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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런남자 Aug 23. 2020

자만추

서른네 번째 억지 

'자연스러운 만남을 추구하는 사람'을 줄여서 부르는 말이다. 특히 이성을 만남에 있어서. 그럼 자연스러운 만남의 반대는 무엇일까? 인위적인 만남 즉, 가장 대표적으로 소개팅일 것이다. 둘 다 이성을 만남이 목적이라면 자연스럽고 인위적인 건 무슨 상관이 있을까? 어차피 목적이 그것이라면 말이다. 하지만 자만추들은 인위적으로 만나는 것보다는 자연스럽게-뭐가 자연스러운 건지는 나는 여전히 의문이긴 하다.- 본인이 속한 조직에서 혹은 새로운 모임에서 만난 이성과 자연스럽게 연인으로 발전해 나가는 것을 선호하는 것이다. 바꿔 말하면 본인은 연인을 만나기 위해서 그 모임 혹은 조직에 들어간 것이 아닌 그 모임의 본연의 목적을 즐기기 위해서 그 모임에 들어간 것이다. 그렇게 사람들과 어울리다 보니 솔로 남녀가 그냥 같은 모임에서 활동하는 사람이 아닌 이성의 감정을 느끼게 되고 자연스럽게 연인으로 발전하는 과정을 거치게 된다. 이 과정이 자만추들이 말하는 연인이 되는 과정일 것이다. 아무래도 인위적인 소개팅 자리가 아니다 보니 본인의 자연스러운 모습을 보여주고 대부분 이런 모임들은 한 가지 혹은 소수의 취향을 공유하는 경우가 많다 보니 서로의 취향을 맞추는 수고를 조금은 덜 수도 있다. 그러다 보니 친해지는 속도 역시 훨씬 빠를 수 있다. 또한 정기적으로 모임에서 만나다 보니 자연스럽게 서로의 개인적인 부분들도 이야기를 하면서 서로에 대해서 알게 되기 마련이다. 난 이런 자만추로 연인관계가 된 적이 거의 없다. 같은 조직에선 연애를 안 하는 것이 좋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기도 하고 조직이 아닌 모임 활동을 그리 활발하게 하는 것도 아니기에. 그래서 자만추의 세계에 대해서 잘은 모른다. 하지만 그들이 왜 자만추를 선호하는지는 어느 정도는 알 것도 같다. 꽤 많은 연애상담을 통해서. 그리고 오늘의 글은 언제나 그렇듯이 3가지 이유로 생각해 보지만 그 이유가 각각의 개별적인 이유라기보다는 하나로 연결된 3가지 이유라는 점을 미리 밝혀 둔다. 


#1. 어색한 상황을 못 견뎌한다.

소개팅 혹은 소개팅 앱을 통해서 누군가를 만나게 되면 서로에 대해서 아는 것이 거의 없다. 이름, 나이, 연락처, 직업 정도. 사진을 보고 만나는 경우가 많아서 서로에 외모에 대해서도 어느 정도 알고는 있지만 카메라 기술의 발전으로 인해 사진 속 주인공이 아닌 경우도 종종 있기에. 이처럼 거의 아는 것이 없는 상태로 만나다 보니 무슨 이야기를 해야 할지가 막막할 경우가 있다. 무슨 이야기를 할지는 고사하고 그냥 모르는 사람과 함께 있는 것 자체도 대단히 어색해서 못 견뎌하는 사람들이 꽤나 많이 있다. 한쪽이라도 좀 덜해야 하는데 둘 다 그런 성격 혹은 성향을 가진 사람이라면 정말이지 미칠 노릇이다. 종종 커피집에 있으면 옆 자리에 소개팅을 하는 남녀가 앉는 경우가 있다. 전혀 모르는 사람이 봐도 '소개팅을 하는구나'라고 느껴질 정도의 어색한 기운이 주변인들의 온몸을 감싸니 정작 본인들은 얼마나 어색할까. 


#2. 그게 더 편하다 

사람들은 누구에게나 직면하는 다양한 상황들 속에서 본인이 가장 선호하고, 편한 상황들이 있다. 혼자 있는 게 편한 사람도 있고, 친한 여러 명과 함께 있는 것이 편한 사람도 있고, 불특정 다수와 함께 있어서 편한 사람도 있다. 이성을 만나는 방식 역시 그렇다. 개인적으로 나는 자만추보다는 미팅을, 미팅보다는 소개팅을 더 선호한다. 그냥 1:1로 만나서 이야기하고 친해지는 것이 더 편하고 자연스럽게 대화를 끌고 갈 수 있는 편이다. 이처럼 자만추를 선호하는 사람은 역시 그런 환경에서 차차 친해져서 자연스럽게 연인관계로 발전하는 것이 편한 것이다. 위에서 말한 어색한 상황을 싫어하는 것도 한몫하겠지만 자연스러운 상황을 더 선호하는 것이다. 그럼 뭐가 더 편하다는 것일까? 내가 보기에는 그런 상황에서 본인의 매력을 더 잘 표현할 수 있는 것 같다. 바꿔 말하면 누구나 그렇듯이 본인이 더 편한 상황에서 본인의 매력을 상대 이성에게 더 잘 표현하는 것이다. 


#3. 그런 경험이 많다. 

위의 이유들 때문에 연애의 시작의 경험이 대부분 자만추였던 것이다. 사람은 누구나 본인의 경험을 바탕으로 어떤 일을 하는 경향이 있다. 아무래도 그 방법이 '성공'의 확률을 조금이라도 높여 준다고 믿고 있고 그런 믿음은 어찌 보면 당연한 것일 수 있다. 나 역시 자만추보다는 소개팅에 의지해서 다시금 연애를 시작하려고 하는 거 보면 나 역시 예외는 아니다. 이처럼 자만추를 선호하는 사람들은 위의 이유도 있겠지만 지난 연애들의 시작을 대부분 그렇게 했을 가능성이 대단히 높다. 즉, 그렇게 학습된 프로세스가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미 성인이 된 우리네들에게 그렇게 학습된 내용들은 쉽게 바뀌지 않는다. 더 그런 것이 바꾸려고 시도를 잘 안 하게 된다. 연애뿐만 아니라 우리네 일상의 대부분의 것들을 그러하듯이. 나처럼 '연애는 필수'라고 굳게 믿고 사는 사람이 아니라면 더더욱 그럴 것이다. 


이렇게 고착된 패턴은 쉽사리 변하지 않는 것 같다. 내가 예전 회사 팀원이 오랜 연애를 마무리하고 솔로로 있던 시절-안타깝게 지금도 솔로이다.- 지속적인 소개팅을 주선했었다. 아마 내가 아는 몇 안 되는 지인들은 모두 그 녀석의 소개팅을 주선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번번이 결과가 좋지 않았다. 그렇다. 그 녀석은 자만추였던 것이다. 난 그걸 앎에도 불구하고 지속적으로 소개팅 자리에 내보냈고 그 소개팅 자리는 지난주에도 하나 있었다. 그 소개팅을 마지막으로 내가 그 녀석에 보냈던 문자 내용으로 오늘 글을 마무리하려고 한다. 


'소개팅 당하느라 수고했다.' 


그렇다. 누군가에는 소개팅이 '하는 것'이 아닌 '당하는 것'일 수도 있다는 것을 거의 2년이 되어서야 깨닫게 되었고 그 녀석에게 난 어젯밤 정중하게 사과를 했다. 어찌 보면 나의 욕심이 앞섰던 것을 인정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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