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카오톡 - 카카오 채널
몇 달 전이었을까. 아무 생각 없이 '카카오 채널'을 훑어보던 중이었다. 언제부턴가 이런 시간이 잦아졌다는 걸 느꼈다. 대중교통을 타고 창밖을 바라보다가 익숙한 풍경들에 무료해지면, 식사를 하고 와서 잠시 게으름을 피우고 싶어지면, 짤막짤막한 공백의 시간을 뭔가라도 채우고 싶어 휴대폰을 켜면 카카오 채널에 접속하는 게 일상이 되었다. 부담 없이 들락날락할 수 있는 게 가장 매력적이었다. 접속 절차가 매우 간소화되어 있고 콘텐츠에 머물러야 하는 시간이 짧은 것도 큰 장점이다. 새로운 메시지가 와있지 않아도 기계적으로 카카오톡을 눌러보곤 하는데, 또 그러고 나면 여지없이 채널에 한 번 들어가 보게 되는 것이다. 꼭 보고 싶은 프로그램이 없어도 TV를 켜고 보는 그런 습관처럼.
내가 세상 일에 이렇게 관심이 많았던가. 카카오 채널은 나를 '만물에 대한 잡식자'로 만들었다. 내가 원래 그런 잡식자가 되고 싶던 건 아니었던 것 같지만, 그럼에도 나는 그런 사람이 되었다. 카카오 채널 같은 플랫폼이 출현하면서 나 같은 이들이 많이 탄생하지 않았을까. 언제 어디서든 쉽게 접속할 수 있는 여건과 자투리 시간을 쏠쏠하게 투입할 만한 콘텐츠가 마련되었고, 그에 우리의 욕구가 자극받고 또 새롭게 창출된 것이다. 카카오 채널의 매력을 알아갈수록 내가 재미있어할 만한 일들이 이렇게 많다는 사실에 새삼 놀란다. 주요 뉴스부터 연예, 어젯밤 TV 이야기, 라이프(요리와 리빙), IT, 뷰티, 심지어 평범한 사람들의 어떤 이야기들도. 그동안 그런 이야기들을 두루 누리지 못했던 이유는 나의 귀차니즘이었던 모양이다. 몰라도 되긴 하는데 알면 재미있고, 그렇다고 그 재미를 '적극적으로' 추구할 마음은 딱히 없는 것. 많은 이들이 안고 있었을 이 문제가 해소된 셈이다. 그 결과 나는 요즘 'Push'의 형태와 크게 다르지 않은 방식으로 세상의 온갖 시시콜콜한 이야기들을 접하고 있다.
카카오가 나에게 채팅 플랫폼 이상의 존재가 된 결정적인 요인도 여기에 있다. 카카오가 열심히 확장하고 있는 각종 O2O 아이템들을 딱히 잘 이용하지 않고 있지만, 그 와중에 카카오 채널만큼은 헤비 유저다. 거칠게 말해, 카카오톡은 나와 세상을 연결하고 있음에 다름 아니다. 텍스트, 이미지, 영상을 가리지 않고 각종 이야기와 정보 보따리를 잔뜩 짊어지고 와서 내 앞에 보기 좋게 펼쳐놓는다. 카카오톡에선 지인들만 내게 말을 거는 게 아니다. 그들의 바로 '옆'에서 더욱 시끌시끌하게 종알거리는 게 카카오 채널에 산재해 있는 이야기들이다. 이 얘기 좀 들어봐. 이 사진 웃기지 않니? 이거 알아두면 좋을 걸. 그에 응답하고 적당히 즐겨주는 게 내 여가의 일부를 차지하게 됐다. 지인과의 커뮤니케이션이 늘 ON 상태가 된 것과 다름없이, 시시각각 업데이트된 세상만사의 소식들이 나의 곁 가까이에서 동행한다.
'나-지인', 그리고 '나-세상'의 연결은 곧 '나-지인-세상'의 삼각구도로 이어진다. 여기서 '공유'라는 키워드를 다시 제기할 수밖에 없다. '공유가 가치를 창출한다'는 명제는 너무 많이 소비되어서 진부해졌지만 여전히 우리 생활에 현현하고 직접 체험하고 있는, 오늘의 일상을 설명하는 핵심 기제다. 재미있는 걸 보면 나만 알고 싶지 않고, 유용한 정보를 보면 다른 사람에게도 알려주면 좋겠다. 같이 웃고 같이 공감할 때 콘텐츠가 주는 즐거움과 귀중함은 배로 늘어난다. 때때로 나는 순수하게 내 즐거움만을 위해서가 아니라 누군가와의 얘깃거리를 찾아서 카카오 채널을 항해할 때가 있다. 상대가 관심 있어할 만한 유용한 정보를 찾아 <라이프 스타일>이나 <아트&컬쳐> 같은 특정 카테고리를 샅샅이 들여다보기도 한다. 콘텐츠가 카카오톡이라는 플랫폼에 연동되어 있으니 카톡 채팅으로의 공유는 일도 아니다. 그렇게 앎의 기쁨과 공감의 기쁨은 서로 얽혀 눈덩이처럼 커진다.
내가 이야기를 건네는 대상은 지인만이 아니다. 흥미롭게도 또 하나의 대상은 바로 '나'이다. 카카오톡의 '나와의 채팅' 기능은 내가 발견한 세상의 이야기를 다시 나에게 온전히 전달하는 행동을 하나의 관습으로 만들었다. 내게 쏟아져 내리는 이야기가 너무 많아서 머릿속 용량이 감당하기 어려울 때, 카카오톡은 일단 여기에 보내 놓으라 한다. 이를 따랐을 때, 이대로 휘발해버리기엔 아쉬운 콘텐츠를 내 영역 안에 안전히 남겨놓았다는 사실에 안도할 수 있다. 중요한 건 수집 행위 그 자체, 혹은 '나에게로의 공유'라는 간편한 수집 방식일지도 모른다. 물론 아쉽게도 나는 내게 뭘 보내 놨는지 스스로도 까먹기가 일쑤다. 너무 많은 콘텐츠들이 하루에도 수십 개씩 스쳐 지나가 그걸 분별하여 소화하기도 바쁜 와중에, 옛 자료들을 들춰볼 생각은 차마 하지 못한다. 나도 지금 내 채팅방에 뭐가 얼마나 있는지 알지 못한다. 재미있고 좋았던 정보들은 그냥 시간 순으로 조각조각 덧대어져 있다. 그대로 남겨둔다.
문득, 향후 인공지능 서비스가 이 문제를 해결해주면 좋을 것도 같다. 무질서하게 쌓여 있는 콘텐츠들을 한눈에 확인할 수 있도록 보기 좋게 정돈하고 내가 원할 때 '나만의 아카이브'에서 자료를 꺼내어준다면 어떨까. 어쩌면 지금과 같은 단순한 채팅 형태로는 어려울 것도 같다. 다만 내가 나에게 건네는 이야기들의 모음이 조금의 변형과 개선을 거치면 지금보다 더욱 유용하게 쓰일 수 있겠다는, 그런 아쉬움과 바람이다. 나, 사람, 그리고 이야기. 플랫폼의 진화는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고 나는 더 다양하고 풍부한 이야기를 접하고 누군가와 나누며, 내 취향과 환경에 따라 맞춤의 방식으로 향유하게 될 것이다. 연결성과 공유가 핵심인 현재의 카카오 채널 서비스는 아직 그 시작점에 지나지 않을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