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 번째 억지
우선 이 책의 제목-현재는 책으로 발간될지는 미지수이지만 해볼 예정임-이 왜 '억지삼지' 인지를 설명하려고 한다. 그러기 위해선 내가 어떤 성향을 가진 사람인지를 먼저 설명해야 할 듯하다.
난 어린 시절부터 다른 사람에 대한 공감능력이 떨어지는 편이었다. 현재도 그렇게 높다고는 말할 수 없지만 과거보다 나아진 것은 사실이다. 사회생활이라는 것을 하면서 공감하는 척 인정하면서 포기하는 것이 더욱 편하게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을 깨달은 것 일 수 있다.
하지만 모든 사람들이 어떤 행동을 하는 것에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는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그것은 원래 사람을 관찰하는 것을 좋아하는 기본적인 성향도 있지만 일반 사용자들 대상으로 한 서비스를 기획하면서부터 더욱 가속화된 거 같다.
'저 사람은 왜 저렇게 생각할까?' 혹은 '왜 저렇게 행동할까?'
이런 생각들을 계속하다 보면서 갑자기 떠오를 사자성어-꽤 많은 사람들이 인간관계에 있어서 가장 중요하다고 들어왔던, 하지만 실천하진 않는- '역지사지'가 떠올랐다. 다른 사람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자는 뜻을 가진 사자성어로 어찌 보면 사회생활뿐만 아니라 모든 관계를 형성하고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가장 중요하고 필요한 말일 것이지만 진정으로 역지사지를 해 보는 것은 대단히 어려운 일이다.
예를 들어, 아는 후배가 남자 친구와 헤어져 굉장히 우울한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밤에 울기를 반복하고 밥을 제대로 안 먹은 지 며칠. 그걸 보고 있던 그녀의 어머님 안 되겠다 싶어서 말을 건넸다.
"남자 친구랑 헤어진 게 뭐 그리 슬프다고 그렇게 며칠 동안 방에만 있으면서 울고 밥도 잘 안 먹는 거니?"
어머님 입장에선 그렇게 말할 수 있다고 생각을 할 것이다. 하지만 여기엔 의외의 이야기가 숨어 있다. 그녀의 어머님은 정확하게 그녀의 상황과 슬픔을 이해하지 못하신다. 그 이유는 그녀의 부모님은 서로 첫사랑-확신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어머님은 첫사랑-과 결혼을 했기 때문이다. 즉, 실연의 아픔을 경험해 본 적이 없다는 것이다. 물론, 남녀 간의 실연만 헤어짐이 아니기 때문에 다른 종류의 실연을 통해 공감은 할 순 있지만 100% 공감할 수는 없다 이처럼 공감은 거의 비슷한 수준의 경험치와 정보, 지식들이 있는 경우에만 비로소 시도해 볼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역지사지는 노력하면, 그리고 하고자 하는 의지만 있다면 해 볼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런 노력에서 시작하는 것이 이 책의 시작이다. 대충 제목에서 눈치챘을 수 있지만 '억지삼지'는 '역지사지'를 비틀어서 만들어 낸 말이다. '역지'가 '억지'로 바뀐 이유는 그 사람이 그렇게 행동 혹은 생각하는 이유를 굳이 안 해봐도 되지만 억지로 한번 해 보겠다는 의미이고 '사지'가 '삼지'로 바꾼 것은 그런 행동 혹은 생각을 하는 이유를 3가지 이유로 설명해 보겠다는 것이다. 즉, 굳이 저 사람이 왜 저렇게 행동하는지 전혀 궁금하지 않지만 그 사람의 입장에서 그렇게 행동하는 이유를 3가지 정도로 정리해 보고자 하는 것이다, 굳이.
이 글을 읽음으로 인해서 '아~ 그럴 수도 있겠구나!' 정도를 바라는 것은 아니다. '그냥 그럴 수도 있겠지만 난 여전히 이해가 가지 않아.' 정도면 충분하다. 좀 더 욕심을 내어 보자면 이 글들을 통해서 사람의 행동과 생각을 조금은 다른 방식으로 이해해 보려고 노력해 보고 그것을 본인을 둘러싼 삶에 적용해 보면 좋겠다는 미련을 가져 보며 글을 시작하고자 한다.
매주 토요일 혹은 일요일 오전에 작성할 예정이며 2020년 마지막 주까지 작성할 예정이라 정상적으로 모두 모인다면 글은 52편이 될 것이다. 본격적인 '억지 이해하기'를 시작하기 전에 제목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어서 인트로를 적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