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승우의 스위니 토드
다음은 뮤지컬 <지킬 앤 하이드> 한 장면이다. 스스로 임상실험의 대상이 되기로 결심한 지킬 박사는 선과 악을 분리하는 약을 마신다. 곧 몸을 태우는 고통에 바닥을 헤집으며 몸부림친다. 어쩔 줄 모르는 비명과 함께 정갈했던 머리가 풀어헤쳐지고 단정했던 옷매무새마저 뜯긴다. 잠시의 고요 뒤, 움츠렸던 몸을 서서히 일으켜 거친 숨을 내쉬는 지킬, 아니 하이드. 산발이 된 검은 머리 사이로 짐승의 눈이 객석을 향하는 순간, 매끄러웠던 신사의 음성 대신 공연장을 꽉 채우는 것은 그릉대는 '거친 남자'의 하울링이다.
이 장면의 데자뷰는 <스위니 토드>에서 일어났다. 특정인물(터핀 판사)을 향한 복수를 계획했던 스위니가 무차별적인 살인마로 돌변해 광기를 드러낼 때다. 이것은 지킬이 하이드로 변하는 그 찰나를 좋아하는 관객에게 예상치 못한 선물이었으니. <지킬 앤 하이드>와 <스위니 토드>를 번갈아 떠올리며 같은 인물, 비슷한 성격의 두 캐릭터를 되새겨본다. 같은 인물인 까닭은 필자가 지킬&하이드와 스위니를 모두 조승우라는 배우를 통해 만났기 때문이다. 물론 두 인물들이 겪는 변화는 그 성격이 다르다. 하이드로의 변신은 한 사람의 내면에 웅크려있던 '악의 가시화'이고, 스위니의 변화는 분노와 복수심에 지배당한 한 인물의 '타락'이다. 다만 화와 악랄함이 배우의 몸을 통해 강하게 터져나오는 장면은, 자연스레 스위니 토드로부터 지킬과 하이드를 떠올리게 한다.
악이 분출되는 순간은 늘 그렇듯 짜릿하고(왜일까!) 강렬하다. <스위니 토드>가 <지킬 앤 하이드>와 다른 점이 있다면, 이것은 평범한 남자가 살인마로 변신하는 심리적 과정을 눈으로 확인하는 경험이라는 것이다. <지킬 앤 하이드>의 작곡가 프랭크 와일드혼과 <스위니 토드>의 스티븐 손드하임은 음악의 성격이 매우 판이한데, 흥미롭게도 이 점이 노래를 통해 인물의 광기가 드러나는 방식에도 차이를 만들어낸다. 넘버 'Epiphany'는 스위니가 살인마로 변하는 지점에 위치한다는 점에서 <지킬 앤 하이드>의 'Alive'와 비슷한 색깔이지만, 한 곡 안에 스위니의 광적인 분노와 서정적인 슬픔이 뒤섞여 있어 전개 방식은 'Confrontation'과 흡사하다. 'Epiphany'가 이 뮤지컬의 대표적인 킬링 파트가 될 수밖에 없는 이유다.
거기! 당신! 면도 좀 할까
다신 못 봐 나의 아가 안아볼 수조차 없겠지
어서 와서 앉아봐, 당장 와봐, 안 오면 죽어!
이 순간 조승우는 광기, 슬픔, 여유, 분노를 능수능란하게 조리한다. 그의 노래는 오케스트라 반주 위에 얹혀 선율을 타지만 때로는 대사를 치듯 거칠게 부르짖는다.("망할 씨발새끼들의 썩은 내!") 그는 노래를 한다기보다 스위니의 감정을 거침없이 표출하되 선율과의 흐름과 강약을 따라 강렬하게 혹은 시니컬하게 내뱉는다. 그의 노래는 인물의 손동작, 동선 하나하나를 고려해 작곡했다는 손드하임의 음악 스타일처럼 극과 캐릭터에 밀착해있는 셈이다. 그래서인지 무대 위 이 배우는 관객이 자신의 연기에 쉽게 빨려 들어가도록 돕는다. 'Epiphany' 직전의 무대 상황을 보라. 복수할 기회를 놓친 스위니의 망연자실한 표정은 곧 그의 몸을 덮는 분노로 바뀐다. "똥이나 처먹고 사는 놈"들을 욕하며 읊조리듯 노래를 시작할 때 그는 어느덧 직전의 이발사와 다른 사람이다. 욕을 지껄였다가 부인과 딸을 그리워하며 울부짖고 다시 관객을 가리키며("거기! 당신!") 오싹하고 전혀 유쾌하지 않은 초대를 건네고("면도 좀 할까") 다시 서정적인 멜로디로 슬픔을 노래하다 광적인 웃음소리로 공연장을 채운다. 공포스럽지만 이러한 무대는 매혹적이다. 노래 한 곡, 그 캐릭터 안에 배우가 온전히 자신을 맡겼을 때, 관객은 그의 감정을 생생하게 마주한다. 무대를 휘젓는 발걸음에 눈을 맞추고, 분노를 표출하는 손짓에 희열을 느낀다.
스위니 토드는 자신을 시종일관 드러내는 캐릭터가 아니다. 위의 장면과 엔딩씬을 제외하면 오히려 요란한 개성과 감정을 절제한다. 그도 그럴 것이, 극 전반부의 스위니는 평범한 이발사였고 후반부엔 무자비한 광기를 철저하게 숨긴 '시체'이기 때문이다. 무분별한 살인으로 변질된 복수심은 관객에게 딱히 설득력을 부여할 필요도 없어 보인다. 이러한 배경에서 더욱 돋보이는 것은 스위니의 '인간성 없음'이다. 무표정하고, 시니컬하고, 무엇보다 살인 욕구를 숨긴 상냥한 이발사의 표정은, 어쩌면 그의 어떤 살인행위보다도 잔혹하다. 소름 끼치는 정적 가운데 유일하게 울려 퍼지던 그의 휘파람 소리, 러빗 부인과 만담 아닌 만담을 주고받던 시니컬한 대사들, 러빗 부인과 마지막 춤을 추며 짓던 살인자의 미소야 말로 요란한 특수효과나 귀가 찢어지는 효과음보다 섬뜩할는지 모른다.
지극한 절제와 표출 사이에서 이 배우는 어떤 고민을 했을까. 궁금증이 일던 와중, <스위니 토드> 연습기간에 응한 인터뷰에서 대사가 너무 많고 노래가 어려워 걱정스럽다던 그의 고백이 기억이 났다. 조승우는 노래든 연기든 짜인 각본보단 자신을 내맡기며 표현하는 배우이니 이 캐릭터의 손짓과 표정 역시 계산되어 있진 않았을 것이다. 다만 캐릭터에 대한 절실한 공감은 (설마) 가능했을까. 말 그대로 사이코패스적인 캐릭터 아닌가. 그가 진심으로 스위니에 공감했더라면, 그걸 관객에게까지 전달해주었다면 썩 유쾌한 경험은 아니었을 것 같다. 그 날의 관극이 한층 더 오싹한 경험은 되었을지라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