타닥”
수화의 온 신경은 업무가 아닌 어색한 사무실 공기였다. 침묵 속에 들리는 각자의 타자 소리와 서로 대화하는 듯 번갈아가며 들리는 엔터 소리에 괜스레 화장실도 한번 다녀왔다.
"하"
수화가 자리에 앉으려던 찰나, 맞은편에 보이는 지혜가 살짝 일그러진 눈썹으로 모니터를 응시하며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어.. 저도 한숨 많이 쉬는데"
첫 출근날에도 느꼈던 터라 이번에는 지혜에게 말을 걸었다. 한숨으로 감정을 표현하는 것이 습관인 수화는 지혜 역시 같을 거라 생각했다. 지혜는 그런 수화를 슬쩍 올려다 보며 고개를 살짝 끄덕이더니 그대로 다시 타자를 치기 시작했다. 대화가 이어지지 않자 수화는 자리에 앉아 연신 핸드폰만 만지작 거렸다. 친구들과 있는 단체 채팅방에 사무실 분위기를 전하는 것에 집중할 뿐이었다.
"수화씨"
"네?"
"잠깐 회의실에서 볼까요."
팀장은 수화를 따로 불러 사무실 이동에 관한 설명을 하였다. 수화가 업무를 할 곳이 관리팀 사무실이 있는 건물, 바로 옆에 붙은 낮은 건물의 영업팀 사무실이고 그곳에 있는 직원들을 도와 업무를 하여야 한다는 것이었다.
"저는 관리팀 아닌가요?"
청천벽력 같은 소식에 울상이 된 표정을 한 수화가 가기 싫다는 의사를 표하였다. 관리팀이지만 영업팀 직원들을 돕는 업무이기에 그 공간에 있어야 협력이 수월하다는 것이 이유였다. 팀장의 이야기에도 수화는 받아들일 수 없었다. 모든 것이 컴퓨터로 이루어지는 세상에, 게다가 행정 업무가 전부인 내가 왜 그 팀 사람들과 가까이 있어야 하는지 받아들일 수 없었고, 마음 속에는 격렬한 거부반응이 일었다. 하지만 팀장은 대표님과 결정이 된 사안이며 가야한다는 말 뿐이었다. 관리팀 팀장과 이야기를 끝낸 수화는 사무실로 돌아왔고, 정윤과 지혜만 남아 점심 메뉴를 고민하고 있었다.
"수화씨, 점심 먹으러 가요. 뭐 먹을래요?"
"어.. 아무거나요."
그늘진 얼굴로 수화는 정윤과 지혜를 따라나섰다.
"수화씨, 무슨 일 있어요? 팀장님이랑 얘기하러 간 거 같던데."
주눅든 수화의 모습에 정윤이 말을 걸었다. 수화는 팀장과 나눈 이동에 관한 소식을 들려주었다. 하지만 정윤은 수화가 채용되기 전부터 직원들에게 그 내용을 들은터라 놀라지 않았다. 다만 격렬하게 속았다는 반응을 하는 수화가 안타까울 뿐이었다. 자리 이동은 다음 주부터 이루어질 예정이며 수화는 상황을 바꿀 방법이 없는지에 대해 토로하였다.
"왜 제가 가야 하는지 모르겠어요. 저를 보내려는 사람이 누군지.."
"아마 그 사무실에서 관리할 것들이 있어서 그걸 할 사람이 필요할 거예요."
"제 업무는 그게 아니잖아요."
"음.. 그 자리 업무가..행정 담당이에요.."
"영업팀 사무실에도 행정 업무 분장이 된 사람이 있던데요."
"거기 직원들이 다 영업을 하시는 분들이라 행정 업무를 잘 모르거든요..그래서 도울 사람을 뽑았던 거라.."
"저는 속았어요! 취업 사기 수준이에요...."
수화는 움츠린 몸으로 억울함을 호소하였다. 정윤 역시 면접 때 수화에게 역할에 대해 상세히 고지하지 않고 채용을 한 것에 대한 관리자들의 문제가 있다고 여겨 그녀의 마음을 어느정도는 이해했다. 지혜 역시 업무에 불만이 있었던 터라 일부 공감은 하였으나 본인처럼 받아들이는 과정이겠거니 하며 큰 동요 없이 이야기를 들어주었다. 그렇게 정윤과 지혜는 수화의 하소연을 들어주는 것으로 마무리되는 듯 했으나 수화의 마음 속에는 '피해자'라는 싹이 좀처럼 죽지를 않았다.
퇴근 시간이 다가오자 다들 부스럭 거리며 나갈 준비를 하였다. 17시가 되자마자 수화는 자리에서 일어나 모두에게 들릴 듯 말 듯한 인사를 공중에 던진 후 사무실을 나섰다. 정윤과 지혜가 따라나서자 인기척을 느낀 수화는 사무실 복도에서 뒤돌아보며 인사를 하였다.
"내일 봬요!"
"내일 봬요~"
수화는 정윤과 지혜가 가는 방향의 반대쪽 출구를 향해 서둘러 떠났다.
"어디 가시나?"
"집에 가는 길은 우리랑 같은 방향 아니야?
"음"
정윤은 서둘러 가는 수화의 뒷모습을 보며 물었고, 지혜는 무언가 불편해 보이는 수화의 모습에 말을 아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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