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서울 바운더리 인터뷰 07
길을 잘 찾지 못하는 이들에게 골목은 쥐약이다. 지도를 보고 있지만, 목적지는 찾을 수 없고, 빙글빙글 한 곳만 맴돌게 된다. 그들에겐 격자로 된 네모반듯한 길을 더욱 선호할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만난 조아란은 격자보단 꼬불꼬불한 골목길을 더 좋아한다. 그에게 골목은 미지의 세계이자 탐구의 대상이고 새로운 곳을 발견하게 되는 보물창고와 같다. 아란은 “반듯한 골목보다 골목골목 뭐가 있는지 모르는 상태에서 다니는 걸 좋아한다”고 말한다. 그에게 을지로와 익선동의 골목길은 서울을 대변하는 이미지가 되기도 한다. ‘진짜’ 공간을 찾아다니고 경험하는 것을 즐기는 아란은 서울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아란의 바운더리 맵
진짜-서울 웹사이트에서 지도를 움직이며 관찰해보세요.
https://jinjja-seoul.com/boundary/person/386
서울에 산 지 10년이 넘었다고 들었어요. 처음 서울에 왔을 때, 어디서 살았나요?
원래 수원에 살다가, 대학교를 서울에 있는 곳에 다니면서부터 서울에 살게 되었어요. 대학교 1학년 때는 기숙사에 살다가 2학년 때부터 언니와 함께 학교 근처에서 자취하게 되었어요. 대학교가 청량리에 있어서, 청량리, 회기에서 살았어요. 딱 한 번 이태원으로 이사한 적이 있어요.
왜 이태원으로 이사를 하게 되었나요?
서울에서 자취해서 좋은 점은 원하는 곳 어디든지 살 수 있어요. 대학교 내내 청량리에서 살아서, 다른 동네에 살고 싶었어요. 마침 졸업을 하고 회사에 다니면서, 언니와 함께 출퇴근이 편한 곳으로 이사하게 되었어요. 언니는 상왕십리에 직장이 있고, 저는 효창공원에 있어서, 둘 다 출퇴근이 편리한 동묘, 신당, 이태원을 중심으로 집을 알아봤어요.
저는 돌아다니는 것을 좋아해서, 서울 여기저기를 많이 다녀봤는데, 이상하게 이태원은 미지의 영역이었어요. 다른 지역은 머릿속에서 지도가 연결되어 있는데, 이태원은 그렇지 않았어요. 그래서 이질적이라고 느꼈고, 이태원이란 동네가 궁금했어요. 그래서 이태원을 선택하게 되었죠. 제가 살았던 이태원은 재개발을 앞둔 곳이라 오래된 동네였어요. 근데 이태원역에서 집까지 오는 길이 항상 다이내믹했어요. 인종도 다르고, 소수자들도 있고, 할로윈이 되면 엄청난 인파를 뚫어야 집에 갈 수 있었어요. 그럴 때마다 내가 ‘이태원에 살고 있구나’를 느낄 수 있었어요.
이태원에 살기 전과 후 달라진 점이 있나요?
앞서 이야기한 대로 이태원은 원래 미지의 동네였는데, 살면서 이태원의 속속들이 다 알게 되었어요. 이태원에 살면서 로컬 큐레이터로 활동했어요. 로컬 큐레이터는 한 지역을 정해서, 그곳의 스폿들을 다녀보고, 소개하는 글을 온라인에 올려야 했어요. 그때 평일 밤이나 주말에 새로운 곳이나 이태원의 유명한 곳들을 많이 다녔어요. 그렇게 다니다 보니 이태원이 한편으로는 ‘속 빈 강정’ 같더라고요. 사는 사람들을 위한 곳보다는 이태원을 찾는 사람들의 시선을 사로잡아야 해서 메뉴나 인테리어에 더 신경을 쓰는 것 같았어요.
살다 보니 이태원의 특색을 만든 것이 소수자라는 생각이 더 들었어요. 여러 나라의 사람들과 성 소수자들이 몰려들면서 그들만의 문화가 이태원을 만들었던 것 같아요. 하지만 우사단로를 포함해 한남동 일대가 재개발이 시작되면서 점점 그런 곳들이 사라지게 되는 것 같아서 아쉬워요. 이태원에 살면서 쉽게 경험하지 못했던 다양한 문화들을 접하게 되었어요. 경험의 폭이 넓어진 것 같아요.
이태원에 살다가 다시 청량리로 이사하게 되었는데, 다시 돌아오니 좋은 점이 있나요?
일단은 익숙함이 제일 큰 것 같아요. 그리고 이태원에 살 때와 대비되는 것은 엄청나게 조용하다는 것이에요. 특히 제가 지금 사는 곳은 차가 들어올 수 없는 골목 안쪽이라, 차 소리도 하나도 안 나고, 새소리와 발걸음 소리만 나요.
만약에 또 한 번의 이사를 하게 되면 살아보고 싶은 동네가 있나요?
망원에 살아보고 싶어요. 망원은 시장과 공원이 근거리에 있어서 좋은 것 같아요. 특히 시장이 활성화되어 있어서 구경하는 재미가 있는 것 같아요.
집을 선택할 때 중요하게 생각한 부분이 있나요?
공원이 가까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많이 해요. 산책하거나, 바람을 쐴 수 있는 공간이 있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
제가 효창공원 근처에 있는 회사에 다녔어요. 집 외에 많은 시간을 보낸 곳이죠. 처음 회사가 있는 효창공원에 갔을 때, 마을버스를 타고 만리시장길을 따라 올라가는데, 마치 시골 같았어요. 사무실에 들어서면 효창공원이 바로 보였어요. 효창공원은 서울에 있는 공원 중에서 가장 좋아하는 곳이에요. 효창공원은 경사지 전체에 있어서 그런지 야생미가 느껴졌어요. 가꾸어지지 않은 자연스러움을 느낄 수 있었죠. 사무실이 공원에 바로 면해 있어서, 점심시간에 산책도 하고, 도시락을 싸와서 먹기도 했어요. 정말 가까이 있어서, 일하다가 스트레스를 받으면 잠시 쉬기도 했죠. 일종의 도피처 같은 곳이었죠. 그러다가 회사가 더 넓고, 교통이 편한 곳으로 이사하게 되었어요. 전 사무실보다 훨씬 넓어졌는데도 불구하고 답답한 느낌이 들었어요. 교통은 편리해졌지만, 주변에 쉴 수 있는 공간이 전혀 없었어요. 그때 사람이 공간에서 시간을 보낼 때, 넓은 면적만 중요한 것이 아니라 공원과 같은 자연환경을 가까이 두는 것이 삶의 질에 있어서 큰 영향을 준다는 것을 깨달았어요. 그때부터 집 근처에도 공원이 있었으면 하는 생각을 많이 하게 된 것 같아요.
서울에 살기 전에 서울에 와본 적이 있나요?
가끔 가족들과 연극을 보러 오기도 하고, 행사가 있을 때 서울에 왔어요. 가장 인상이 깊었던 것은 남산타워를 갔을 때였어요. 친척 결혼식 때문에 서울에 왔다가 부모님의 제안으로 남산타워를 가게 되었어요. 남산에 올라가서, 엘리베이터를 타고 남산타워에 올라갔는데, 해가 진 야경을 보고 기분이 너무 좋았어요. 사실 개인적으로 야경에서 감흥을 잘 느끼지 못하는데, 그때 기억이 강렬하게 남았어요. 나중에 꼭 서울에 오면 다시 와야지 생각했어요. 남산타워가 랜드마크여서 그런지 남산타워는 제가 서울에 있다는 것을 느끼게 하는 상징적인 곳인 것 같아요.
남산타워는 가족과 같이 갔던 강렬한 기억의 서울이라면, 처음으로 자발적으로 갔던 곳은 홍대예요. 한참 홍대에 대한 환상을 열심히 키웠던 때였어요. 진학하고 싶은 학교를 적을 때도 홍대 건축학과를 쓰고, 틈틈이 홍대가 어떤 학교인지 찾아보고, 홍대 주변에 무엇이 있는지 검색해 봤어요. ‘홍대 걷고 싶은 거리’라고 해서 만들어진 지도가 있었는데, 그걸 뽑아서 메모장에 붙여 놓고, 가고 싶은 곳을 정해서 친구와 같이 왔어요. 마치 대학생이 된 것처럼 카페에 가서 디저트도 먹고, 작은 가게들도 구경하고, 홍대 안에도 들어가서 강의실 구경도 했어요. 누가 뭐라고 하는 것도 아닌데, 괜히 눈치를 보면서 다녔던 게 기억이 나요.
홍대에 가서 좋았던 점이 있나요?
지금은 수원에도 예쁜 카페나 볼거리가 많이 생기긴 했지만, 그때만 해도 예쁜 카페나 유명한 곳은 서울에만 있었어요. 그래서인지 수원에서 친구들이랑 경험할 수 있는 것과는 많이 다르게 느껴졌어요. 생소한 경험이었죠. 처음이기도 하고 대학생 생활에 대한 로망이 있었던 것 같아요. 나중에 대학교에 가면 예쁜 카페에서 디저트도 먹고, 친구들이랑 구경도 하겠구나라고 생각했어요.
서울에 살면서 고등학생 때 로망처럼 생각했던 부분들이 충족되었나요?
대학교 1~2학년 때까지는 많이 충족되었던 것 같아요. 그때 많이 다니기도 했어요. 하지만 지금은 로망 같은 게 많이 소진되고 신선함이 떨어진 것 같아요.
서울 이곳저곳을 많이 다니는 것 같아요. 어떤 공간을 볼 때 가고 싶다고 느끼나요?
20살 때 처음 서울 왔을 때와 지금 조금 달라진 것 같아요. 좀 더 기준이 세밀해지고 좁아졌어요. 지금은 ‘진짜’에 초점을 맞추는 것 같아요. 진짜라는 단어가 많은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 것 같은데, 제가 생각하는 진짜는 팬시한 공간은 아니에요. 큐레이팅이 잘 되어서 진짜의 느낌이 날 수도 있고, 거칠고, 정제되지 않은 곳도 있는데, 그런 공간을 찾아다니는 것 같아요.
가고 싶은 공간뿐만 아니라 집에서도 ‘진짜’라는 요소가 어느 정도 반영되는 것 같아요. 아파트나 새로 지은 집보다는 오래된 집을 더 선호해요. 오래된 집은 새로 지은 집에서 나오지 않는 구조로 되어 있기도 하고, 리모델링하는 과정에서 덧붙여지거나, 기능이 달라지는 부분이 있어요. 그런 요소들을 제가 어떻게 활용할지 고민하면서 저만의 용도를 찾아내는 게 재미있는 것 같아요. 딱 한 번 신축 원룸에 살았던 적이 있어요. 따뜻하고 벌레도 없어서 좋았는데, 너무 좁았어요. 그런 것보다는 오래되었지만, 고쳐서 넓게 쓸 수 있는 곳이 좋은 것 같아요.
일곱 개의 마커가 대부분 강북에 있어요. 일곱 개의 포인트를 찍을 때 중요하게 생각했던 부분이 무엇인가요?
직업상 지도를 많이 보기 때문에, 서울의 끝과 끝을 지리적으로 인지하고 있어요. 일곱 개의 포인트는 제가 좋아하는 곳, 인상이 깊게 남은 곳을 찍었어요. 저는 강남보다는 강북을 더 선호하는 것 같아요. 강남처럼 반듯한 골목보다는 골목골목 뭐가 있는지 모르는 상태에서 다니는 걸 좋아해요. 강남은 큰 건물들이 많아서 그런지 주변을 탐색하는 느낌이 강북보다는 덜한 것 같아요. 목적지를 찍고 가서 볼일이 보는 느낌인 거죠.
유일하게 제가 남쪽의 찍은 포인트가 서래마을이에요. 제가 겪은 최초의 상류문화 동네인 것 같아요. 친한 친구가 서래마을에 살아서, 스무 살 때 그 동네에 자주 갔어요. 카페나 상점에서 사람들을 보면 엄청 여유로운 느낌을 받았어요. 파는 메뉴도 그렇고, 상점에 가도 고급품인 것들이 많았어요. 압구정이나 청담과 달리 연희동의 강남 버전 같은 느낌이었어요. 여유로운 주택가에 실제 사는 사람들도 많고, 놀이터, 공원 등이 잘 조성되어 있었어요. 아마도 서양의 문화가 들어가서 그런 것 같아요. 한국에 있지만 외국에 있는 느낌이었어요. 종로나 을지로와 강하게 대비되는 곳 중 하나였죠.
서울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가 있나요?
제가 생각했을 때 가장 서울스러운 동네는 익선동과 을지로의 좁은 골목이에요. 두 지역은 주거지역과 공업지역으로 전혀 다른 동네이지만, 좁은 골목길에 건물들이 모여 있는 느낌이 비슷하게 보여요. 골목이 똑바르지 않고, 꼬불꼬불 이어진 것이 좋은 것 같아요. 과거의 모습을 가지면서 헤매는 듯이 골목골목 돌아다니는 경험이 재미있어요.
진짜-서울 인터뷰에 참여해보니 어떤가요?
대학교에서 리서치하면서 서울을 조사하거나, 특정 지역의 주변을 탐색하는 일은 많았어요. 하지만 ‘진짜-서울’은 전반적인 지역에 대한 탐구 혹은 서울에 대한 이미지를 그림으로 그려야 하므로 좀 더 이미지화해서 생각해볼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진짜-서울’을 하면서 느꼈던 것은 개인이 가진 단편적인 기억을 소환하면서 비교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나랑 같은 점을 생각하는구나, 이런 곳을 좋아하는구나 등을 통해서 새롭게 얻을 만한 견해가 있었어요. 다른 인터뷰이들도 그랬지만, 서울을 한 줄로 정의할 수 없다는 것도 새삼 깨달았어요.
서울사람이라고 생각하나요?
네, 저는 서울사람인 것 같아요. 일단 서류상에도 서울로 되어 있고, 누가 서울에 대해 물어보면 대답할 수 있어요. 그리고 서울에 좋아하는 장소들이 생겼어요. 동시에 수원에서 태어나고 자랐기 때문에 수원사람이기도 해요. 요즘에는 수원에 있는 부모님 집에 가면, 내 집이 아닌 것 같고, 오래 머물지 못하겠더라고요.
에디터 공을채 / 일러스트레이터 조아란
about
진짜-서울은 사람들의 서울을 모으고 기록하는 크리에이티브 프로젝트입니다. 웹사이트에서 누구나 참여할 수 있는 '바운더리 맵'은 각자의 서울에 대한 기억을 더듬어 7개의 마커로 시각화된 나만의 지도를 만들 수 있습니다. 지금 보고 계신 브런치에 발행되는 '진짜=서울 인터뷰 시리즈'는 바운더리 맵을 만들어 본 분들을 대상으로 지도에서는 보여줄 수 없었다. 각자의 서울에 대한 이야기를 인터뷰 형식으로 풀어냅니다.
진짜-서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