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게 적은 편지 세 장.

일곱 번째 편지, 진주 기본군사훈련단, 2016.06.15 - 06.17

by 김형우

To. 콩


아무래도 하루 중 누군가 가장 그리워지는 시간은 노을이 질 때가 아닌가 싶어요. 천천히 지난 시간을 돌이켜보면 언제나 우리는 공유하고 있는 것이 많았어요. 같은 곳을 걸었고, 같은 곳을 바라보았고 같은 것을 먹으며 같은 세상을 서로와 나누고 있었죠. 잠시 떨어져 있을 때, 늦은 밤 당신을 집에 데려다주고 투박한 지하철 소리에 몸을 얹어 한강을 건널 때도 나는 여전히 우리가 같은 공간 속에 있는 것만 같은 기분을 받았어요. 심지어는 우리가 각자의 할 일로 함께 있지 않을 때도, 내게는 그래도 우리는 같은 하늘을 나누고 있다는 감상적인 마음이 가슴 한 구석에 감싸여 있었던 것 같아요. 저 구름을 어디선가 당신도 볼 수 있겠지 라는 생각이었던 것일까요.


그런데 이렇게 먼 곳에 놓여 당신과 떨어져 있을 때면, 아무리 고개를 들어 하늘을 봐도 이 곳 진주의 하늘과 당신이 있는 서울의 하늘이 너무나 다를 것 같아서 조금은 서글퍼지는 것 같아요. 얼떨결에 느껴버린 거대한 거리감에 울적해지는 것일까요. 우리가 참 멀리 있구나 하는 체감. 하지만 하루의 기세가 한 풀 꺾이고 저 멀리 하늘이 설레어 발갛게 물들 때면, 나는 그 노을만큼은 당신도 같이 보고 있겠구나 라는 생각이 들어 마음에 작은 위안을 얻었던 것 같아요. 그렇게 노을이 질 때면 나는 콩씨 생각을 하기 시작했어요. 그렇게 누나를 그리워하는 방법 한 가지를 내 삶에 더하고, 보고 싶은 마음을 달랬네요. 사랑해요.


2016.06.15 - A.M. 05:00



To. 콩


어제는 조금 고된 하루였어요. 아침부터 '전투 뜀걸음'이라고 하는 훈련을 했던 것 때문이었을까요. 군복에 군화를 신고 헬멧과 탄띠, 수통 그리고 총을 들고 3km 정도를 구보로 뛰는 훈련인데 군장 무게에 총기 무게가 더해지니 모두가 힘들어하는 훈련이에요. 총기 무게만 해도 3kg 정도 되는 지라 체력 소모가 큰데, 속도를 유지하면서 끝까지 다 뛰고 나니 힘이 많이 빠지더라고요. 유격도 그렇고 이 훈련도 그렇고 매번 온몸이 구시렁거릴 정도의 후유증이 남아서 그 다음날 아침은 헤롱헤롱 한 상태가 됩니다. 그래도 오늘도 1 시간 정도 일찍 일어나 차분하게 누나한테 편지를 써요. 다리만 아프지 손은 안 떨려서 다행이야, 글씨가 떨리진 않네요.


어제부터는 누나가 준 편지지에 하루하루 무슨 일을 했고 무슨 일이 있었는지 적고 있어요. 1 시간 정도 일찍 일어나거나 공부 시간, 쉬는 시간을 조금씩 떼어내어 편지를 쓰는데 매일 하다 보니 누나와 대화를 하는 것 같은 기분도 드네요. 당신의 나날들은 괜찮나요? 내가 없는 일상과 내가 없어도 해야만 하는 일들. 세상에는 참 힘든 일이 많은데 누나가, 나와 당신이 그 모든 일들을 잘 해낼 수 있을지 가끔은 걱정도 됩니다. 물론 잘 하겠지만 여자친구 걱정이 많은 나를 이해해줬으면 좋겠어요. 입대하기 직전에 노래방을 가서 이적 씨의 '같이 걸을까'라는 노래를 불러준 적이 있는데 기억하나요? 지금 내가 당장 곁에서 손을 잡아줄 수는 없더라도, 언제나 같이 걸어가고 있다고 생각해주었으면 좋겠어요. 사랑해요.


2016.06.16 - A.M. 05:00


To. 콩


오늘은 드디어 종합평가시험이 끝났어요. 공군은 사실 훈련도 훈련 나름대로 중요하지만 자리에 앉아서 수업 듣고 공부하고 시험 보는 고통도 한몫하는 것 같아요. 조금 답이 헷갈리는 문제가 있긴 하지만 그래도 잘 본 것 같아 다행이에요. 점수가 잘 나오면 서울 쪽으로 자대 배치를 받을 수 있을 테니 점수가 잘 나오길 기대하고 있어요. 수료 외박 다음날이 시험이라는 이야기 들었어요. 데이트가 시험 끝난 후라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 시험이라면서 설레느라 공부 못하는 게 아닐까 걱정해야 할지 잘 모르겠네요. 그래도 부디 열심히 준비하고 있어주세요! 기분 좋게 함께할 수 있도록. 사랑해요.


2016.06.17 - P.M. 04:00


*저를 제외한 모든 편지 수령인들의 이름은 가명이나 애칭, 혹은 평소 좋아하는 호칭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여자친구의 경우, 콩/누나/아가씨 등을 사용할 예정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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