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지의 제왕, 그리고 생일

예순여덟 번째 편지, 공군 서울공항, 2017.02.19

by 김형우

To. 콩 아가씨


좋아하는 영화를 보러 가는 데 2시간 반. 그리고 영화 보는 시간 4시간 반. 돌아오는 시간을 제하더라도 7시간이나 걸렸던 하루. 같이 좋아하는 것을 함께하기 위한 그 날의 여정은 고되더라도 즐겁네요. 반지의 제왕, 그것도 왕의 귀환이 재개봉하다니. 지금 생각해보면 반지의 제왕이 재개봉한 것 그 자체도 놀라웠지만 하필 내 휴가 기간에 상영 중인 극장이 전국에 3곳밖에 없었고, 서울은 24시 이후 상영이라, 대구는 또 너무 멀고, 그나마 적당한 극장이 인천이라고 해 둘이서 인천으로 떠나게 된 것도 놀라워요. 그렇게 길고 피곤한 일정을 해내다니. 그럼에도 불구하고 참 즐거웠고, 그 시간과 노력이 전혀 아깝지 않았어요. 좋아하는 사람과 좋아하는 일을 하러 가는 일. 나는 아마도 내 생각보다 더 당신과 함께하는 시간을 좋아하나 봅니다.


이번 휴가는 정말 당신을 위한 마음으로 가득했던 것 같아요. 물론 내 생일이긴 했지만 내 생일에 축하받을 사람이 나 하나뿐인 것은 아니니까요. 친구와 함께하러 가면서도 당신이 좋아하는 향수를 살 시간을 내고, 또 다른 날에는 공부하느라 지친 당신을 위한 안마용품을 사고, 당신이 좋아할 음식을 찾고 당신이 좋아할 장소들을 찾고. 마침내 당신을 만나는 날이 와서 당신이 행복할 수 있도록 함께 했죠. 당신은 사랑받을 만한 사람이니까,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니까 나는 그 날들과 그 날들의 마음들을 가득 모아서 당신에게 안겨주었어요.


당신이 행복해하는 모습을 보며 나는 행복해했고, 내가 행복해하는 모습들을 보며 당신은 행복해했죠. 내가 받은 선물에는 행복한 당신의 모습이 사진처럼 선명히 남아 물이 들어요. 그런 나날들. 이번 휴가는 그런 나날들로 가득했던 휴가였던 것 같네요. 물론 중간중간 힘든 일들도 있었지만 함께하는 시간들로 매만지고 다독여, 나는 이 달고 소중한 휴가를 마무리지어요.


아마도 다음 휴가는 4월이 될 것 같아요. 누나의 시험이 끝나는 날이겠죠. 물론 8월 즈음에도 시험이 있겠지만 아주 잠시라도 마음의 긴장을 내려놓을 수 있을 때 나는 당신을 만나러 갈 거예요. 8주 정도의 시간. 우리 아가씨 졸업식날 외출을 나가 잠깐 볼 수야 있겠지만 조금 길게 느껴질지도 모르니, 이번 휴가 동안 쌓아둔 추억을 잘 담아두고 열심히 공부해 주었으면 좋겠어요. 이번 데이트가 아마도 우리의 마지막 겨울 데이트가 되겠군요. 봄봄. 추운 것을 싫어하는 너라, 살살 달아오르는 햇살이 나는 반갑네요.


봄에 돌아올게요. 사랑해요.



2017.02.19


*저를 제외한 모든 편지 수령인들의 이름은 가명이나 애칭, 혹은 평소 좋아하는 호칭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여자친구의 경우, 콩/누나/아가씨 등을 사용할 예정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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