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격, 화생방 그리고 야간 사격.

여섯 번째 편지, 진주 기본군사훈련단, 2016.06.14

by 김형우

To. 가족 + 콩


오늘은 훈련소 수료식에 관련된 안내문을 집으로 보내준다고 해요. 안내문은 보통 군사 우편보다 빨리 보내준다고 해서 동봉할 편지 한 장을 얼른 적었습니다. 봉투 안에 안내문이 있어서 한 장 정도로만 글을 써야 할 것 같아요. 간단한 소식이랑 근 일주일 간 무슨 일들이 있었는지나 짧게 써볼게요.


훈련소 4주 차, 이제 수료가 2주도 안 남은 우리는 정말 잘 살고 있어요. 10일 정도 남은 훈련에 행군이 있어서 많이들 걱정하긴 하고 있지만 걱정보다는 수료가 다가오고 있다는 사실에 즐거워하는 모습이 더 자주 보이네요. 수료 후에 먹고 싶은 것, 짧은 2박 3일 휴가 동안 하고 싶은 것, 그런 것들을 상상하며 우리는 수료일을 기다리고 있어요. 나도 옆 친구들을 따라 이런저런 리스트를 적어보고는 있는데, 뭘 하느냐보다는 콩이와 가족들을 만난다는 것이 더 설레서 딱히 리스트에 진전이 없네요.


지난 일주일 동안은 뭐랄까 정말 군인다운 훈련이 가득했던 것 같아요. 유격 훈련과 화생방 훈련, 야간 사격과 각개전투 훈련. 이름만 들어도 오오 우리는 군인이구나 싶은 그런 굵직굵직한 훈련들이 바로 지난주에 자리 잡고 있었어요. 쉬운 훈련은 없었지만 그래도 못 버티고 그만 둘 만한 훈련은 아니라서 최대한 가뿐한 마음으로 이겨내고 있습니다. 유격 훈련은 모든 장애물을 통과한 것은 아니지만 대부분은 쉽게 통과했고, 장애물 통과 사이사이 알차게 채워 넣어진 유격 체조는 정말 정말 힘들었지만 그래도 지금 살아있는 것을 보니 잘 이겨낸 것 같아요. 온몸 비틀기라는 극악무도한 자세는 당최 누가 만든 것인지. 하.


화생방 훈련은 두려움과 호기심이 공존하는 묘한 훈련이었어요. 공군의 화생방 훈련은 일단 방독면을 쓰지 않은 체로 가스실에 들어가는 구조라 공포의 CS 가스를 마음껏 맛볼 수 있었죠. 이 훈련은 조별로 나누어서 문이 열리면 다 함께 들어간 후 지시에 맞추어 방독면을 쓰는 훈련이에요. 숨만 참으면 될 줄 알았던 사랑스러운 인간미를 겸비한 저는 들어가자마자 눈에서 폭포를 흘리긴 했지만, 방독면을 쓴 후에는 숨 쉬는 것도 눈도 상당히 편안해져서 신기했던 기억이 나네요. 군대에서는 이 CS 가스 맛을 두고 딸기맛이냐 체리맛이냐 하는 논란이 있다는데 저는 정말 굳이 비교하자면 레몬맛인 것 같았어요. 화생방 훈련은 자대 가서도 계속한다고 하는데 '할 수는 있어도 달갑지는 않다'라는 표현이 정말 어울리는 것 같네요.


또 하루는 야간사격 훈련에 더해 사격 부사수를 한 날도 있었어요. 시간이 조금 지나 친해진 조교님이 사격장에 먼저 가서 함께 수다를 떨려는 목적으로 부사수 소대를 자청한 것인데, 막상 도착하니 소대장님들이 훈련 준비를 하러 오셔서 억울하게 일만 하는 꼴이 되었죠. 한두 시간 계속 화약냄새 맡는 것은 좀 피곤하긴 했지만 탄피 세는 일이나 총소리 듣는 게 의외로 재미있어서 즐겁게 했던 것 같아요. 야간 부사수라 랜턴을 들고 탄피를 세는데 숫자 딱 맞을 때마다 느껴지는 그 안도감이란, 편지를 쓰면서 다시 생각해보니 참 소소한 행복을 잘 찾아내는 것 같네.


아무튼 나의 3주 차는 이런 일들로 가득했어요. 그것 외로는 뭐 밥도 잘 먹고, 운동도 잘하고, 별 탈 없이 훈련도 잘 받고, 생각보다 훈련소 생활을 너무 잘 보내고 있는 것 같아요. 걱정하던 우리 아가씨나 엄마, 아빠는 신기해할지도 모를 정도로 잘 보내고 있죠. 또 많이 건강해져서 나갈 것 같아요. 이미 살도 많이 빼고 근육도 좀 붙었거든요. 기대해주세요.


요즘 편지 보면서 정말 즐거웠어요. 누나 편지 보면서 행복하기도 했고, 또 엄마가 써준 '잘 커줬다'는 말에 힘도 나고 감동받기도 했어요. 내가 언젠가 그런 편지 써서 돌려줄 테니 기다려주세요. 사랑해요 모두. 곧 볼 수 있길 바라요.


2016.06.14


*저를 제외한 모든 편지 수령인들의 이름은 가명이나 애칭, 혹은 평소 좋아하는 호칭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여자친구의 경우, 콩/누나/아가씨 등을 사용할 예정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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