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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형우 Nov 28. 2018

대학생은 바쁘다

팀 프로젝트의 늪

#대학생은바쁘다



1.

1-1에서 신분당선을 타게 되면 3호선으로 가는 길에 에스컬레이터가 없는 계단 하나를 걸어 올라가야 한다. 폭이 넓어서 그런지 다른 역들보다도 길고 높아 보이는 계단. 인파를 뚫고 내린 나의 뒤로는 허리가 굽은 자그마한 할머니 한 분이 따라 내리셨다.

아니, 여기는 에스컬레이터가 없네

분주하게 발을 옮기며 짧게 내어 쉬신 혼잣말이 귓가를 스친다. 건너편 쪽에는 엘리베이터도 있고, 기억이 어렴풋하긴 하지만 아마 에스컬레이터도 있다. 너무 힘들어 보이시면 말씀드려볼까 고민하는 찰나, 할머니는 나를 앞질러 계단을 뛰어 올라가셨다. 졸린 눈이 트일 정도로 충격적이었던, 짧으신 다리의 역습이었다.


2.

중간고사가 끝나고 난 경영대생에게는 위대한 삶의 교훈으로 가득 찬 팀 프로젝트(팀플)의 시대가 열린다. 냉혹한 수싸움과 곳곳에 숨겨진 배신의 새싹들. 모략, 암투, 정치, 갈등. 힘만 빠지고 되는 것은 없는 무가치한 시간을 보내기 싫다면, 가장 힘든 역할을 자처하고 팀을 주도해 나아가야 한다. 대학가는 생각 외로 '책임'이라는 논리와는 합이 잘 안 맞는다.

안 해? 응 그럼 나도 안 해

진리의 상아탑답게 대학에 다니는 학생들은 속세의 논리보다는 다분히 불교적인, 무소유의 경지를 향해 나아간다. 심오한 지적 경지에 오른 학생들을 책임이라는 말로 가두어둘 수 있을 리가! 다행히 윤리학은 엉덩이 끝이나마 이 거대한 학문의 전당에 걸쳤는지 누군가 가장 힘든 역할을 맡으면 다들 적당히 식사 예절을 지켜 숟가락을 세팅한다. 욕심 많은 나는 운다.


3.

2년여 정도의 창업 생활로 돈을 많이 번 것은 아니지만 배운 것은 많다. 디자이너를 겸업하기 시작하면서 일러스트레이터도 배웠고, 덕분에 인포그래픽이나 프레젠테이션 제작에도 경험과 스킬이 많이 쌓였다. 정부 지원을 받아 창업 교육을 받을 때 수많은 창업 팀 동료들의 아이디어도 접할 수 있었고, 싸이월드를 만든 이동형 대표님 같은 걸출한 멘토분들과도 1:1 멘토링 기회를 얻었다. 돈 받고 하는 일을 하려다 보니 눈치껏 같은 소리는 쏙 들어간 체로 열심히 일하고 굴러 참 많이도 배우고 시야도 넓혔다.


그렇게 컸는데 팀 프로젝트라고 대충 임할 수 있을 리가. 밤새 피피티를 만들고, 자료를 모으고 텍스트를 수정하는 나날들이 벌써 한 달, 열심히 쓰자던 브런치도 못 쓰고 산다. 대학생은 참 바쁘다. 배울 것도 많고 욕심부릴 것도 많아 하루하루가 짧다. 블록체인이 궁금해 책도 사버리는 바람에 가방은 매일 조금씩 더 무거운데 귤의 계절이 돌아와 두어 개는 가방에 넣어두어야 한다. 억울하게도 맛있어 두어 개가 서너 개가 된다. 살아가는 삶의 무게가 느는 것인지 살아온 삶의 무게감이 느는 것인지 알 수가 없어 종종걸음으로 열심히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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