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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따비 Jul 11. 2016

복수의 순간, 아름다운 노래의 역설

스위니 토드, 'Pretty Women'


훌륭한 뮤지컬 음악은, 있어야 할 곳에 있다.

그곳이 제 자리라는 것을 으스대며 말할 필요도 없이.

훌륭한 뮤지컬 음악은, 대사로 차마 닿지 않을 묘한 영역을 건드린다.

찰나의 분위기와 감정이 효과적으로 무르익도록.




George Hearn(스위니 토드) & Edmund Lyndeck(터핀 판사)


아름다운 아내를 죽게 하고 하나뿐인 딸까지 빼앗아간 남자. 스위니 토드가 다시 이발소를 연 것은 오직 단 하나의 목표, 그에게 복수하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마침내 그 이발소를 찾은 터핀 판사. 스위니의 딸 조안나와 결혼하겠다는 더러운 욕망을 떠벌리며 뻔뻔스럽게 웃는다. "바짝 깎아드리죠." 서늘한 말과 함께 살인의 전초전과 다름없는 면도가 시작된다.



# 죽음을 부르는 휘파람 소리


Turpin: 자네 오늘 기분 좋은 일이 있나
Sweeney: 무척 설레는 맘이 저에게도 전해져요
Turpin: 그래 사랑의 불꽃 여전히 피를 끓게 가슴 터지게 해


면도를 기다리는 터핀의 흥얼거림 위에 스위니의 휘파람 소리가 얹힌다. 이발사에게 손님은 묻는다. "자네 오늘 기분 좋은 일이 있나?" 이에 만족스러운 대답을 듣고선 손님은 긴장을 한껏 푼다. 목을 드러내고 누운 터핀의 얼굴에 면도크림을 바를 때, 고요한 공연장에는 경쾌한 휘파람 소리만이 울려 퍼진다. 침묵과 노랫소리가 어우러지고 무방비함과 잠재된 공격성이 공존한다. 침묵을 두드리는 멜로디는 발랄하지만 지극히 서늘하고 어쩐지 불쾌하다. 이 기묘함은, 증오의 대상 앞에서 휘파람을 불고 있는 스위니의 복합적인 마음을 닮았다.



# 복수의 순간, 아름다운 노래의 역설


반주가 낮게 깔리고 이발사는 칼을 집어든다. 복수의 순간이 임박했다. "꼭 자기 엄마처럼 예쁘죠." 의미심장한 스위니의 말에 "뭐라고?", 터핀이 몸을 일으키려는 찰나 긴장감에 덩달아 숨을 멈출 때, 이와 이질적인 선율의 노래가 시작된다. "Pretty Women-,"


아름다운 아가씨들 고결하고 예뻐 수줍은 듯 춤을 추며 미소를 짓네
신비로운 눈동자 창밖을 볼 때 세상이 다 밝아져
달빛 아래 (매혹적인) 머릴 빗는 (몸짓) 그 모습이 (영원토록) 아름다운 (아가씨들)


목에 칼을 들이댈 상황에 시작되는 아름다운 노래라니. 그것도 복수할 남자와 당할 남자가 부르는 듀엣, 제목은 'Pretty Women". 이 노래는 여인의 아름다움에 도덕성과 인간다움마저 내팽개친 한 남자의 노래요, 그런 그를 어르고 달래는 또 한 남자의 눈속임 노래다. 긴장을 조성했던 순간을 탁 치고 나와 느닷없이 흐르는 서정적인 선율은 역설적인 아름다움으로 이 장면만의 스릴을 만들어낸다. 도저히 어울려서는 안 될 두 남자의 하모니는 또 어찌나 묵직한가. 그 묵직함 만큼 기묘한 아이러니는 줄곧 우리의 눈과 귀를 붙잡아둔다. 아름다운 여인들을 찬양하던 노래가 복수의 타이밍으로 치닫는 마지막 순간까지 아슬하게 줄을 탄다.



# 마땅히 있어야 할 음악이 그 장면을 설명하다


<스위니 토드>의 음악을 한 문장으로 묘사하기는 어렵지만, 그 음악의 색깔을 확인하고 싶다면 이 노래를 들어보길 추천한다. 'Pretty Women'은 이 뮤지컬에서 가장 팽팽한 긴장감을 의도했을 한 장면의 넘버다. 이 뮤지컬이 지극한 잔혹사이자 스릴러의 부류임을 염두에 둔다면, 'Pretty Women'에 가득한 서정성은 참으로 뜻밖이다. 이 난데없음을 아이러니의 미학으로 승화시킨 작곡가의 천재성에 박수를! 아름다운 선율, 복수로 묶인 두 남자의 하모니, 그 사이를 스쳐 지나가는 오싹한 휘파람 소리와 몇 번의 싸늘한 표정…. 팽팽함과 느슨함을 능수능란하게 조율하는 음악은 마치 이 장면이 이 뮤지컬에서 왜 있어야 하는지를 증명해주는 것만 같다.

 

영화 <스위니 토드>(2007)의 'Pretty Wom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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