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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따비 Mar 19. 2017

06. 시간을 삼키는 무한루프

유튜브 - 맞춤 영상 서비스

# 밤마다 잠옷 입고 하는 여행


몇 달 전부터 습관이 하나 생겼다. 잠들기 전 침대에 누워 편한 자세를 취하고 폰으로 유튜브를 켜는 것이다. 그 날 하루 동안 내가 구독한 유튜버들이 새로 올린 영상을 보다 보면 3,40분이 금방이다. 길어야 5분을 넘지 않는 영상들인데 어느새 하나가 둘이 되고 둘이 곧 열을 넘어가는 것이다. 계획했던 것보다 취침시간을 훌쩍 넘기고 나서야 자긴 자야겠다는 새나라 어린이의 의지로 아쉽게 폰을 끈다. 정신없는 하루를 마무리하는, 조용하고 어스름한 늦은 밤, 포근한 침구 속 아늑한 느낌,  세상 스트레스를 잠시 잊어버릴 수 있는 때, 그리고 내가 좋아하는 콘텐츠들의 향연. 하루 중 손꼽아 기다리는 시간이 아닐 수 없게 됐다.



유튜브가 매일의 일정한 지분을 차지한지는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이전까지는 그저 서핑을 하다 영상을 발견하면 어김없이 유튜브 계정이었고 그것 하나 달랑 보는 데 그치곤 했다. 생활 속에 동영상이 그리 깊숙이 들어와 있지 않던 시절이었다. 그리고 시작은 뮤지컬 영상이었던 것 같다. 뮤지컬에 한창 빠져 지낼 때 직접 공연장을 가지 않으면 즐길 수 없는 무대나 음악이 아쉬웠던 차, 전세계 뮤지컬 콘텐츠를 다량으로 모아놓은 유튜브는 마른 사막의 오아시스 같은 존재였다. 영상을 하나 보고 나면 옆에 '다음 재생 영상'이나 추천 영상이 계속 뜨는 것도 신세계였다. 그 때나 지금이나, '덕질'에 유튜브는 최상의 플랫폼이다. 경험 상 뮤지컬이 그랬고, 연예인 덕질이 그랬고, 최근 빠져있는 베이킹도 그랬다. 뭔들 아닐까. 세상을 빨아들이는 블랙홀이 있다면, 그건 유튜브다.



# 나를 머물게 하는 무한루프의 알고리즘 



거대한 바다에 풍덩 들어갔는데 아무런 움직임 없이 가만히 있어야 한다면 어떨까. 지루하고 공포스럽기까지 할 것이다. 하지만 유튜브의 바다에선 잔잔하게 파도가 인다. 내 기분과 취향에 맞춰 매우 쉽게 항해하도록 인도해준다. '맞춤 영상' 서비스다. 셀 수 없이 많은 자료들 중에서 '지금 그걸 보고 있는 네가 관심 있을 만한 영상들'이 바로 옆에 줄줄이 대기하고 있다. 유튜브의 마력은 여기에 있다고 본다. 밤늦게 자려고 누워서 나도 모르는 새 10분이 20분, 30분이 되는 건 모두 이 매우 친절하고 거부할 수 없는 서비스 때문이다. 내가 관심 있을 만한 것들을 꼭 전면에 내세워 놓는다. 때로는 홈 화면에 접속했을 때 그 취향 저격의 막대한 양의 영상들이 쏟아짐에 기함할 때도 있다. 어쨌든 유튜브 세계는 개인별로 구축되었고 각자가 재미있어야 할 얘기들이 차고 넘치게 되었다. 


유튜브는 그 방대한 양의 자료들을 카테고리화 하느라 굳이 애쓰지 않은 것이다. 그건 감당할 수 없는 작업일뿐더러 어느 누구도 충분히 만족시킬 수 없는 방식이었을 것이다. 대신 개인화, 추천 기능에 맞춰 영상은 이용자 개개인의 책상 위에 자동으로 분류되었다. 취향과 관심사가 바뀌면 발빠르게 반영되었다. 심플하게 영상들로 가득 찬 레이아웃은 온전히 나에게 맞춰 실시간으로 업데이트되었다. 그렇게 내가 원하고 궁금했던 이야기들, 혹은 몰랐지만 관심 있었을 이야기들이 클릭 한 번에 끊임없이 펼쳐진다. 잘 정립된 맞춤/추천 알고리즘 하나로 인해 사람들은 알아서 신나게 유튜브 세상을 누리고 있다. 그건 단순히 검색의 피로를 덜했다는 차원에만 그치지 않는다. 영상에서 다음 영상으로 이어지는 무한루프 속에서 시청 경험은 하나의 스토리를 이룰 수 있다. 경험의 만족도를 극대화하고 더 깊고 무한한 몰입을 이끄는 힘이 더해진다.



#


그동안 IT 업계의 키워드가 '모바일'이었다면 이제부턴 '영상'이 될 것이라 한다. 사람들의 주요한 콘텐츠 소비방식이 텍스트에서 이미지로, 이제는 이미지에서 영상으로 바뀌었다. 유튜브 설립자는 알고 있었을까. 기대는 했겠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으리라. 환경이 어떻게 변할지, 사람들의 경험이 어느 방향으로 적응할지 정확히 예견하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많은 기술적, 환경적 장벽들이 무너지고 2017년 지금, 동영상 시대의 초입을 지나고 있다. 네이버와 카카오가 본격적인 동영상 사업에 들어갔고 유명한 유튜버들의 몸값은 웬만한 중소기업에 못지않다. 2,3분 길이의 영상 시청은 일상적인 경험으로 자리 잡았다. 하지만 이 영상의 활황 속에서 뒤늦게 사업에 뛰어든 이들은 정면돌파가 쉽지 않을 것이다. 유튜브가 선점해놓은 자리는 너무 견고하고 거대하다.


글을 쓰며 돌이켜보니, 내가 좋아하는 콘텐츠를 마음껏 볼 수 있다는 건 어느 순간부터 새롭게 누리게 된 행복이다. 그 초창기 도구가 지금은 유튜브인 셈이다. 유튜브의 자동 추천 기능은 나를 그런 식의 소비를 즐기도록 길들여 놓았다. 하지만 변화는 계속될 수밖에 없고, 언젠가는 현재 유튜브의 맞춤 서비스를 능가하거나 혹은 다른 방식의 흥미로운 경험을 줄 새로운 서비스가 등장할 것이다. 지금보다 고도화된 추천 기능 그 이상의 무엇. 1,2년 후만 해도 잠자기 직전 나의 풍경은 또 달라져있을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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