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소설] 훔친 자존감 #3

경계

by 문화

나른한 금요일, 출근길부터 더위로 진이 빠진 사람들이 에어컨 바람에 땀을 식히며 점심시간만 기다리고 있었다. 사무실에는 각자의 텀블러 속 얼음만이 달그락 거리고 있었다.


"오늘 점심 뭐 먹죠?"


정윤과 지혜, 수화의 단체 채팅창에 메시지가 떴다. 정윤이 단체 채팅창에 점심을 언급하며 점심시간 30분 전임을 알렸다. 지혜는 밥이면 아무거나 좋다는 뜻을 밝혔고 수화는 초밥이 어떻냐는 이야기를 꺼내었다. 정윤 역시 나쁘지 않은 메뉴였기에 정확히 메뉴를 언급한 수화의 의견대로 근처 초밥 가게로 향했다.


"여기 점심시간 한 시간을 꼭 지키나봐요.."


주문한 초밥을 먹으며 수화가 아쉬운 마음을 드러냈다. 딱히 할 일 없이 자리에 앉아 있던 수화는 사무실이 여간 갑갑한 것이 아니었다.


"그런거 같아요. 다들 시간을 철저하게 지키시더라고요"


정윤이 사무실 분위기를 언급하며 어쩔 수 없다는 의사를 표했다. 수화는 자신이 들은 지인의 회사 점심시간을 언급하며 여기 분위기가 너무 삭막하다고 하였다. 정윤과 지혜는 일부 동감하며 맞장구를 쳤다. 직장인들에게 한줄기 빛 같은 점심시간이 숨 돌리는 시간이었기에 누구나 공감하지 않을 수 없었다. 다만 돈을 받고 책임이 지워진 곳에서 주어진 규정을 지키는 것이 의무였기에 그저 볼멘소리하는 직장인의 비애라는 것을 정윤과 지혜는 알고 있었다.


"근데 수화씨 어제 왜 그쪽으로 갔어요?"


지혜는 정윤과 의아하게 생각했던 수화의 퇴근길 방향에 대해 물었다.


"아.."

"약속이 있었어요..."


"불목 보내셨구나! 어디에서 놀았어요? "


예상치 못한 질문에 수화가 말끝을 흐리며 당황스러워하자 정윤은 어색함을 풀려 장난스럽게 받아쳤다. 지혜는 과하게 움츠러든 수화의 반응을 보며 묘한 불편함을 느꼈다. 수화는 약속뿐만 아니라 집에 가는 길 중, 더 편리한 방향이라는 이유도 있었지만 구태여 보태지 않고 때맞춰 생긴 약속으로 거짓은 아닌 답을 하였다. 진의는 숨긴 채 일부의 사실로 회피하는 수화의 대화법이었다. 거짓은 아니었기에 잘못된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정윤과 지혜는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한 손에 들고, 그 옆에 선 수화는 얼음이 갈린 프라푸치노를 들고 사무실을 향해 걸었다.


"다음 주부터 영업팀으로 가신다고요?"


정윤은 회사 건물로 들어서며 수화에게 다시 확인하였다.


"네.. 그래도 저랑 같이 점심 먹어주셔야해요..!"


"그럼요~"


수화는 사무실이 달라져 소외될까 마음속에 있던 말을 얼른 꺼내었다. 남자친구와 헤어진 후, 혼자가 된 외로움이 어쩌면 회사에까지 불안으로 이어진 것이다.


"먼저 들어가세요."


지혜는 화장실에 들리기 위해 정윤과 수화를 먼저 보냈다. 사무실 층의 화장실은 지나는 사람들이 많아 편하게 사용하기 어려워 직원들은 종종 각자만의 아지트 같은 곳을 찾아다니곤 했다. 정윤과 둘이 남은 수화가 기회를 엿보다 궁금했던 질문을 하기 시작했다.


"지혜씨는 계약직이에요?"


"음, 네"


"몇 개월 계약하신 거예요?"


"2년으로 알고 있어요."


"정말요? 알아보니 전에 다른 직원은 11개월 계약했던데"


"...?"


"그럼 퇴직금 나오시겠어요"


"그렇겠죠?"


수화의 연이은 본인과는 관계없는 질문들에 정윤은 의뭉스러웠다. 수화는 그런 정윤의 마음은 눈치채지 못하고 자신이 속거나 손해 보고 있는 것은 없는지 파악하는 데 여념이 없었다. 수화는 그런 모습을 둘 이상 모였을 때는 드러내지 않았다. 철저히 계산되었고 중요한 건 '나'의 이해득실이었다.





"주말 잘 보내세요."


퇴근을 알리듯 정윤이 자리에서 일어나 인사를 하고 나서자 지혜도 뒤이어 사무실을 나섰다. 수화 역시 바로 가방을 챙겨 사무실을 채 벗어나지 못한 정윤과 지혜에게 가볍게 고개를 끄덕인 뒤, 어제와 마찬가지로 반대 방향으로 향했다.


"주말 잘 보내세요"


"네, 다음 주에 봬요."


정윤과 지혜는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다 늦어지는 거 같아 계단을 이용했다. 정윤은 지혜가 없는 틈에 지혜에 관한 이야기를 물어보는 수화의 행동이 거슬려 이야기를 꺼냈다.


"오늘도 약속 있으신가?"


"글쎄요"


"아까 나한테 지혜씨 계약직이냐고 계약기간 물어보더라"


"그걸 왜?"


"몰라, 전에는 그렇게 길게 계약 안 했었대."

"너는 퇴직금 나오냐고 하더라고"


"...?"


"주말 잘 보내~"


"정윤씨도 주말 잘 보내세요~"


지혜는 정윤에게 들은 수화의 질문들이 께름칙했지만 피곤함에 얼른 집에 가고싶은 생각 뿐이었다.




수화는 혼자가 된 후 늘어난 시간적, 마음적 공백에 외로움으로 몸부림치다 친구들에게 만남을 제안했다. 하지만 그들에게 돌아오는 답은 바쁘다는 것이었다. 남자친구와 단짝으로 지내던 탓에 연애기간 동안 친구들에게 소홀해져 이제 와 친구를 찾는 수화가 얄미워 만남을 피한 것이다. 그렇다고 끊어내기에는 아쉬웠던 친구들은 수화를 받아들이는 시간이 필요했다. 수화는 친구들의 거절에 침대에 누워 유튜브를 보며 주말을 보냈다.


'짐도 정리해야 하는데.. 하..'


길었던 연애기간으로 수화의 집에는 남자친구의 흔적들이 가득했다. 세월의 흔적들을 볼 때마다 마음이 울컥했다. 미련이 아닌 끝났다는 마음의 신호였다.




따분한 월요일, 수화는 영업팀 사무실로 출근을 했고 대리와 팀장이 각자의 일정으로 자리를 비워 사무실에는 이과장과 정윤, 지혜뿐이었다. 평소 박대리, 권대리와 점심을 먹던 이과장이 먼저 점심 이야기를 꺼내었다.


"점심 뭐 먹을 거야?"


"음.. 글쎄요?"


정윤이 지혜를 슬쩍 보자 지혜가 머뭇거리다 일어났다.


"아직 못 정했는데 과장님 뭐 드시고 싶으세요?




자연스럽게 이과장과 정윤, 지혜가 점심을 먹기 위해 일층으로 내려갔다. 거기에는 수화가 기다리고 있었다. 정윤이 사무실을 나서며 수화에게 연락해 일층에서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과장 옆으로 정윤과 지혜가 나란히 서고 수화는 느린 걸음으로 뒤따라 걸었다. 정윤이 슬쩍 뒤돌아 보며 수화가 오고 있는지 확인했다. 수화는 자신의 속도로 천천히 따라 걸으며 앞서가는 그들을 바라보았다. 문득 외롭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속도를 내어 그들 곁으로 다가서지 않았다. 나한테 관심이 있었으면 나를 챙겼겠지...




점심을 먹으며 수화의 옮긴 자리가 어떤지, 정리가 되었는지 관심을 보이며 시간을 채웠다. 그들은 당연한 코스로 카페로 자리를 옮겼고, 도착한 순서대로 정윤이 먼저 앉자 지혜가 그 옆에 앉고 과장과 수화가 자연스럽게 나란히 앉았다. 수화는 나란히 앉은 정윤과 지혜를 보다 애꿎은 커피잔만 만지작 거렸다.


"수화씨는 집에 갈 때 어디로 가? 위로 가면 더 빠른가?"


"아.. 네, 관리팀 사무실 쪽에서는 위로 가서 타면 조금 더 빨라요."

"지금 사무실 쪽에서는 내려가서 타는 게 낫더라고요."


수화의 집 위치를 알고 있던 이과장이 먼저 말문을 텄다. 그 대답을 들은 정윤은 반대 방향으로 퇴근하던 이유가 오로지 약속 때문만은 아니었던 것을 알게 되었다. 굳이 정윤과 지혜를 따라 퇴근길을 함께 할 이유가 없었던 것이다. 대수롭지 않게 이야기를 이어나가며 조금 가까워진 듯한 그들은 사사로운 얘기로 열을 올렸다.


"그럼 수화씨는 머리를 안 감아요?"


"안 감는 날도 있는 거죠!"


"네?! 여름에는 더워서 매일 감아야죠! 정윤씨는요?"


"저는 땀이 많아서 하루에 두 번 샤워하면서 감아요"


"봐봐요. 수화씨가 안 씻는 거라고요."


"외국은 며칠씩 안 감기도 해요!"


살짝 언성이 높아진 수화의 모습에 정윤과 지혜가 말을 멈추고 빤히 바라보자 수화는 둘을 번갈아 보며 실체 없는 거슬림이 무엇인지 깨달았다는 듯 또래인 지혜를 향해 손짓을 하며 말을 이었다.


"봐! 이렇게 보는 게 싫어요!"


정윤은 의아했고, 이과장은 그 나이대 친해진 동료들끼리의 대화라고 생각해 그저 웃었다. 수화는 카페를 나서며 그들에게서 앞서 걸었다. 그런 수화의 모습이 지혜는 신경이 쓰이는 듯 바라보았지만 따라가지 않고 정윤과 과장 옆에서 사무실로 향했다.



점심시간이 지난 영업팀 사무실에는 직원들이 모두 외근을 나가 수화 혼자였다. 적적한 수화는 헤드셋으로 노래를 듣기도 하고, 온라인 쇼핑을 하기도 했다. 점심시간에 있었던 마음은 가라앉았고, 정윤에게서 온 메시지에 얼른 답했다. 정윤이 업무 요청할 것이 있어 따로 메신저를 통해 연락을 한 것이다. 수화는 지루하던 차, 혼자 알고 있기에는 아까웠던 이야기를 꺼냈다. 수화 PC의 인수인계 폴더에 있던 내용이었다.


'근데 정윤씨, 왜 정윤씨가 그 일을 해요?'

'원래 지혜씨 업무인 거 같던데'


'네?'


'제가 파일 뒤져봤는데 전에는 지혜씨 자리에 있던 사람이 했더라고요.'


'지금은 업무가 다르게 분장되었어요.'


'이걸 다 정윤씨가 해요? 할 말이 많지만 하지 않겠어요.'


'ㅎㅎ'


정윤은 수화에 대한 찝찝한 마음이 들기 시작했다. 몇 번 본 수화의 행동이 영 마음에 남아 거리를 지키는 것이 최선이었다. 그런 정윤의 마음도 모른 채 수화는 후련해 보였다.


'오늘 퇴근할 때 같이 가요!'


'그래요'


수화는 정윤과 대화를 마무리하며 퇴근길에 함께 할 것을 전했다. 정윤은 근무하는 사무실이 달라져 건물 앞에서 인사를 나누는 것이 전부라 필요를 느끼지는 못했지만 먼저 가도 된다거나 자신의 생각을 전달하지는 않았다.



수화는 정윤과 얘기하면서 지혜와도 메신저로 업무 이야기를 나누었다. 수화는 자신의 업무라고 느껴지지 않는 것에 대해 불편해했다.


'이건 그 직원들이 직접 가야 하지 않아요?'

'이걸 제가 해요?'


수화의 의견에 지혜는 업무 영역을 인지시키며 답답해했다. 지혜는 수화가 어려워하는 것들을 세세히 알려주는 편이라 수화는 지혜의 요청을 외면할 수 없어 그렇게 둘은 하나씩 주고받았다. 매뉴얼을 봐도 이해하기 어려운 말들과 하나하나 묻기에는 무서웠던 상사들보다는 지혜의 도움이 수화에게는 가장 필요했기 때문이다.

수화의 이해득실이 형성되었다.



"수화씨!"


회사 건물을 등지고 서 있는 수화를 발견한 정윤이 어깨를 살짝 만지며 불렀다.


"안녕하세요!"


수화가 해맑게 돌아보며 정윤과 지혜에게 인사했다. 지혜는 업무가 끝난 시간까지 함께 하는 것이 아직은 불편하다는 듯한 표정이었지만 어차피 앞으로도 같이 볼 팀원이었기에 받아들였다.


"안녕히 가세요!"


정윤은 지혜, 수화와 가는 방향이 달라지는 곳에서 인사를 하고 떠났다. 지혜와 수화는 정류장으로 걸으며 이야기를 나누었다. 수화는 감정적으로 얘기를 나누게 되는 지혜와 부쩍 가까워졌다고 느꼈고, 불만이었던 자리 이동이 대표 단독 생각이라는 것을 토로했다. 지혜는 수화가 여전히 이동에 대한 불만을 품고 있고 대표가 문제라는 얘기를 들으면서 대표의 지시가 잘못된 것인가에 대해 의문을 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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