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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따비 Jan 11. 2017

"네 삶을 살라."

마담 프루스트의 비밀정원

미래의 갈림길에 놓여있던 내게, 누군가의 강제적 지침이라도 절실했던 내게,

우연히 이 영화를 재생한 건 어쩌면 운명같은 일이었는지도 모른다.



어린시절 부모에 얽힌 트라우마로 인해 폴은 말하는 방법도, 삶을 사는 방법도 잊어버렸다. 그의 삶은 그에게 피아니스트의 길을 강요하는 쌍둥이 이모들에 의해 하루하루 채워질 뿐이다. 그는 사실 자신이 피아니스트가 되고싶어 했는지도 알지 못한다. 이모들은 사랑해 마지않는 조카에게 "넌 피아니스트가 되고싶지?"라고 묻지 않는다. (그랬을리가 없다.) 그렇게 폴은 누군가가 정해준 길을 따라 묵묵히 걸었다. 언제부터 그랬는지, 왜 그랬는지도 알지 못한 채 한 살 한 살 나이를 먹었고 그의 '예쁜 손가락'은 늘 피아노 건반 위에 놓여 있었다.



삶에 전환점이 된 질문은 고요하게 던져진다. 폴은 마담 프루스트의 정원에 우연히 발을 딛고, 그녀는 폴에게 특별한 차를 건넨다. 차를 마시고 쓴 맛을 달래는 마들렌을 한 입 베어물면 이내 잠에 빠져들고 그 속에서 자신의 기억들을 여행하는 것이다. 이로써 폴은 자신의 옭아맸던 기억과 그 속의 진실들에 마주하기 시작한다. 차 한 모금에 기억 하나, 또 한 모금에 치유 한 번, 또 한 모금에 다시 상처, 그리고 또 한 모금에...


마담은 치료사는 아니지만 그녀는 차를 대접함으로써 각자의 길을 찾는 데 힌트를 제시한다. <마담 프루스트의 비밀정원>은 그 힌트들이 다름아닌 당신의 지나간 삶 속에 잊혀지거나 가리워져 있을 뿐이라고 말한다. 물론 무엇을 발견하는가 그리고 이후의 선택은 다시금 나의 몫이다. 다만 마담의 비밀정원이 환상적인 이유는 환상과 현실, 과거와 현재, 기억과 진실을 오가면서 틀에 박힌 어떤 존재들로부터 나를 자유롭게 하기 때문이다. 마담 프루스트 같은 사람과 그 비밀정원이 나의 세상에도 존재한다면 어떨까. 나도 그 차를 마실 수 있다면.



"Vis ta vie."


폴에게 마지막 차와 함께 마담이 남긴 쪽지, '네 삶을 살라'. 간결하지만 울림은 굵직했다. 이 장면에 이르렀을 때, 그저 그림같은 씬들과 비밀정원의 환상에 묻혀 영화를 즐기고 있던 나는 별안간 그 환상에서 깨어버렸다. 세 단어는 스크린을 벗어나 콕콕콕 차례대로 박혀왔다. 폴의 상처는 마담과의 시간을 통해 어루만져진다. 그리고나서의 저 쪽지는 권유라기보다는 허락에 가깝다. 네 삶을 살아도 돼. 너(그리고 우리는) 그래도 돼. 폴이 가장 듣고싶었던 말이 아니었을까. 그리고 폴과 상황은 다르지만 인생의 어느 지점에서 서성이던 나도.


흔히 말하는 '인생영화'의 의미는 정확하지 않다. '내 인생에 통틀어 가장 훌륭한 영화'일수도 있고, '내 인생에 큰 영향을 준 영화'일수도 있다. 후자로 명명한다면 <마담 프루스트의 비밀정원>은 내게 감히 그런 영화다. 저 단 한 장면, 저 단 하나의 글귀만으로 이 영화의 러닝타임은 내게 보석같은 시간이 되었기 때문이다. 'Vis ta vie', 읽기로는 '비 따 비'라 한다. 긴 고민 끝에 나의 브런치 작가 이름도 이걸로 정했다. 브런치는 '내 삶'을 일구는 하나의 작은 공간이다. 그리고 그런 공간으로 변함없이 머물기를 소망한다.



조만간의 티타임은 '쌉쌀한 차와 보드라운 마들렌'이어야겠다.

마담과 정원은 없지만 'Vis ta vie'를 마음 속에 품고 있다면, 그 맛은 비슷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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