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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따비 Mar 13. 2017

01. '카톡하다'

카카오톡  - 관계

스마트폰으로 매개된 삶을 진단하는 여정에서 그 첫 번째 상대를 정하는 것은 전혀 어렵지 않았다. 사실 과장을 조금 보태면, 나는 '이것'에 대해 말하고 싶어서 이 프로젝트를 의욕적으로 구상해냈는지 모른다. 국내 스마트폰 유저의 8,90%가 사용한다는 바로 그 앱, 카카오톡이다.


카카오톡에 대한 수다는 단 한 편의 글로 부족하다. 내 하루, 내 스마트폰 이용의 지분의 최대 주주이니 경험의 역사는 길고 겪어온 변화도 한둘이 아니다. 게다가 카카오가 단순 채팅/메신저 기능에 그치지 않고 여러 서비스와 사업을 확장하면서 더욱 다양한 얼굴로 내 생활 속에 침투하는 모양새다. 그래서 우선은 카카오 본연의 기능인 메신저에 집중해보려 한다. 카카오가 재편한 '관계'에 대해서다.



# "카톡해": 커뮤니케이션의 재정의



고유명사가 일반명사가 된 것만큼 그 브랜드의 강력한 힘을 알려주는 척도도 없을 것이다. 친구와 헤어지며 "안녕" 대신에, 집을 나서는 나를 배웅하는 엄마에게 "전화할게요" 대신에 우리는 이렇게 말한다. "카톡해", "카톡할게", "카톡했어?", "카톡 못 봤어.". 어느 순간부터 '카톡'이란 단어는 '연락'을 총칭하는 모든 단어들을 대체했다. 여기에는 음성통화보다 모바일 채팅을 훨씬 선호하게 된 현상도 크게 한몫을 했다. 이제 타인과의 커뮤니케이션은 모두 '카톡으로 통한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라는 오랜 명제를 생각하면 조금은 섬뜩하다. 카카오톡, 이 하나의 앱에 나의 사회적 욕구들은 지금 거대한 빚을 지고 있는 셈이다. 작년 경남 일대의 지진으로 카카오톡이 마비됐을 때나 얼마 전 카카오톡 시스템 자체의 문제로 메시지 전송이 몇 분 간 불가능했을 때, 그 짧지만 강렬던 무력감을 기억하고 있다. "카톡이 안 돼"라는 말은 단순히 '너랑 연락이 안 돼'라는 직관적인 의미에만 그치지 않는다. '카톡하다'에 담긴 의미는 생각보다 훨씬 풍부할 수도 있다.


아침에 눈을 뜨면 알람을 끄자마자 밤새 온 카톡 메시지를 확인한다. 취침 전, 온갖 앱과 포털 서핑을 끝내고 나면 맨 마지막으로 혹여나 그새 와있을 신규 카톡 메시지를 점검한다. 그리고 잠이 든다. 이렇게 나의 하루는 카카오톡으로 시작하고 어김없이 끝이 난다. 나조차도 내게 와있는 새로운 메시지가 뭐가 그리 궁금하여 전전긍긍하게 되는지 알 수가 없다. 습관처럼 그리고 일상으로 '카톡하는 시간'은 하루에 스며들어 있을 뿐이다. 누군가와 대화를 주고받는 짧은 순간순간들이 촘촘하게 내 하루를 함께 이뤄나간다. 그것이 자연의 이치인 듯 너무나 당연스러워서 카톡과 함께 존재하는 삶이 마치 원래 늘 그랬던 것 같다. 그리고 이는 눈을 뜨고 있는 동안 소통의 촉과 욕구와 감각들이 늘 깨어 있음을 의미한다. 언제 어디서든 (불특정의) 당신을 향한 나의 커뮤니케이션 회로는 ON 상태다.


커뮤니케이션 자체가 내 일상의 구성에 너무 깊숙이 관여하게 되었다. 카톡하는 대상이 구체적으로 누구인지보다 중요한 것은 그 누구와도 카톡할 수 있다는 상태이다. 내가 원하는 시간에 원하는 상대와 이야기하고자 하는 욕구는 항시 충족되어야 마땅한 것이 되었다. 카톡이 정상적으로 작동되지 않는다면 일상에 곧 균열이 생긴다. 강제적 단절은 나를 온전히 낯선 상황으로 몰고 갈 만큼 위협적이다. 생체 시계가 고장 난 것처럼 카톡의 '불통 가능성'은 곧 두려움과 불안함을 일컫는다. '카톡한다'는 것, 커뮤니케이션한다는 것의 존재감은 워낙 커서 이렇게 스스로가 인지하고 의문을 가질 정도가 되었다. 한편으론 내 일상과 이미 분리해서 생각할 수 없는 정도에 이르러서 비판이나 분석 따위가 무용해졌기도 하다. 카카오톡과 나의 삶을 거듭 되내어보며 분명하게 알게 된 점은 하나 있다. 기술적, 환경적 여건만 마련된다면, 커뮤니케이션의 욕구는 자극 앞에 속수무책이라는 사실이다. 그래서 그 욕구라는 게 무한히 확장되고 만다. 카카오톡에 지배당한 나의 하루처럼.



# 관계: 너무 깊고 또 너무 얕은


출처: 카카오 블로그


'관계 맺다'의 또 다른 이름은 '카톡 친구하다'와도 같아졌다. 새로 알게 된 그/그녀가 나와 연결되었음을 알려주는 것은 연락처 저장보다 카카오톡 친구 목록에 'new'와 함께 뜬 그/그녀를 확인했을 때다. 이로써 커뮤니케이션 대상이 또 한 명 는다. 카카오톡이라는 매개로 나와 늘 연결되어 있는 어떤 사람이 추가된 것이다. 만나기는커녕 대화를 나누지 않아도 이 관계는 완전히 끊기지는 않을 예정이다. 그/그녀를 굳이 '숨김', '차단' 처리하지 않는 이상 어쨌거나 나의 '친구'로 명명된 채 사라지지 않기 때문이다. 관계를 맺는다는 것, 참 싱거우리 만큼 가벼워졌다. 이것은 위험한 발언일까. 그렇다면 가볍다기보다 쉬워졌다고 말하면 어떨까. 소통이 단절되더라도 관계는 지속된다. 커뮤니케이션이 포화된 세상에서는 '관계들'도 과포화 상태다.


긴밀한 관계는 더욱 긴밀해졌다. 너무 긴밀해서 때때로 피로할 때도 있지만, 이 흐름을 거스르긴 힘들다. 왜냐하면 특별한 일이 없는 한 나의 커뮤니케이션 접수대(카카오톡)는 언제나 대기 중이니까. 부모님에게, 친한 친구에게, 애인에게 너무 늦지 않은 카톡 답장이 암묵적인 예의가 되었다. 새로운 단체에 가입하면 마땅히 '단톡방'으로 초대되어야 한다. 그곳에서 커뮤니케이션은 시공간을 가리지 않고 진행 중이다. 텍스트에만 한정되지 않고 이미지, 동영상, 실시간 기사를 공유할 수 있게 됐으니 함께 나눌 얘깃거리도 넘쳐난다. 카톡 대화가 많으면 굳이 만나지 않아도 친밀감이 쌓인다. 반면 답장이 너무 늦으면 곧 서운해진다. 때때로 '그/그녀는 대체 왜 아직까지 내 카톡을 보지 않을까'가 일생일대의 중요한 문제가 되고, 그게 잦아지면 '우리의 관계'가 진지하게 의심된다. 백발백중 '넌 나를 아끼지 않는구나'라는 논리가 설득력을 얻는다. 단지 카톡을 잘 하지 않는다는 이유만으로도 그럴 수 있다. 관계는 카톡으로 맺어지고 두터워졌듯, 카톡으로 느슨해지고 위험에 처한다.


동시에 나의 관계들은 구체적이고 가시적인 방법으로 관리 가능한 대상이 되었다. 상위에 놓인 채팅창들은 누구와의 대화인지, 마지막 대화 날짜는 언제인지가 괜찮은 척도로 자리잡은 덕이다. 내가 인연을 맺은 사람들과의 친밀도를 한눈에 파악하게 해주는 믿음직한 자료다. 반면 친구 목록에 이름만 차지하고 있는, 잠시 스쳐 지나가다시피 한 이들을 그대로 둘지 말지 고민에 빠지곤 한다. 활성화된 채팅창이 10개도 안 되는 데 비해 '친구'의 숫자가 너무 크다. 그런데 숨김 처리를 할까 했다가도 종종 머뭇거린다. 앞으로도 대화 한 번 안 나눌 거라는 걸 알지만 그럼에도 새롭게 바뀐 프로필 사진이 궁금해서 들여다보게 된다. 카카오톡이 알게 모르게 약간의 관음증 마저 자극하는 모양이었다. 그렇게 관계라고 하기에도 민망한 관계들이 오늘도 끊기지 못하고 얇은 생명력을 이어간다. '완전히 끊어낸다는 것' 또한 참 어려워졌다. 심지어 상대는 알지 못하고 나 혼자 끙끙대는 것일지도 모르는데.



#


"카톡, 카톡." 이 명랑한 기계음이 내 하루를 채우는 생기 있는 신호임을 부정할 수 없다. 누군가가 나에게 말을 거는 반가운 소리이고, 나와 지인 간의 연결이 지금 이 순간 무사하다는 안심의 소리다. 카카오톡의 보편화 덕분에 끊기지 않는 막대한 연결성의 시간을 살고 있다. 그 연결성을 지속하고 시시각각 적당히 반응해야 할 의무에 지칠 때도 있지만, 그에 대해 불평은 할지라도 반역을 일으킬 생각은 차마 할 수가 없다. 그 반역은 자칫 일상의 무너짐 혹은 타인과의 관계로써 안정된 나의 존재감을 흔들 수도 있는 것이다. 일부러 답장 시간을 조금 늦추더라도 나는 언젠가는 답장해야 할 것임을, 그리고 너무 긴 기다림을 주지 않고 그 암묵적 의무를 따를 것임을, 습관이 된 내 행동을 알고 있다. 그게 내가 오늘 커뮤니케이션하는 방식이고, 관계를 해치지 않는 마땅한 원칙이다.


오늘도 카카오톡은 무사작동했고 내 시간들은 수많은 커뮤니케이션들과 뒤섞여 흘렀다. 글을 쓰고나니 새 메시지들이 잔뜩 대기 중이다. 잠들기 직전까지 대화를 놓지 않는 것. 자유이기도 하고 의무이기도 한 이 커뮤니케이션 방식을 우리는 '카톡하다'라고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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