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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런남자 Aug 11. 2023

그런 동네

031

근처에 미군부대가 있어서 과거엔 주요 고객들이 미군들과 그들의 가족들이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서울 안에서도 외국음식과 문화를 접할 수 있는 곳들이 많이 생기고 성업을 이룬 곳이다. 아마 스테이크, 햄버거를 비롯하여 케밥, 타코 등의 음식과 재즈바, pub 같은 공간이 가장 먼저, 많이 보급된 동네가 아닌 가 생각이 든다. 그와 동시에 서울에서 유일하고-는 정확하게 잘 모르겠다-가장 큰 이슬람 사원이 있어서 이슬람교를 믿는 사람들 역시 대단히 많이 왕래를 한다. 게다가 많은 대사관들이 있다 보니 더더욱. 그렇게 이 동네는 이국적이라는-지금은 대단히 고리타분한 단어이지만 이 보다 잘 설명할 수는 없을-말에 정확하게 들어맞게 발전을 하였다. 미군이 기지를 이전했음에도 불구하고 평일에 가면 여전히 한국 사람보다는 외국인들이 더 많다. 명동처럼 외국인 관광객이 많다기보다는 이곳에 거주하고 있는 외국인들이 많다. 어찌 보면 평일 이곳에 돌아다니는 한국인들이 대부분 다른 동네 사람인 경우가 많다.


그 이후로는 모두가 알다시피 이런 문화와 먹거리를 즐기기 위한 젊은이들이 유흥을 즐기는 곳으로 변모하였고. 10여 년 전에 발표된 이곳을 주제로 한 유행가 가사에 나오는 것처럼 말이다. 강남과 홍대는 사람이 너무 많고 신촌은 뭔가 허전할 때 찾는 곳, 바로 그런 곳이 되었다. 나 역시 30대 초반에 이곳에서 대단히 잦은 빈도로 주말 밤을 즐겼던 기억이 선명하다.


이곳은 이 동네를 가로지르는 도로를 기준으로 북쪽과 남쪽의 모습이 사뭇 다르다. 북쪽은 여전히 대기업 총수 일가이며 유명 연예인들의 대저택들이 들어서 있다. 최근 BTS의 멤버 중 한 명 역시 이곳에 집을 짓고 있다는 소식을 들을 수 있었다. 대부분의 대사관들 역시 북쪽에 위치해 있으며 이 길을 이 동네의 기준 높이로 봤을 때 남산 때문에 북쪽은 모두 오르막길로 구성이 되어 있다.


이에 반해 남쪽은 여러 상업시설들과 이곳에 거주하는 외국인들이 많이 거주하고 있다. 위에서 언급한 이슬람 사원 역시 남쪽에 위치해 있다. 길 하나 건넜을 뿐인데 상업시설들의 분위기 역시 대단히 많은 차이를 보인다. 또한 북쪽과 다르게 해당 도로를 기준으로 내리막길로 많이 구성이 되어 있다. 몇몇 곳은 정말 가파른 내리막으로.


이곳의 랜드마크라고 한다면 역시 이곳의 이름을 딴 지하철역이 있는 삼거리에 위치한 호텔이라고 볼 수 있다. 특히 여름이면 이 호텔 야외 수영장은 본인의 몸매를 뽐내기 위해 모이는 사람들로 가득하다. 대단히 시설이 좋거나 하진 않다. 실내가 아닌 실외에 수영장이 있다는 점. 서울의 호텔 수영장이 실외에 있는 경우는 많이 없다. 그리고 1년 동안 몸을 잘 만들어서 보여주고 싶은데 한강 시민 공원 수영장은 가기 싫고, 근처에 있는 다른 호텔 수영장은 너무 비싸기에 대안으로 아주 적당하다. 국립 극장 맞은편에 이곳 호텔 수영장과 비견될 만한 호텔 수영장이 있었으나 지금은 멤버십 특급 호텔로 바뀌면서 그곳 역시 대단히 비싸진 상황이라 코로나 팬데믹 이전엔 이곳의 여름은 정말이지 뜨거웠다. 날씨도 그들의 몸들도.


난 이 동네를 꽤나 자주 가는 편이다. 2달에 한번 머리를 자르기 위해 이곳에 있는 이발소에 다닌 지도 6년이 되어 가는 것 같다. 그리고 내가 단골로 가는 햄버거 집도 이 동네에 있어서 즐겨 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동네에 대한 이야기를 적는 것에 시간이 좀 걸렸다. 작년 핼러윈 참사 때문에.


내가 가는 이발소를 가기 위해서는 그 참사가 있었던 길을 지나가야지만 한다. 참사 이후 한 동안은 이 동네를 가지 못했었다. 그리고 처음 이발소를 갈 겸 가는데 느껴지는 을씨년스러움이란. 12월에 갔기 때문에 더욱 그럴 수도 있었다. 그 일만 없었으면 팬데믹 해제로 인해 연말 분위기에 가득 찾을 골목이. 여전히 여럿 각자의 이유들로 영업을 하지 못하고 문을 걸어 잠그고 있는 가게들을 보면서 마음 한편으론 살아있는 사람은 그래도 살아야 하지 않을까?라는 지극히 T스러운 생각을 하긴 한다. 이 글을 쓰기 위해 방문했을 때는 그래도 사정이 많이 나아져서 다행이라고 생각했지만. 사고 현장 바로 맞은편에 소방서와 경찰서가 있다는 것이 한편으론 다행스럽기도, 다른 한편으론 더욱 안타깝기도 하는 양가감정이 든다.


유흥과 환락의 동네에서 상처와 추모의 동네가 되어 버린,

서울 시민뿐만 아니라 이 나라 국민들에게 또 한 번 큰 상처가 되어 버린,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금 활력을 찾았으면 하는,


그런 동네,

이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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