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철수의 음악캠프
어릴 때부터 티브이를 보는 것보다는 라디오를 들으면서 책을 보는 것을 더 좋아했다. 좀 더 정확하게는 만화책을 보는 것을 좋아했다. 라디오 dj들이 종종 방송에서 라디오의 장점으로 라디오를 들으면서 다른 일을 할 수 있는 점을 꼽지만 독서나 공부는 아닌 것 같다. 생각해 보면 티브이 보는 것보다 라디오 들으면서 만화책 보는 것이 더 좋아서 선호한 건 아닌 것 같다. 티브이를 보고 앉아 있거나 누워 있으면 당연히 따라오는 '공부해라' 혹은 '언제까지 놀 거냐?'라는 잔소리를 듣기 싫어서 다른 선택지를 찾은 것 같다. 그리고 난 그때도 그렇고 지금도 그렇고 라디오를 주로 책상 혹은 소파에 앉아서 듣기 때문에. 그럼 적어도 책상에 앉아서 무언가를 보면서 라디오를 듣고 있으면 적어도 공부하는 것처럼은 보이지 않아도 티브이를 보면서 놀고 있는 것처럼은 보이지 않기 때문에. 그렇게 중고등학교 때 듣기 시작했던 라디오를 지금 현재도 대단히 꾸준히 듣고 있다. 내가 중고등학교 다닐 당시-1990년대-에는 라디오가 대단히 영향력 있고 중요한 매체 중 하나였다. 그 당시에는 라디오를 듣는다고 하면 전혀 이상하지 않았었다. 하지만 지금 2022년의 라디오의 영향력은 과거의 그것과는 많이 다르다. 지금 누군가가 내가 이어폰으로 무슨 음악을 듣고 있냐고 물을 때 내가 항상 라디오를 듣고 있다고 하면 조금은 신기하게 보는 모습을 종종 마주하게 된다. 그만큼 라디오를 듣는 행위는 나의 하루의 대단히 중요한 루틴으로 자리 잡았다. 아침에 출근을 준비하면서, 그리고 퇴근을 하고 집에 가거나 운동을 할 때, 그리고 잠들기 전에 하루를 정리하면서. 그때마다 항상 라디오를 듣는다. 그중 오늘은 타의로 내가 가장 오래 듣고 있는, 내가 퇴근할 때 혹은 퇴근하고 운동할 때 듣는 라디오를 리뷰해 보도록 하겠다. 그 프로그램은 '배철수의 음악캠프'(이하 '배캠')이다.
MBC fm4u (91.9 mhz, 서울/경기 기준)에서 18:00 - 20:00까지 방송하는 팝 전문 프로그램이다. 프로그램명에서 알 수 있듯이 dj는 배철수 dj이다. 1990년 3월부터 시작해서 올해로 32년째 방송 중이며 다음 달이면 만으로도 32주년이 된다. '음악캠프'가 라디오 역사상 가장 오래된 프로그램은 아니다. 그리고 배철수 dj 역시 dj를 가장 오래 한 dj도 아니다. 하지만 '배철수의 음악캠프'는 가장 오래된 프로그램이다. 즉, 진행자가 교체 없이 가장 오래 지속된 프로그램이다. 그것 하나 만으로도 충분히 대단한 프로그램이라고 인정할 수밖에 없다. 배철수 dj 역시 30대 후반에 시작을 해서 지금은 70세가 되었으니 말이다. 나 역시 10대 때부터 틈틈이 듣기 시작은 했지만 20대 중반, 그러니까 대학을 졸업하고 취직을 준비하던 백수 일 때부터 본격적으로 듣기 시작을 했으니 나 역시 꾸준히 들은 기간만 10년이 훌쩍 넘었다. 팝 프로그램이다 보니 가요 혹은 한국 가수의 노래가 방송에서 나오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10여 년 전에 싸이의 강남스타일이 빌보드 싱글차트 2위를 했을 당시에 국내 가수의 노래가 배캠에서 나온 것이 화제가 될 정도였으니. 그러다 BTS의 노래들이 빌보드 싱글차트에서 1위를 하면서 자주 나오게 되었고 지금도 신청을 하게 되면 배캠에서 들을 수 있다. 많은 팝스타들이 내한을 하게 되면 배캠에 출연을 하고 있으며 국내 뮤지션들, 특히 밴드를 하는 사람들에겐 배캠의 출연은 그들의 가장 큰 영예 중 하나로 여기기까지 한다. 그것은 배철수 dj가 과거에 밴드 출신이기에 그럴 수도 있지만 후배들에게 '배철수'라는 사람이 가지는 상징성이기도 하다.
매일 코너가 30분으로 대단히 짧다.
개인적으로 화요일 매일 코너를 듣지 않는다.
게스트를 개인적으로 별로 좋아하지 않는 이유에서
목요일 매일 코너 출연자인 임진모 평론가와의 티격태격이 가끔 도가 지나칠 때가 있어 듣기 불편할 때가 있다.
초대손님으로 나오는 사람에게 하는 말 중 가끔은 뜨악(?) 하는 말들이 있다.
언제까지 '배캠'이 유지될지는 모르겠다. 난 개인적으로는 30주년이 될 때 그만두시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하긴 했었다. 하지만 제작진들이 꽤나 많이 만류했을 것이라 짐작이 된다. 하지만 이제는 슬슬 '배철수의 음악캠프'라는 거의 고유명사화되어 버린 이름에서 '음악캠프'만 남고 바뀔 날을 기다려야 하는 상황이긴 하다. 설사 당장 다음 달 32주년에 그만두신다고 해도 엄청 많이 서운하겠지만 별수 없긴 하다. 매일 같은 시간에 생방송을 30여 년 동안 해 왔다는 건으로도 충분히 대단한 일이기에. 여기에서 난 라디오의 매력이 있는 것 같다. 나는 실제로 배철수 dj를 멀리서 한번 본 경험만 있을 뿐 가까이에서 만나 보거나 대화를 나눠 본 적도 없다. 그건 내가 들어왔던 모든 라디오 dj들도 마찬가지이다. 하지만 이상하리 만큼 친근감을 넘어 친밀함까지 느껴진다. 라디오 dj들에게. 이건 나뿐만 아니라 라디오를 즐겨 듣는 소위 '헤비 리스너'들은 모두 공감하는 이야기 일 것이다. 난 다른 프로그램은 몰라도 '배캠'은 휴가를 가서도 듣는 편이다. 그곳이 국내이던, 해외이던 상관없이. 그렇게 나의 생활의 일부분이 되어 버렸기 때문에 배철수 dj의 하차 소식은 대단히 아쉬울 것 같긴 하다.
가끔 라디오를 듣는 이유에 대해 묻는 사람들이 있다. 난 그럴 때마다 '디지털과 아날로그의 밸런스를 맞추기 위해'라는 아주 그럴듯하고 있어 보이는 답을 준비해 두고 있다. 지금은 비록 라디오를 스마트폰 앱으로 듣고 있어서 정확하게는 디지털 디바이스 기반으로 듣고는 있지만. 라디오에는 여전히 사람들의 사는 이야기와 음악이 존재하기 때문에. 사람의 이야기는 여전히 아날로그이기 때문에.
가끔 배캠을 듣는 나의 친구 중 한 명에게 문자가 오곤 한다. '그 노래 네가 신청한 거냐? 니 뒷번호인데'
이런 문자를 더 오래 받고 싶은 마음이긴 하다. 배캠을 마치시는 그날까지 항상 건강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