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odie - 나는 왜 음식사진을 찍을까
맛있는 음식만큼 중요한 것은 맛있어 보이는 음식이다.
식당을 운영하는 사람에게만 해당하는 글귀가 아닐 것이다. 맛있고 예쁜 음식 사진에 혹해본 경험이 있다면, 그래서 맛집 탐방을 떠나, 막 주문한 음식을 앞에 두고 카메라 앱부터 켰을 때, SNS에 그 사진을 올리는 일련의 과정을 경험했다면 말이다. 그 모든 사람들에게는 요즘 한 장의 음식 사진이 주는 행복들이 참 충만하다.
1년 전 갤럭시에서 아이폰으로 바꿨을 때, 얼마 지나지 않아 'Foodie'(푸디)를 설치했다. 우연히 발견한 앱인데 음식 사진 전문 필터라는 게 독특하다고 생각해서 호기심에 들여온 거였다. 설치가 완료되고 첫 개시를 했을 때, 곧 푸디는 나의 '완전 소중한' 앱 중의 하나가 되었다. 이토록 쨍하고 이토록 분위기 있는 사진을 너무 쉽게 만들어내다니. 칙칙한 배경에서도, 별 것 아닌 플레이트 한 접시도 푸디의 컷 한 번에 잡지 사진으로 변신했다. 이전에 없던 신세계를 경험하고 나서 한동안 지인들에게 신나게 푸디를 영업하고 다녔다. 그들의 반응도 비슷했던 걸 보니 푸디가 주는 즐거움이 꽤나 보편적이었던 것 같다.
아마 푸디를 이용하면서부터였을 거다. 나는 이전보다 더 열심히 음식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필터 이름도 재미있다. '맛있게', '청량한', '달콤달콤', '바삭바삭', '신선한', '쫄깃쫄깃', '로맨틱'... 음식에 맛있는 옷, 달콤달콤한 옷, 쫄깃쫄깃한 옷을 입힌다는 발상이다. 맛있어 보이는 색감은 알겠는데 더 달콤달콤해보이고 더 쫄깃쫄깃해 보이게 만든다는 생각은 뭘까. 논리적으로 잘 설명이 안 되지만 그럼에도 설득력 있는 게 푸디의 킬링 포인트다. 이름에 따라 정말 그렇게 변하는 듯한 느낌은 착각일까. 어쩌면 이런 필터들은 우리의 실제 경험에 채색을 하고 가면을 씌우는 것과도 같다. 실제의 모습이나 맛보다 덧대어보고 싶은 '어떤 맛'이 있고, 그걸 시각적으로 실현시킨다는 것이다. 푸디는 그걸 노렸고 통했다. 사람들은 더욱 그럴싸하게 음식 사진을 남기고 싶어 했다. 멋진 음식 사진을 찍는다는 것. 그 사진은 시간이 흘러 어렴풋이 사라지는 기억보다 더욱 선명하고 분명하게 한 장의 기억을 만든다. 가장 맛깔난 모습으로 영원히 내 손안에 남는 셈이다.
(카페에 있던 터라 급한 대로 집에서 싸온 과일을 꺼냈다. 같은 공간, 같은 시각, 같은 사물의 다른 모습들이다. 맨 위 왼쪽 사진이 필터 없는 원본 카메라다. '어떤 과일'이 가장 맘에 드는가?)
예쁘고 맛있게 기록되는 음식 사진들이 차곡차곡 쌓일수록, 나는 더 그러고 싶어 졌다. 좋은 시간에는 늘 음식이 등장하는 법. 그리고 그 때를 푸디로 기록하는 것이 습관이 되었다. SNS나 맛집 포스팅을 하는 것도 아니고 그저 내 앨범 속에만 조용히 모아둘 뿐이지만, 그냥 눈 앞에 음식을 보면 최대한 그럴싸하게 사진을 찍고 싶은 것이었다. 사진으로 예쁘게 포착하는 그 순간이 좋았다. 푸디는 그 작업을 매우 쉬운 방식으로 도와줬다. 앱을 켜고 슥슥 손가락을 움직여 음식과 분위기에 걸맞은 필터를 고르기만 하면, 음식이 놓인 내 앞의 풍경은 화장을 막 마친 뽀얀 모습으로 기록되었다.
푸디와 함께 지난 일 년 간을 보내면서 내 앨범은 꽤 많은 음식 사진들로 채워졌다. 음식 사진의 지분이 그 어떤 종류의 여타 사진들보다도 많아졌다. 돌이켜보니 좀 우습다. 잠시 씁쓸해지려고도 했다. 지나온 시간들 중에서 중요한 것들이 대부분 음식일 뿐이었나. 내가 즐겁게 느끼고 남기고 싶은 순간들은 왜 음식에 치중해 있을까. 난 요리사도 아니고 미식가도 아닌, 그저 맛있는 걸 즐기는 평범한 사람일 뿐인데 말이다. 푸디는 내 삶의 의미있는 기록들을 무엇으로 채울지에 대해 상당한 영향력을 발휘했다. 내 기쁨, 추억 그리고 그 때마다 등장하는, 음식.
어쩌면 푸디 사진들로 채워진 앨범은 내가 평범한 사람이라는 걸 증명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특별하거나 다이내믹한 일들이 딱히 많지 않은 그저 그런 일상 속에서 맛있는 음식, 그걸 즐기는 순간이야말로 소중하다. 혹자는 그런 소소한 기쁨이 행복이라고도 한다. 맛있는 음식 한 입이 지루함이나 우울함을 달래는 힘은 또 어떠한지. 매일 보는 책상이나 사무실의 풍경, 매일 걷는 아스팔트 길에 비해 알록달록한 음식의 색감은 아주 사소하지만 효과적인 기분전환이다. 게다가 그 음식을 함께 나누는 소중한 사람이 있었다면, 그만큼 기록의 당위성을 지닌 시간도 없을 것이다. 한 끼 식사, 디저트 한 조각을 담은 음식 사진은 남이 보기에 특별할 수 없지만, 그래서 평범한 누군가의 매일에 거리낌 없이 콕콕 박혀있을 수 있다.
한 컷의 사진은 무언가를 기록하기에 더없이 간편하다. 푸디라는 매개체는 조금 더 그럴싸하게 기록하고 싶은 욕구와 음식이라는 일상적인 대상의 결합이다. 글을 쓰는 이 자리에서 먹다 남은 커피 사진을 한 장 찍었다. 사진의 이름은 '바삭바삭한 커피'가 되겠다. 그냥 지금의 마음과 '바삭바삭'하다는 색감이 맘에 들었다. 인과관계는 모른다. 그저 그렇게 생각한 내 느낌, 내 경험이 중요하다. 훗날 앨범을 뒤적이다 지금 이 순간은 이 사진으로 기억해내겠지. 무엇인들 어떠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