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비따비 Mar 17. 2017

05. 당신의 취향은 #__입니다.

왓챠 - 영화감상 도우미

영화도 좋아하고 드라마도 좋아한다.

(책도 좋아하고 공연도 좋아한다.)

뭐 볼 거 없나 찾아볼 때마다 원하는 결과를 얻기가 쉽지 않다.

나 같은 사람이 좋아할 앱이 있다.

왓챠(WATCHA)다.



# 나도 몰랐던 내가 규정되다.


해외에 넷플릭스와 아마존이 있다면 국내에는 왓챠가 있다. 왓챠에 지금껏 봤던 영화나 드라마에 별점을 매기면 수시로 내 정보를 업데이트하면서 내 취향에 맞는 영화와 드라마를 추천해준다. 핵심은 그것이다. 빅데이터에 기반해 나의 영화/드라마 취향이 무엇인지 정의해준다는 것. 나는 왓챠에서 영화 카테고리를 주로 이용하고 있으니 글의 초점을 영화에 한정하기로 한다.



이전까지 그동안 내가 봤던 영화들은 그저 기억 여기저기에 흩어져 있을 뿐이었다. 영화관에 가는 게 기념이던 시절, 애써 의식해서 모은 영화 티켓이 영화에 대한 기록의 전부였다. (그조차도 빳빳한 '티켓'에서 못난 '영수증'으로 형태가 변하면서 수집의 뿌듯함이 크게 줄고 말았다.) 그러다 왓챠를 접하면서 나만의 영화 데이터가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왓챠를 처음 설치했을 때는 지금껏 본 수많은 영화들에 일일이 별점을 매기는 작업이 필요했는데, 마치 기억 저편에 잠재해 있던 추억들을 하나둘 발굴하는 기분이었다. 이윽고 왓챠는 그 데이터를 모아 가상의 영화 서재를 만들어줬다. 손에 잡히지는 않아도 내가 매긴 별점들과 함께 깔끔하게 정리된 보고였다. 약 20년에 걸친 영화에 대한 기억들을 정리하는 일이, 그렇게 어느 한 날, 매우 쉽고 간편하게 끝마쳐졌다.


책장과 DVD로 구성된 현실의 서재가 그저 모음집에 그칠 수 있는 반면, 웹 상의 서재는 하나의 '데이터'가 된다. 왓챠는 나의 취향이 #드라마 #실화기반 #소설원작 #픽사 #사랑 이라고 명명했다. 내 취향을 스스로 분석해본 일이 드물어서 그것은 다소 놀라운 발견이었다. 그리고 납득할 수밖에 없었다. 내가 직접 입력한 데이터들에 기반해 말해준 것이었으니까. 그들이 정해준 분류 기준에 따라 취향은 그렇게 정의되고, 나는 나의 일면을 조금 더 잘 알게 된 듯한 기분이 들었다. 왓챠가 정리해주지 않았다면 굳이 의식하지 않는 한 아마 평생 몰랐을 무엇이었다. 내 취향은 예나 지금이나 똑같이 존재해 왔지만 통계와 분석으로 이뤄진 알고리즘에 의해 비로소 드러난 셈이었다. 단지 수면 위로 끌어내었다기보다, 그들은 나를 설득력 있게 '규정'했다. '실화나 소설을 기반으로, 픽사가 만들었을, 사랑 이야기 있는 드라마'. 아, 난 정말 그 영화에 끌릴 것 같다.



# 취향이 더욱 그 취향으로



괜찮은 영화를 찾을 때 왓챠를 애용하게 되었다. 넷상에는 수많은 리뷰와 별점들이 있지만 문화적 취향이란 정말 천차만별이어서 누구의 평도 온전히 신뢰하기 어렵다. 개인화된 추천 서비스는 다른 어떤 카테고리보다 문화에 필요했는지 모른다. 실제로 왓챠가 추천해준 영화들은 정말 괜찮았다. 그래서 최근 보게 된 게 '터미널'과 '소셜 네트워크'였는데, 전자는 스필버그의 다른 화려한 필모에 밀려 잘 언급되지 않던 것이었고 후자는 개봉 당시 꽤 낮은 평점에 관람을 포기했었다. 십 년도 더 된 영화와 관람을 포기하고 잊고 지냈던 영화를 다시 끄집어낼 수 있었던 것은 다름 아닌 왓챠가 다음과 같이 말해주었기 때문이다. "평균 별점은 낮아도 OOO님 만큼은 높은 평가를 줄 작품!" 남들이 뭐라 하든 어떤가. 이 영화들과 보낸 시간은 만족스러웠다.


시간이 지나면서, 왓챠가 규정해준 나는 더욱 '그런 나'가 되었다. 더욱 드라마를 봤고 픽사 애니메이션을 더 많이 알게 되었다. 내 이전의 기록들과 어긋나는 작품들은 낮은 평점을 예상하고 있으니 선뜻 손이 가지 않았다. 그래서일까. 어느 순간부터 추천 목록에 뜨는 영화들이 '거기서 거기'라는 느낌을 받는다. 웬만한 작품들을 섭렵하고 나니 상위 별점이 예상되는 작품들 몇몇이 좁은 카테고리 안에서 돌고 도는 것이다. 왓챠가 추천해줘도 이상하게 처음부터 그다지 끌리지 않는 작품들도 있다. 그 이유는 다음 중 하나일 테다. 아직 추천 시스템이 충분히 정교하지 않거나, 논리적으로 설명되지 않은 인간의 예측 불가능함이 있거나, 지금 보이는 정보들만으로는 매력도를 어필하는 데 충분하지 않거나. 또는 이런 의문도 생긴다. 내가 입력한 데이터가 정말 나에 대한 신뢰할 만한 정보였을까. 내가 매긴 평점들이 진짜 나의 취향을 정확히 반영하고 있었을까.



# 별점 추천, 그 이후



왓챠의 영화 추천 기능은 현재로써 더할 나위 없어 보임에도 불구하고, 앞으로 '무언가 더' 있으리라는 희망은 남아있다. 지금의 서비스가 끝일리가 없다. 왓챠가 더 많은 서비스들을 섭렵하고 이용자들의 데이터들이 더 많이 쌓이며, 개발자들의 결과물이 더 정교해질수록 왓챠는 지금보다 훨씬 정확히 나의 문화적 취향을 반영하게 될 것이다. 지금의 데이터는 별점을 위주로 기반하고 있지만 이용자가 쓴 한줄평 속 단어들, 왓챠 플레이에서 특정 콘텐츠에 머문 시간, 왓챠 내 '친구'들 간의 커뮤니케이션 내용 등도 나를 구성하는 요긴한 데이터가 될 수 있다. 추천 메시지도 자세하게 풀어갈지 모른다. "OO의 연기가 O번의 짜릿함을 선사할 겁니다.", "이 영화는 반전과 심리전은 탁월하지만 주연배우의 캐릭터가 당신의 취향이 아닐 수 있겠군요."


분명 현재 나의 취향은 #드라마 #실화기반 등으로 설명될 수 있다. 하지만 그것만은 아니다. 훨씬 더 다양한 요소들이 개입해 있음이 분명하다. 취향에 얽힌 어떤 사회적, 문화적 혹은 아주 개인적인 맥락들을 배제한 채 규정된 취향은 한계를 지닐 수밖에 없다. 왓챠와 같은 서비스들은 우리를 좀 더 근본적으로 이해하고자 할 것이다. 그것은 어떤 방식으로 실현될까. '그들이 말해줄' 나의 문화 취향, 나아가 앞으로 그들이 구성해줄 문화 경험이 궁금해진다.


작가의 이전글 04. 일심동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