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그
다른 사람들은 의문을 가지지만 나에겐 소중한 물건들이 있다. 누군가에겐 물건일 수도 있고, 다른 누군가에겐 생명체일 수도 있고. 여기서 '생명체'라고 칭하는 이유는 사람은 아닌 반려동물인 경우를 말하는 것이다. 누군가에겐 강아지일 수도, 자동차 일수도, 머그컵 일 수도 그리고 향수일 수도. 몇 해 전에 개봉한 키아누 리브스 주연의 영화 '존 윅'에서의 주인공 존에게는 강아지와 자동차였다. 강아지는 왜 그렇게 그에게 소중한지에 대한 설명이 나오긴 하지만 자동차에 대한 설명은 나오질 않는다. 다만 그와 그의 죽은 아내와의 대화에서 그가 자동차를 얼마나 소중하게 여기는지를 유추해 볼 수 있을 뿐. 극 중에서 그의 강아지를 죽이고 자동차를 훔친 한 마피아 조직의 아들로 인해서 그 마피아 조직은 전멸하게 된다. 영화 중 마피아 보스의 대사로도 나오고 영화를 보고 나서 소위 말하는 개연성이나 논리에 집착하는 사람들은 '개 때문에?'라는 의문을 가지게 된다. 하지만 누군가에겐 그런 존재 혹은 물건이 살아가는 힘이 되기도 한다. 오늘 리뷰할 영화 '피그'에서도 그렇다. 이 영화에서 그런 존재는 제목이 스포일러이기도 하다. 바로 돼지이다. 서울 같은 대도시에서는 거의 불가능하지만 돼지는 대단히 훌륭한 반려동물로 알려져 있다. 똑똑하고 사람 말도 잘 따르고. 하지만 이 영화의 주인공에게 '그녀'의 존재는 대단히 각별하다. 내가 왜 그 돼지를 '그녀'라고 칭하는지는 영화를 보게 되면 알게 될 것이다. 영화를 본 사람들은 '존 윅'의 시작과 비슷한 플롯으로 인해 '존 윅'과 많이 비교해서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있다. 시작은 비슷하지만 완전 다른 영화라고. 하지만 영화를 보고 난 나의 생각은 좀 달랐다. '존 윅'과 대단히 닮아 있는 영화라고.
주인공은 니콜라스 케이지가 연기를 한다. '로빈'이라는 이름의 남자를 연기하며 로빈은 숲 속에서 은둔생활을 하면서 한 마리 돼지와 함께 생활을 한다. 그는 왜 숲 속에서 은둔생활을 하는지에 대한 이유는 영화를 보다 보면 나오긴 하지만 명확하게 설명되진 않는다. 암튼, 그는 그의 돼지와 함께 숲 속에서 트러플 버섯을 채집하면서 살아간다. 그의 돼지는 최상급 트러플 버섯을 찾는 능력이 있는 능력자 돼지로 나온다. 그것도 그럴 것이 돼지는 후각이 대단히 발달한 동물이기도 하다. 그렇게 채집한 트러플 버섯을 도시에 사는-극 중에선 포틀랜드-트러플 바이어에게 넘기고 숲에서 생활할 생필품들을 받아서 생활을 한다. 그러던 중 '존 윅'의 그것과 비슷하게 괴한들의 침입으로 돼지가 납치 되게 되고 그는 그의 돼지를 찾기 위해서 다시금 도시로 내려오게 된다. 그러면서 그가 도시에서 어떤 삶을 살았었고 그의 존재에 대해 조금씩 밝혀지게 된다.
영화가 전체적으로 어두운 느낌이다. 내용이 어두운 부분도 없지 않지만 그냥 화면 자체가 어둡다. 숲에서도 자연광이 거의 없게 촬영되어 그렇고 도시에서도 주로 밤 혹은 흐린 날이 대부분이라서 더욱 그렇다. 하지만 영화를 관통하고 있는 메시지를 전달하기에는 전체적으로 어두운 설정이 더 잘 어울리는 것 같긴 하다.
이 영화를 쓰고 연출한 '마이클 사노스키'의 첫 번째 작품인데 데뷔작치고 상당히 훌륭한 작품을 만들어 냈다. 이런 것이 할리우드의 힘인 거 같다. 어디서 저런 배우가 나왔지? 혹은 어디서 저런 괴물 같은 감독이 나왔지?라고 하는 의문이 계속 드는 곳이니 말이다.
영화가 전체적으로 어둡다.
위에서 언급했듯이 내용이 아니라 그냥 실제로 어둡다.
영화의 개연성에 집착하는 사람들에겐 추천하지 않는다.
이 영화는 미국의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이 추천하기도 한 영화이기도 한다. 그는 항상 연말에 책 몇 권과 영화 몇 편을 추천한다. 그가 추천한다고 해서 모두 훌륭하다고 할 순 없지만 그가 추천한 몇 권의 책과 영화를 본 나로서는 저마다 추천할 만한 이유가 있다고 여겨지는 작품들이었다. 그런 것을 제쳐두고라도 이 영화는 꽤나 볼만하다. 그중 가장 큰 이유는 역시 니콜라스 케이지의 연기력일 것이다. 이 영화가 개봉하고 '존 윅'과 비교하는 리뷰 다음으로 많았던 리뷰가 니콜라스 케이지의 연기력에 대한 이야기였다. 그의 연기가 놀랍다는 그런 평가들. 하지만 그는 과거에도 연기를 대단히 잘하는 배우였다. 중간에 작품 선택에 있어서 조금의 실수와 그와 그의 전 아내 그리고 현 아내를 둘러싼 가십들, 그리고 파산과 관련한 기사들이 우리의 머릿속에 너무 크게 자리 잡고 있을 뿐. 그는 언제나 연기를 잘하는 배우였다. 연기를 잘 못했던 배우가 잘해지는 경우는 종종 있다. 하지만 연기를 잘했던 배우가 못해지는 경우는 거의 없다. 이 말을 확인해 보고 싶으면 그에게 오스카를 안겨 줬던 'Leaving Las Vegas' 보길 바란다. 그 영화에서 그의 연기는 그 사람 그 자체이기에.
처음에 언급했던 이 영화가 '존 윅'과 닮아 있다는 것은 '존 윅'에서 존이 그러했듯이 이 영화에서도 로빈은 본인의 돼지를 찾기 위해서 본인이 가장 잘하는 기술을 이용해서 상대를 무력화시킨다. 그런 기술이 존에게는 살상 기술이었을 뿐. 그리고 로빈이 가지고 있는 기술은 어찌 보면 살상 기술보다 더욱 치명적이게 사람을 무너뜨린다. 이런 의미에서 두 영화는 그리고 두 주인공은 대단히 닮아 있다. 추가적으로 별로 중요하지 않은 것이지만 두 영화의 주인공들 모두 그 업계에서 어마 무시할 정도의 영향력을 가지고 있었다는 점, 그래서 그의 이름 혹은 그의 얼굴과 봐도 그 업계의 모든 사람들이 무서움과 존경을 나타낸다는 점.
이 영화는 그렇게 길지 않은 러닝 타임 동안 꽤나 많은 묵직한 메시지들을 담고 있다. 현재 나는 어떤 사람이고, 나는 어떤 것을 좋아하며,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라는 '나'에 대한 탐구를 하고 있는 사람들에겐 한번 보길 권하는 영화이다. 보고 나면 더욱 혼란스러울 수도 있다. 하지만 인생은 원래 혼란스럽고 내가 살고 있는 세상 역시 대단히 혼란스럽다. 본인의 이권때문에 러시아라는 미개한 국가는 21세기에 전쟁을 일으키고 다른 서방 강대국이라 불리는 국가들은 본인들의 이권과는 조금 거리가 있기에 말로만 규탄하고 경제적 제재만 실시할 뿐 어떠한 행동도 하고 있지 않으니. 중동에서 본인들의 이권이 걸려 있는 전쟁엔 잘도 참전하면서 말이다. 이런 세상 속에서 내가 나로서 오롯이 서 있을 수 있다면 그래도 조금은 세파에 덜 흔들리지 않을까?라는 생각으로.
마지막으로, 이 영화를 함께 보고 싶었던 사람이 있었는데 지금은 그럴 수 없는 상황이다. 하지만 그 사람도 꼭 이 영화를 봤으면 하는 바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