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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따비 Jan 13. 2017

우리가 사랑했던 고기능 소시오패스의 부재

셜록 S4 'The Six Thatchers'

'덕후'의 정의를 어디까지 둬야할 지 모르겠지만 나는 소위 '셜덕'은 아니다. 영드와 <셜록>을 사랑하는 그 열성적인 팬들에 비한다면 나의 애정은 발끝에도 닿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참 좋아하긴 한다. 이 드라마의 매력에 한동안 빠져지냈고 베네딕트 컴버배치가 갈수록 잘생겨보이는 기이한 경험도 피할 수 없었다. 열성분자는 아니더라도 <셜록> 시즌4를 손꼽아 기다린 소박한 애청자 중의 하나였다. 그래서 2017년 새해부터 반갑게 맞이한 소식 중 하나가 셜록의 귀환이었다. KBS 첫 방영 후 심상치 않은 여론에도 흔들리지 않았다. 자막버전의 재방영을 기다리면서, 이래저래 말 많았던 시즌3도 나름 만족했을 만큼 나는 썩 관대한 사람이니 괜찮을 거라고 생각했다. 악평에 대한 걱정보다는 신작을 기다리는 기대감이 더욱 컸다.



90분의 시청 끝. 아, 셜록은 어디갔지?

어딘가 산만한 스토리, 셜록만큼이나 산으로 간 왓슨의 캐릭터를 포함해 아쉬움거리는 한 보따리이지만 충격은 이 지점에서 가장 컸다. 우리가 사랑했던 고기능 소시오패스가 온데간데 없다는 사실은, 아무리 관대한 내게도 분명했다.


셜록은 자신의 입으로 직접 말한다. "나는 영웅이 아니라, 고기능 소시오패스다." 본래 그의 말은 반쯤 틀렸다. 팬들에게 그는 참 매력적인 고기능 소시오패스여서 그가 의도치 않았어도 21세기 최고의 괴짜 영웅 중 하나가 되어버렸다. <셜록>의 흥행성적만 봐도 그가 감히 영웅이 아니라고 할 수 있을까. 시즌4에 이른 지금도 그의 설명은 역시나 틀렸다. 다만 반대의 의미라는 달갑지 않은 방식으로 말이다. 'The Six Thatchers'에 등장한 것은 <셜록>이라는 유명 드라마 속 셜록이라는 영웅의 얼굴과 말투를 모방한 그저그런 탐정뿐이었다. 


셜록의 캐릭터 변질이 납득이 가지 않는 것은 아니다. 제아무리 소시오패스여도 사람은 누구나 변하는 법. 왓슨과 메리의 존재가 그에게 각별했다는 점은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문제는 '셜록이 어떻게 변했어?'라는 개연성보다 '셜록이 변했다'는 콘셉트 자체이다. 셜록이 그 각별한 우정에 이렇게 속수무책으로 휘둘려서는 안 되는 거였다. 추리와 똘끼보다 우정과 감성에서 빛을 발하는 셜록이라니. 이번 편에서 셜록의 '셜록다운' 장면들은 손에 꼽을 정도다. 경건한 세례식에서 핸드폰을 두들기며 사건을 상담한다던가 옹알이하는 아기에게 딸랑이를 던지지 말라고 논리를 편다던가. 사회성을 습득하진 못해 우스꽝스럽기도 하지만 그만의 방식으로 주변 사람들과 느슨하게 엮여있던. 이 독특한 캐릭터에 매료될 수 있었던 건 그 애매한 줄타기의 탁월함이었을 테다.



왜 그래야만 했을까. 셜록에게 가장 큰 위기를 선사하고자 했다면, 찰떡콤비였던 왓슨과의 분열은 타당하다. 그리고 그 원인으로 왓슨의 가정을 건드린 점 또한 설득력 있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셜록은 필요이상으로 감정을 드러냈고 그에 따라 행동했으며 너무 무너져내렸다. 왓슨과 메리를 향한 죄책감에 시달리면서 그가 허드슨 부인에게 한 말은 놀랍기까지 하다. "It'll be very grateful." 그토록 진지하고 침울한 얼굴과 'grateful'이라는 정중한 단어라니. 우리는 그의 오만과 자만을 미워하긴커녕 그에 열광했는데, 그 스스로 그것을 포기하겠다 말한다.



물론 아직 두 편이 남았다. 왓슨과 깊이 패인 갈등을 풀어내는 과정이나, 여태 그의 주변을 서성이는 모리아티의 기묘한 존재를 어떻게 활용하느냐 등이 관건일 수 있다. 하지만 셜록이 사라진 <셜록>이 팬들의 마음을 얼마나 달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안타깝게도 그는 이미 너무 넓은 강을 건너와버린 것 같다. 그립다. 시즌1 첫 화에서 보는 이의 혼을 쏙 빼놓았던 셜록과의 첫만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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