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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런남자 Sep 06. 2020

잘 못 버리는 사람

서른다섯 번째 억지

난 본의 아니게 미니멀리스트로 살고 있다. 본래 물건을 사 모으는 걸 좋아하지도 않지만 언제든지 이사를 가야 하는 세입자로서 더더욱 무언가를 잘 사지 않는 편이다. 더불어 무언가를 사게 되더라도 1:1로 맞교환하는 방식으로 물건을 산다. 즉, 한 가지 물건을 사면 그 이전에 사용하던 물건은 버린다. 예를 들어 겨울에 입던 청바지가 너무 해져서 혹은 사이즈가 많이 달라져서 버리고 새 청바지를 사는 방식이다. 이렇게 무언가를 잘 사는 습관과 더불어 난 무언가를 잘 버리는 편이다. 옷이나 기타 등등 몇 년 동안 한 번도 안 입었으면 앞으로도 안 입을 것이라는 생각으로 과감하게 버린다. 집 주변에 의류수거함에 넣으면 본래 의도와 다르게 사용된 다는 설도 있지만 모 내가 안 입는 옷을 누군가가 입는 다면 그것 역시 좋은 일이라 생각하고 수거함에 넣어 버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분명 어딘가에 몇 년째 입지 않고 처박혀 있는 옷이나 신발이 있을 수 있지만 다른 사람들에 비해선 잘 버리는 것 같다. 하지만 버리는 것을 못하는 사람들이 꽤나 많이 있다. 본인도 충분히 무언가가 많다는 걸 인지하고 있지만 기존에 있던 것 들을, 심지어 최근엔 사용도 하지 않는 것들을 버리지 못하고 그런 물건들을 쌓아두고 있다. 더 이해하기 힘든 건 이사를 할 때도 가지고 다니는 경우가 있다는 것이다. 도대체 왜 이들은 무언가를 잘 못 버리는지에 대해서 한번 생각해 보겠다. 그리고 오늘은 물건에 한 해서만 이야기하도록 하겠다. 다음에 기회가 된다면 미련이나 기억을 못 버리는 것에 대해서도 생각해 볼 날이 있을 듯하다.


#1. 언젠가 다시 사용할 것이라 굳게 믿고 있다. 

지금은 본인이 사용을 하지 않고 있다. 그리고 과거 몇 해 동안 사용을 하지 않았다. 하지만 어떤 물건을 구매하던 대부분은 어떤 이유 혹은 목적이 있어서 구매를 했고 지금은 이 순간만 잠시 사용을 안 할 뿐 다시 언젠간 사용할 것이라고 굳게 믿고 있다. 옷이 가장 대표적인 품목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특히 유행을 좀 타는 옷 같은 경우에는 유행 당시에 샀다가 유행이 지나가서 그냥 가지고 있는 경우가 있다. 이런 경우 패션은 돌고 돈다는 믿음으로 다시 한번 언젠가 유행하는 시기가 있을 것이고 그때를 기다리면서 버리지 않고 있는 경우가 있다. 다행히 그 유행 시기가 꽤나 빨리 돌아와서 다시금 원래 있던 옷을 입어도 그렇게 이상하지 않은 시기라면 다행이지만 대부분은 그렇지 않은 경우가 많다. 또한 처음 옷을 구매했을 때와 지금의 본인의 몸의 상태가 같으리라는 보장 역시 없다. 하지만 그들은 그런 이유에서 그 물건을 버리지 않고 가지고 있는다. 그것을 뭐라고 하기도 뭐한 것이 정말 유행은 돌고 돌아서 다시금 유행이 되기도 하기 때문이다. 나 역시 어린 시절 꽤나 많은 cd를 샀었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음악을 스트리밍으로 듣기 시작하면서 cd로 음악을 듣지 않기 시작했고 독립을 하는 시점에서 나는 대부분의 cd를 중고 음반 가게에 팔았다. 하지만 다시금 유행이 돌고 돌아서 cd 혹은 vynil로 음악을 듣는 사람들이 늘어나기 시작했고 전문적으로 판매를 하는 곳도 다시금 생겨나기 시작했다. 지금 와서 내가 팔아버린 cd를 다시 살 생각은 없지만 가지고 있었다면 나름의 추억은 되었겠다는 생각은 한다. 사용은 안 할지라도.


#2. 무언가 추억이 있는 물건이다.

이 이유에선 나 역시 자유롭진 못하다. 나도 추억이 있는 물건-특히, 선물 받은 물건-은 그 쓰임새가 다 했음에도 불구하고 못 버리고 가지고 있는 경우가 있다. 누구나 그런 물건들이 있을 것이다. 그런 물건 들은 쉽게 버리지 못한다. 더군다나 그 물건이 어떤 기념일에 받은 선물이라면 더더욱. 그 시절이 그립거나 돌아가고 싶거나 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 물건을 버리게 되면 그때의 나의 기억 혹은 추억 역시 버리는 거 같은 느낌이 드는 것은 인지상정일 것이다. 나에게 그런 물건은 거의 수명을 다해가고 있는 스웻셔츠가 하나 있고 꽤 오래 연애할 때 받았던 손편지들이다. 현재 4번 정도의 이사를 하면서 항상 버리지 못하고 가지고 다니는 물건이긴 하다. 스웻셔츠는 같은 브랜드에 가서 같은, 하지만 올해 새로 나온 옷을 살까?라는 고민마저 하고 있다. 어차피 기본 디자인이라서 매해 나오기 때문에. 어쩌다가 실수로 혹은 본인 모르게 버리거나 버림을 당하게 되면 그 허탈감은 꽤나 클 것이다. 그러기에 선뜻 본인의 의지로 버리기엔 더더욱 어려운 물건들이 있다. 누구에게나 하나 이상은.


#3. 합리적인 소비자가 아니다. 

우리는 학창 시절부터 학교에서 경제 관련 수업 시간에 ‘인간은 합리적인 소비자’라는 명제를 배운다. 그렇기 때문에 대부분의 경제 활동은 소비자들로 구성된 시장에 맡겨두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경제학 파도 있다. 근데 스스로를 돌아봤을 때, 그리고 본인의 소비패턴을 반추해 봤을 때 과연 스스로 ‘나는 합리적인 소비자야’라고 할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10에 9는 아닐 것이다. 그렇게 합리적이지 않은 소비로 인해 쌓여 있는 물건들이 본인 집 혹은 방에 차곡차곡 쌓여 있고 그런 물건들은 주인 잃은 애들 마냥 몇 달을 혹은 몇 년을 그대로 쌓여 있게 된다. 더 최악인 것은 본인이 가지고 있다는 것을 망각한 체 또다시 비슷한 심지어 같은 물건을 또 구매한다는 것이다. 그리곤 그 사실을 알았을 때 자괴감에 시달리게 된다. 그리곤 또 어딘가에 처 박히게 된다. 이런 사람들은 어찌 보면 잘 못 버린다기보다는 잘 못 사는(buy) 사람이라고 보이지만 결과적으로 물건이 쌓여 있는 부분은 같다고 볼 수 있다.


물건을 쌓아두고 사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은 본인의 삶의 방식과도 맞닿아 있는 것 같다. 조금은 심플하게 미니멀하게 사는 사람이 생각하는, 행동하는 방식이 조금 심플한데 반해, 무언가를 쌓아두고 사는 사람은 생각이 많고 걱정도 많은 편인 거 같다. 그렇기 때문에 물건을 쌓아두고 잘 못 버리는 사람이 게으러서 그렇다고는 생각친  않는다. 저마다의 이유가 있을 뿐. 서두에 말한 대로 난 잘 버리는 편이긴 하다. 그렇다고 해서 버린 물건과 버린 행위에 대해서 훗날 후회를 한 번도 한 적이 없을까? 그런 건 아니다. 최근에만 해도 과거에 버렸던 테니스 피켓티를 아쉬워했다. 그 당시엔 내가 테니스를 칠 거라는 생각을 1도 하지 않았기 때문에. 하지만 여러 매체에서 자꾸 미니멀 라이프를 외치고 있고, 정리를 전문으로 해주는 직업까지 생겼으며, 정리를 소재로 한 TV 프로그램까지 생긴 거 보면 그만큼 못 버리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는 반증인 거 같다. 그만큼 생각이 많아지고, 걱정이 많아지는 사람이 그와 비슷한 수준으로 많아진 건 아닌지 하는 씁쓸한 생각마저 든다. 아니길 바라지만.


*혹시, 지난주에 저의 비루한 글을 기다리신 분이 계셨다면 진심으로 사과 드립니다. 장비의 문제로 인해 한 주 건너 뛰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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